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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먼 한·일 대화 국면…기회마저 위기로 바꾸는 '네 탓 공방'

지난 13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 베이 호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확대회의 3세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두 정상은 G7 정상회의가 개최된 2박3일간 수차례에 걸쳐 마주쳤지만 결국 별도의 정상회담은 갖지 않았다. [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 베이 호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확대회의 3세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두 정상은 G7 정상회의가 개최된 2박3일간 수차례에 걸쳐 마주쳤지만 결국 별도의 정상회담은 갖지 않았다. [연합뉴스]

다자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이 잠깐이라도 마주앉기엔 양국 간 불신의 벽이 너무 높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지난 11~13일 G7 정상회의가 개최된 영국 콘월의 카비스 베이 호텔에서 수차례 마주치고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결국 한·미·일 정상회의나 한·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표면적으론 문 대통령이 내미는 손을 스가 총리가 뿌리친 모양새였지만, 그 이면엔 국내 정치적 리스크를 감안한 양국 정상의 ‘방어적 태도’가 자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 한·일 정상 간 회동 불발을 두고서도 양국은 상대방을 탓하기에 바빴다. 외교부 당국자는 14일 "당초 양국은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별도의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데 잠정 합의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은 오는 15일부터 실시되는 한국군의 동해 영토 수호 훈련(독도 방어 훈련)을 문제 삼아 돌연 회담 취소 의사를 전해왔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우리는 한·일 정상회담을 비롯한 양국 간 대화에 ‘열린 마음’을 갖고 일본 측의 호응을 기대했다”며 “실무 선에서 논의되던 한·일 정상회담이 일본 측의 거부로 끝내 무산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독도 방어 훈련은 1996년부터 매년 이뤄졌고, 2008년부터는 상·하반기 총 2차례에 걸쳐 실시됐다. 돌발 변수가 아닌 정례적 훈련인데, 일본이 이를 새삼 문제삼은 것은 애초에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가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식으로 한국 측은 받아들일 수 있다. 
 

"잠정 합의? 사실무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지난 13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미일 정상회의가 무산된 데 대해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상회의는) 없다"고 말했다.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데 대한 한국 측의 책임을 묻는 발언이었다. [AP=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지난 13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한미일 정상회의가 무산된 데 대해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정상회의는) 없다"고 말했다.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데 대한 한국 측의 책임을 묻는 발언이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일본 측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양국 간에 정상회담 개최를 잠정 합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논의가 오간 것은 맞지만, 실무 선에서라도 회담 개최를 확정하거나 상호 간 합의에 이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은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둘러싼 구체적인 논의 사항에 대해선 "외교적 대화에 해당해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은 독도 방어훈련을 이유로 일본이 정상회담을 거부했다는 한국 측 설명도 난데없다는 분위기다. 일본은 그간 위안부·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 측의 해법 제시 없이는 한·일 간 대화가 시작될 수 없다고 밝혀왔고, 지금도 일관되게 해당 입장을 지키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이 정상회담을 꺼린다면 이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책임있는 제안이 없기 때문이지, 독도 방어 훈련과는 큰 상관이 없다는 분위기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독도 방어훈련을 이유로 일본이 정상회담을 거부했다는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번에는 (양국 정상 간) 스케줄이 맞지 않아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가 총리 역시 지난 13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가와 국가 사이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은) 없다”며 “(강제징용·위안부 문제와 관련) 한국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G7 정상회의를 통해 문 대통령과 스가 총리가 만나 화해의 신호를 발신하려던 시도는 양국 간 갈등을 더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특히 정상회담이라는 최고위급 외교 행사의 조율 과정을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공개해버리고, 다른 한 쪽에선 사실과 다르다며 반발하는 모양새가 연출된 것 자체가 한·일 관계의 현재 상황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양쪽 모두 국내정치와 여론을 더 중시하는 것이지, 관계 개선의 의지는 희박하다는 방증일 수 있어서다.
 

文 "만나자", 스가는 "해결책 제시부터"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못한 데 대해 "아쉽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지 못한 데 대해 "아쉽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처럼 한국은 일본 측의 미온적인 태도를,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의 책임을 앞세우며 정상회담 무산에 대한 ‘네 탓’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일각에선 양쪽이 정상회담에 붙이는 '조건' 차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제대로 된 대화가 시작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일단 만나자’는 입장인 반면, 스가 총리는 ‘한국 측의 해결책 제시가 선행돼야 만나겠다’고 고수하는 상황에선 만남이나 대화 자체가 성사될 수 없어서다.  
 
이같은 입장차는 한·일 관계가 국내 정치적 위험 요소로 번지지 않길 바라는 양국 정상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을 스스로 세운 문 대통령 입장에선 과거사 문제와 관련, 일본 측의 요구를 포용하는 게 자칫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를 외면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수 있어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국내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진 스가 총리 역시 문 대통령을 만나는 것이 지지율 견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문 대통령은 임기 말을 맞이했고 스가 총리 역시 국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리면서 관계 개선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과감하게 할 수 없는 소극적 입장”이라며 “두 정상 모두 한·일 관계 개선을 추진하다 자칫 득보다 실이 더 커진다면 국내 여론이 크게 악화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 이상 손을 대지 못하고 현상 유지에 급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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