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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내려 온다' 장영규 "시장에 존재하겠다, 살아남겠다"

■ Editor’s Letter
2017년 미국 NPR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희한하게 익숙하고 아름답게 낯설다'는 찬사를 받았던 그룹 씽씽. 씽씽의 프로듀서 장영규 음악감독이 이번에는 판소리와 록을 섞은 '범 내려 온다'를 공개, 유튜브 6억 뷰를 넘기는 등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날치는 이 곡으로 2021년 18회 한국대중문학상 '올해의 음악인상'을 받았습니다.
 
민요와 퀴어(씽씽), 판소리와 록(이날치). 장영규의 음악에는 묘한 밸런스가 자리합니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이 만나 증폭하고 상승하죠. 장영규에게 균형이란 충돌하는 둘이 만나 한바탕 깨지고, 터지며 발생하는 역동적 에너지입니다.
 
사실 그는 타짜, 곡성, 반칙왕, 복수는 나의 것, 보건교사 안은영 등 영화 음악계에서도 한 획을 그은 장본인입니다. 다양한 장르를 가로지르면서도 좀처럼 넘어지는 법이 없는 균형감의 비결을 듣고자 지식플랫폼, 폴인 fol:in 이 직접 장영규 감독을 만났습니다.
 
 
※ 이 콘텐츠는 지식플랫폼 폴인 fol:in 의 인터뷰 시리즈 〈폴인이 만난 사람〉 11화 중 일부입니다.
 

익숙한 것끼리 묶는 걸 나는 재미있어하지 않아요. 익숙하지 않고 충돌하는 것끼리 부딪혀 한번 터지고, 깨지고 난 뒤 발생하는 어떤 것에서 나오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부분을 뽑아내려고 해요.

장영규 감독과의 인터뷰는 경기 파주의 그의 작업실에서 이뤄졌습니다/ⓒ송승훈 작가

장영규 감독과의 인터뷰는 경기 파주의 그의 작업실에서 이뤄졌습니다/ⓒ송승훈 작가

이날치, 팝과 판소리의 충돌로 빚은 밸런스

문을 열자 드럼 비트 위를 올라탄 판소리 보컬이 한꺼번에 귀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일요일 저녁, 경기 파주에 있는 장영규 감독 작업실을 찾았을 때 이날치 멤버들이 모두 모여 연습 중이었습니다. 10년 넘게 고수 중인 특유의 길고 풍성한 머리칼의 장영규 감독은, 20살 터울의 멤버에게도 존댓말을 하더군요. 유연한 리더의 모습을 비췄으나, 지난 10년간 휴가 한 번 없이 일해왔다는 말로 그는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을 드러냈습니다.
 
균형이라고 하면 잔잔하고 정적인 상태일 것 같지만, 이날치 음악을 듣다보면 균형이 역동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익숙한 것끼리 묶는 걸 나는 재미있어하지 않아요. 익숙하지 않고 충돌하는 것끼리 부딪혀 한번 터지고, 깨지고 난 뒤 발생하는 어떤 것에서 나오는 어떤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부분을 뽑아내려고 해요. 어쩔 수 없이 익숙한 것에 손이 가기는 하지만 우선은 '안 된다, 안 된다' 하면서 정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붙여보는 시도를 계속해요. 균형이라고 하면 익숙한 것끼리 어울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반대쪽의 균형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날치 음악의 장르는 그럼 무엇인가요. 국악인가요, 팝인가요?
 
이날치는 확실히 팝이에요. 전통 판소리의 요소가 진하기는 하죠. 수궁가를 가져오기도 했고 소리꾼이 4명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수궁가와 판소리를 갖고 만들어낸 결과물은 밴드 팝 음악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원재료를 결과라고 이야기할 순 없잖아요.
 
팝이라고 말하고 싶은 또 하나의 이유는 전통 음악이나 밴드 음악 자체가 지금 팝 시장에서 존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에요. 존재 자체를 안 한다고 봐야죠. 그래서 이름을 팝이라고 짓고 '나는 존재하겠다, 우리는 팝 시장 안에 존재하고, 거기서 소비되고 살아남겠다' 그런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판소리 같은 전통과 힙(hip)함을 적절히 섞은 독창성으로 인정받았어요. 어떻게 섞고, 어떻게 균형을 맞추나요?
 
이날치를 처음 만들면서 했던 생각은 '판소리는 문학이다'였어요. 심청전이니, 흥부전이니 소설도 있잖아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줘야 할까 고민했죠. 전통 판소리는 북 하나에 소리꾼 한명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에요. 우리도 그 오랜 전통 판소리가 그래왔듯 리듬 악기들만 갖고 이야기를 들려주자 했어요. 그래서 리듬 악기들만 갖고 춤추기 좋은 연주음악을 만들었어요.
 
그런 다음 수궁가에서 어떤 대목이 이 리듬과 같이 갈 수 있나 고민했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지점은 그 둘이 만날 때 소리꾼이면 누구나 '이 리듬에는 이 대목'이라고 꼽는 잘 맞는 판소리 대목들이 있는데, '그건 절대 하지 말자'였어요. '남들도 많이 하는 방식이고, 수없이 많은 음악이 그렇게 나와있는데 우리가 노래 조금 다르게 부른다고 특별할까? 그러니 제외하자'. 오히려 충돌하는 대목을 찾았어요. 충돌하는데, 충돌하면서 묘한 매력이 발생하는 대목을 찾았죠.
 
'범 내려 온다'도 충돌하는 대목이었나요? 리듬에 딱 맞는 대목처럼 들립니다.
 
작업의 순서가 '범 내려 온다' 대목을 정해놓고 리듬을 편곡하자는 게 아니었어요. 거꾸로 비트를 만들고 거기에 맞는 대목을 찾아내겠다 했던 게 '범 내려 온다'였죠.
 
사실 판소리 자체가 현대음악 형식과 잘 맞지 않습니다. 노래라고 하면 3분, 5분 길이인데 판소리는 '범 내려 온다'도 1분이 안 되는 대목이거든요. 굉장히 느리고. 그래서 우리 식으로 그걸 빠르게 부르면 1분 안에 노래가 끝나버리니까, '어떻게 5분짜리 곡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구조를 많이 건드렸죠.
 
춤의 경우도 보통 춤출 수 있는 건 4박이거든요. 그런데 판소리는 4박이 원래 없어요. 6박자 짜리를 4박 안에 넣어야 해요. 그게 힘든 작업이죠. 하지만 우리가 그걸 익숙하게 만들었더니 듣는 사람들한테도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는 거죠.
장영규 감독의 파주 작업실에 놓인 이날치 앨범/ⓒ송승훈 작가

장영규 감독의 파주 작업실에 놓인 이날치 앨범/ⓒ송승훈 작가

판소리 보컬이 4명이나 되죠. 한 명의 에너지만도 엄청날 텐데요.
 
노래하는 친구들이 4명이나 되지만 그렇다고 리드 보컬이 있고 서브가 있고 그런 게 아니어서요. 이 4명이 어떻게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넷이 부르면 4배가 아니라 10배의 에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했어요. 같이 합창하기, 나눠 부르기, 돌림 노래로 부르기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하면서 음악적 구조를 만들었죠.
 
판소리의 무엇이 감독님을 끌어당겼나요?
 
예술감독인 친구 원일이 제가 사는 동네에 녹음실을 만들면서, 수없이 많은 국악인들이 녹음을 하러 왔어요. 그곳에 놀러 가다 보니 처음에는 가야금 앙상블 '사계'라는 악기 하는 팀과, 2008년부터는 무용가 안은미와 노래하는 친구들 5명을 뽑아서 작업을 하게 된 거죠. 그 5명 중 2명이 바로 이날치의 안이호, 씽씽의 이희문입니다. 그렇게 공연을 다니다가 '씽씽'을 하게 됐고, 씽씽이 끝나고 또 이날치를 하게 되었어요.
 
이날치는 '시간의 축적' 끝에 나온 결과물이군요.
 
판소리가 흥미롭다는 생각에 바로 나올 수 있는 밴드 음악이 있죠. 반면에 저는 판소리하는 친구들과 다양한 작업을 한 꽤 오랜 시간 끝에 판소리의 장점이 뭔지 안거예요. 판소리가 어땠을 때 내게 좋게 들렸고, 사람들은 판소리를 어떻게 듣고 싶어 할까, 어떻게 들려주면 좋을까 고민이 있었거든요. 그 시간이 더해져서 이날치가 나온 게 아닐까 싶어요.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보낸 이날치의 안이호와 '지금쯤에는 이런 음악을 같이 해서 상업 시장에 나가볼 수 있지 않을까,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한 거죠.
 

공중파 출연을 마다하던 그가 변한 까닭은

인터뷰 전 장영규 감독이 팀원에게 "다음 주 화요일이 '열린음악회'죠?"라고 묻는 걸 봤습니다. 유튜브로 신드롬을 일으킨 이날치는 이제 ‘국악한마당’ ‘열린음악회’ 같은 이른바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도 나가고 있는데요. 여전히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한정 짓기는 했지만, 10년 전 그라면 출연 자체를 고사했을 겁니다. 한때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을 누구보다 부끄러워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상업 시장에서 살아남겠다는 욕망은 언제, 어떻게 생겼나요?
 
주변에 음악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한 명 한 명 시간이 지나면서 떠나요. 떠나는 이유가 살기 힘들기 때문이죠. 생활이 안되는데 그들에게 계속 버티라고 할 수 없겠더라고요.
 
밴드도 그렇고 전통음악도 그렇고 자그마한 시장이라도 있으면 그래서 그들이 소비될 수 있다면, 시장 규모를 알고 거기서 내가 버틸 수 있는지 아닌지 자기가 판단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사명감이랄 건 없었어요. '한번 구멍이라도 살짝 뚫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상업 시장으로 그냥 가 봐야겠다' 마음먹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의외로 너무 잘 됐어요.
 
'내가 생각하는 음악'과 '대중이 선호하는 음악' 사이 균형은 어떻게 잡나요?
 
내 목표가 무엇인지 정하면 (길은) 쉬워지는 것 같아요. '이 작업이 무슨 목표, 무엇을 원하고 하는 것이냐'.
 
과거에는 대중 상업 시장에서 인정받거나 하면, 그걸 창피해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실은 그런 기회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와도 안 갈 거야’라며 우선 거부하는 마음들이 있었고요(웃음).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이날치로 '밴드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고, '전통 음악을 갖고 만든 음악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목표를 잡았기 때문에, 그 목표 때문에 정말 싫어했던 것도 할 수 있게 되더군요. '내가 열린음악회를?' '국악한마당을?'. 하지만 '내가 상업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상업적인 결과물을 원할 수 있을까?' 생각한 거죠.
장영규 감독이 OST에 참여한 영화 '보건교사 안은영'의 한 장면. 문어 모양의 젤리들이 등장한다./ⓒ넷플릭스

장영규 감독이 OST에 참여한 영화 '보건교사 안은영'의 한 장면. 문어 모양의 젤리들이 등장한다./ⓒ넷플릭스

영화 '보건교사 안은영'의 음악도 감독님이 작업하셨는데, 이날치와는 전혀 다르더군요.
 
영화 '미쓰 홍당무' 시절부터 오랜 파트너인 이경미 감독이 '보건교사 안은영'을 연출한다며 일을 맡겨왔을 때, 음악이 이 영화에서 뭘 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이야기가 정말 어디로 갈지 모르는, 이 판타지를 어떻게 음악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까를요. 판타지를 증폭시켜줄 수 있는 음악을 하자고 목표를 세웠죠.
 
처음 시나리오를 본 다음 국내 기존 영화들을 쭉 떠올려 봤는데 어떤 영화도 비슷한 영화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또 젤리가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나와야 할지 머리로는 상상이 되지만 기존에 해왔던 방식으로 그림이 나오면 너무 재미 없어질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이경미 감독에게 아는 미술작가 한 분을 소개했고, 그 분이 그동안 한국영화계에는 없던 (비주얼 디렉팅) 포지션을 맡아서 젤리부터 교복, (안은영의) 칼까지 다 만들어냈어요. 저는 그 비주얼을 보고나서 음악을 작업했죠.
 

나이도, 전공도 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얻은 것

장영규 감독은 음악 전공자가 아닙니다(중국어를 전공했죠). 그는 20대를 돌이켜보면 '음악을 잘 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래도 음악을 택한 건 음악을 좋아했고, '내 음악' 하나만 찾으면 승산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죠. 아이러니하게도 '장영규만의 색'을 찾아준 건 색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눈이 트이고, 귀가 열리는 경험을 통해서입니다. 사람은 낯선 것과 마주할 때 비로소 자기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니까요.
 
음악을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 그 속에서 지내다가, 눈이 트이고 귀가 열렸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요.
 
(후략) 
 
※ 이 콘텐츠는 지식플랫폼 폴인 fol:in 의 인터뷰 시리즈 〈폴인이 만난 사람〉 11화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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