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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터진 뒤 꼭꼭 숨은 5만원권

오만원권

오만원권

돈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불안한 경기 상황 속 커지는 세금 부담으로 ‘돈 꼬리표’ 자르기에 나선 탓이다.
 

1분기 6조 찍었는데 1조만 환수
‘현금 거래’ 음식·숙박업 부진 탓

부자들은 세금 피해 금고 쟁여둬
999만원씩 쪼개 찾아 흔적 지워

말 그대로 가장 많이 ‘잠수’를 탄 돈은 5만원권이다.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5만원권 발행액은 6조3238억원이다. 반면에 시중에 유통되다 한국은행 금고로 돌아온 5만원권 환수액은 1조2926억원에 그쳤다. 환수율은 20.4%다. 5만원권 10장을 유통하면 2장만 돌아온 셈이다. 5만권이 처음 발행된 2009년 6월 이후 1분기 기준으로 가장 낮다.
 
개인 금고나 장롱에서 잠자는 5만원권이 늘면서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5만원권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5만원권을 확보하는 게 녹록지 않다”며 “(그러다 보니) 고객이 창구에서 5만원권을 찾으면 1만원권을 섞어서 드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5만원권 환수율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5만원권 환수율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5만원권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거래 수요는 줄고, 쟁여 두려는(보관) 수요가 많아진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한국은행이 2019년 ‘5만원권 유통 경로’를 추정한 결과 매출액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업종은 음식·숙박업종(18.6%)이었다. 제조업(2.2%)과 건설업(0.9%)과 격차가 크다.
 
말하자면 그동안 상당수의 5만원권이 식당 등의 자영업자를 거쳐 다시 은행으로 들어왔던 셈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영업자의 손으로 흘러간 현금이 크게 줄어들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윤진하(34)씨는 “지난달부터 손님이 다시 늘어나 숨통은 트였지만 코로나19 직전과 비교하면 매출 타격이 크다”며 “2년 전만 해도 번 돈을 입금하려고 매주 은행을 찾았는데 요즘은 한 달에 두 번 정도만 은행을 간다”고 말했다.
 
골드바(금괴)처럼 5만원권을 보관하려는 수요도 늘었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공포가 전 세계에 드리운 상황에서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 등 긴축 우려까지 겹치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고액권인 5만원권은 교환 수단인 동시에 가치 저장 수단으로 유용하다”며 “특히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자산가격이 급변동할 때 비상용 자금으로 5만원권을 찾는 수요가 급증한다”고 했다.
 
고액 자산가는 지난 3월부터 골드바와 함께 현금 보유 비중을 늘렸다는 게 은행권 프라이빗뱅커(PB)들의 공통된 답변이다. 현금 보유가 늘면서 덩달아 가정용 금고도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한 선일금고 매장 관계자는 “올해 들어 주요 고객층인 50·60대는 물론 혼수품으로 가정용 금고를 찾는 젊은층도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신세계·현대백화점의 가정용 금고 판매 매출액은 1년 전보다 55% 이상 뛰었다.
 
5만원권의 몸값이 오르고 실종이 빈발하는 건 무엇보다 돈의 ‘꼬리표’를 뗄 수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의 PB는 “과세를 강화하는 정부 각종 제도에 자산가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결국 이들은) 과세를 피하기 위해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금고에 보관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PB 역시 “인출 금액도 금융정보분석원(FIU) 보고 대상인 1000만원을 넘기지 않도록 시간을 두고 최대한 쪼개서 돈을 뺀다”고 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중에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개인에게 장기간 묶여 있으면 금융권의 투자가 줄고 경제 활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염지현·윤상언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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