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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쌀집’ 인력 빨아들이는 ‘수원갈빗집’

지난 13일 ‘K-반도체 전략 보고’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연합뉴스]

지난 13일 ‘K-반도체 전략 보고’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연합뉴스]

“이천쌀집과 설비업체에서 상당히 왔다고 하네요.”
 

삼성전자 반도체 ‘인력 블랙홀’
1분기만 경력·신입 2100명 뽑아
SK하이닉스 노조 “우려” 성명까지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임원이 사내 주요 간부들에게 전한 말이다. 지난 3월 공고한 경력사원 채용 절차가 마무리 중인데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협력업체 출신 합격자가 많다는 뜻이다. 여기서 ‘이천쌀집’은 반도체 업계에서 SK하이닉스를 칭하는 표현이다. SK하이닉스의 본사가 유명 쌀 산지인 경기도 이천에 있어서다. 수원에 공장이 있는 삼성전자는 이 지역 명물인 왕갈비에 착안해 ‘수원갈빗집’으로 불린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요즘 삼성전자, 특히 반도체 부문은 ‘인재 블랙홀’로 불린다. 반도체 개발은 물론 설비·환경·기획·지원 등 거의 모든 사업부서에서 신입·경력사원을 빨아들이고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대외비’를 이유로 정확한 채용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이달에만 수백 명이 선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인력.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인력.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SK하이닉스 내부에선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SK하이닉스 기술사무직 노조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올 초부터 이달 25일까지 기술사무직 퇴직 발령자가 301명”이라며 “2019년 1~9월(307명), 지난해 1~9월(313명)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라고 주장했다. SK하이닉스 측은 이에 대해 “예년보다 퇴직자 수가 조금 많은 건 사실이나 유의하다고 볼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삼성전자 DS 부문 인력은 6만1374명이었다. 지난해 말 5만9270명에서 불과 3개월 새 2104명 늘었다. 익명을 원한 삼성전자 관계자는 “앞으로 채용 인원이 더 늘어날 듯하다”고 귀띔했다. 삼성전자는 2019년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선언하면서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의 인재 영입이 속도를 내는 만큼 숙제도 쌓인다. 무엇보다 다양한 출신의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용광로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장희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에서) 과거의 순혈주의는 상당 부분 극복됐다고 본다”며 “농사지을 때 씨앗을 뿌려 키우는 것보다 모종을 옮겨 심는 게 생산성이 좋듯 경력 채용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앞으론 보다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개발(R&D) 환경과 인프라도 계속 확충해야 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엔지니어의 성과는 연구 환경과 설비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우수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배경엔 삼성의 안정적 인프라 지원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결국 투자를 통해 인재를 끌어들이는 선순환 구조가 지속돼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삼성의 ‘무노조’ 원칙이 폐기되고,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부상하면서 조직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연초 성과급 산정과 임금 협상 등에서 이들이 던진 ‘돌직구’에 진땀을 흘린 경험이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의 소통방식을 익히고 조직 운영을 투명하게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마침 지난 28일 김동만 전 한국노총 위원장과 백순환 전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장이 삼성 계열사 인사팀장 20여 명 앞에서 강연을 했다. 두 사람의 주문은 간결했다. “이럴 때일수록 노사 양측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 공동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 그러려면 회사가 먼저 변해야 한다.”
 
이상재 기자 lee.sangja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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