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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시칠리아의 태양처럼…직설·격정적인 ‘리얼리스트’

기자
한형철 사진 한형철

[더,오래] 한형철의 오페라, 미술을 만나다(7)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1890년 발표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촌스러운 기사’란 뜻이랍니다. 이 오페라는 푸른 지중해 위로 넘실대는 파도와 시칠리아의 강렬한 태양에 오렌지가 붉게 익어가는 정경을 담고 있지요. 특히 부활절을 배경으로 종교적 엄숙함을 담은 고요한 선율이 흐르다가도 치열한 남녀 간의 긴장감과 처절한 분노 그리고 애잔한 연민의 정을 들려주고는 번개 치듯 순식간에 음악이 끝납니다. 피날레에 일반적으로 있기 마련인 아리아나 중창, 합창 등 어떤 노래도 없이 날카로운 칼날이 번쩍이는 듯한 여인의 절규로 마무리되지요.
 
시칠리아 주도 팔레르모의 ‘마시모’ 오페라 극장. [사진 한형철]

시칠리아 주도 팔레르모의 ‘마시모’ 오페라 극장. [사진 한형철]

 
막 뒤에서 눈부신 피부와 앵두 같은 입술 등 애인을 찬미하는 투리두의 노래가 연주되며 막이 오르면, 시칠리아의 평범하지만 평화로운 아침의 시골 마을에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마침 부활절이랍니다. 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가며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를 합창합니다. 부드러운 계절과 아름다운 사랑을 찬미하는 멋진 선율의 노래랍니다.
 
 
교회에서 부활절을 찬양하는 합창 ‘할렐루야’가 들려오고, 산투차도 찬송을 경건하지만 안타깝게 부른답니다. 축복받아야 할 부활절 아침인데, 남편 투리두가 아직 그녀 곁에 없기 때문이겠지요. 이미 결혼해버린 옛사랑인 롤라를 그가 다시 만나고 있음을 산투차가 눈치챘거든요. 투리두를 만나자 산투차는 지난밤 어디에 갔었는지 캐물으며 남편을 다그치지요. 그녀의 그런 행동을 구속으로 받아들이며 산투차를 귀찮아하는 투리두. 베리스모 오페라 특유의 비극을 예고하듯, 그들의 분위기는 점점 불안해져 갑니다. 이때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인 롤라가 나타나자, 산투차가 그녀와 신경전을 벌입니다.
 
투리두는 그런 산투차의 행동을 비난하며 롤라가 있는 교회로 갑니다. 자기와 있어 달라고 눈물로 애원하는 산투차를 모질게 밀치면서 말이에요. 비탄에 빠진 산투차의 앞에, 아뿔싸! 마침 롤라의 남편 알피오가 나타납니다. 질투에 휩싸인 그녀는 두 사람의 불륜을 그에게 말해 버리지요. 알피오가 복수를 외치며 달려가자, 그제야 산투차는 자신의 경솔함을 깨닫고 두려워합니다. 이제 비극을 막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답니다.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오케스트레이션에 관객도 흥분되어 긴장을 감출 수 없게 되지요. 이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이 두 개의 하프가 리드하며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현악이 연주되는 ‘간주곡’이 흐릅니다. ‘대부3’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 또는 CF에 사용되었던 아름다운 음악이에요.
 
부활절 미사가 끝나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파티를 하는 곳에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알피오가 상기된 표정으로 나타납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결국 두 사람은 결투를 예고하지요.
 
결투를 앞두고 죽음을 예감한 투리두는 어머니에게 산투차를 당부하며 마지막 키스를 하고 나갔습니다. 이내 비장한 음악이 흐르고 여자의 비명이 하늘을 찌르며 막이 떨어집니다. “투리두가 죽었다!”
 
사실주의 오페라의 대표작인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음악적으로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을 이어가면서도 강렬한 격정과 긴장을 비극적으로 대비시킵니다. 산투차나 투리두의 아리아를 보아도, 시적인 표현 없이 직설적이며 꾸밈없이 뱉어내거든요. 거친 말투도 그대로고요.
 
회화에서도 이처럼 우리 주변의 일상을 그린 ‘사실주의 미술’ 이 미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답니다. 그 대표 화가인 귀스타브 쿠르베의 작품을 살펴봅니다.
 
쿠르베는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라 칭했습니다. 신화나 역사를 미화한 신고전주의는 물론 현실과 괴리된 낭만주의도 반대했지요. ‘돌 깨는 사람들’(1849)에서와 같이, 그는 부르주아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던 당시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 속에서 리얼리티를 찾으려 애썼답니다. 쿠르베는 예술가로서 자부심도 대단했다고 합니다. 자산가의 후원을 받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지요. 당시의 화가는 귀족이나 돈 많은 부르주아 등으로부터 주문을 받거나 그려 놓은 그림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답니다. 화가는 ‘을’인 셈이지요. 허나, 쿠르베는 언제나 당당했다네요. 아래 그림에는 그런 그의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1854), 쿠르베.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1854), 쿠르베.

 
쿠르베가 방문하자, 그를 존경하고 아끼던 후원자가 친히 맞이하러 나왔답니다. 후원자는 정중하게 모자를 벗고 그를 맞이하고 있으며, 옆의 시종도 공손히 쿠르베에게 예의를 표하지요. 낯선 이를 처음 보는 개조차도 얌전하게 꼬리를 내리고 있네요. 재미있는 장면은 바로 쿠르베 자신의 모습입니다. 각종 화구를 배낭에 가득 메고 평범한 지팡이를 소지한 채 먼 길을 신발이 닳도록 그를 찾아간 형편임에도, 전혀 비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수염을 치켜들고 빳빳하게 인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그렸거든요!
 
그림을 그리는 목적에 대해 근본적인 화두를 던지며 그때까지의 화풍을 돌아볼 계기를 만들었던 사실주의 미술의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을 노골적으로 그린 ‘세상의 기원’(1866)과 같이, 사실 그대로만 그리려 했던 이러한 시도는 이내 사라지게 된답니다. 바로 사진기의 출현 때문이지요. 사용하기 편한 사진기가 보급되면서 사실주의는 급속히 그 영향력이 사라지고, 이제 화가는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화가의 느낌이 담긴 그림, 인상주의 미술이 나타나게 되지요.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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