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LTV 90%” 승부수 실현될까…부동산 논쟁 한복판의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김진표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특위 1차회의에서 머리를 맞댄 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와 김진표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부동산특위 1차회의에서 머리를 맞댄 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언했던 ‘LTV(담보인정비율) 90% 완화안’이 정국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투기과열지구에선 담보비율을 40%까지만 인정하는 현 정부의 기존 LTV에 비하면 두 배 넘게 높은 비율이다. 송 대표는 당 대표 경선 때부터 주택취약계층에겐 LTV를 90%까지 완화하자고 주장했다. LTV 완화를 둘러싼 당 내 논쟁의 중심에 송 대표가 설 수 밖에 없는 이유다. 30대 실수요자 입장에선 "꼭 필요한 규제완화"란 주장이 나오지만 "가계부채와 집값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 역시 만만치 않다. 18일 발표한 리얼미터 여론조사(14일 전국 만 18세 이상 500명 대상 조사. 95% 신뢰수준 ±4.4%포인트)에서도 규제완화 찬성(52%)과 반대(41.8%) 입장이 팽팽하게 맞붙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등 참고)
 
논란이 거세지자 송 대표는 18일 “정부에서도 90%까진 아니지만 LTV 조정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구체적 수치는 당 부동산특위에서 정부 측과 협의해 정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LTV 90% 안은 송 대표의 ‘누구나 집 프로젝트’가 와전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주택 가격의 10% 만 있어도 10년 뒤 자기 집이 될 수 있는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얘기를 하다보니 LTV 얘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다. 90%라는 수치를 둘러싼 논쟁이 확산하자 여당 지도부가 긴급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盧 정부 LTV 강화하자 한나라당 “실수요층 어려워져”

2006년 8월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부동산 정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6년 8월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부동산 정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중앙포토

LTV 규제는 과거에도 뜨거운 감자였다. 큰 폭의 조정이 이뤄질 때면 상당한 정치적 논쟁을 수반했다. 한국에서 LTV 규제가 처음 도입된 건 김대중(DJ) 정부 말기였던 2002년이다. 이전 은행들은 주택 담보가의 70~80%까지 인정해 자율적으로 대출을 해줬지만, 2002년 처음으로 정부가 인위적으로 대출비율 상한선을 60%로 정했다. 들썩이는 부동산시장의 수요를 잡기 위해서였다.  
 
논쟁이 본격화한 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뒤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폭등하자 당시 정부는 ‘버블세븐’ 등 투기지역을 지정, 이 지역들을 중심으로 LTV를 단계적으로 강화했다. 초기에는 전체 지역 규제에 대해서는 “LTV를 전체적으로 내리는 것은 대출로 주택을 마련하는 서민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윤증현 당시 금감원장. 국회 정무위)며 정부 내에서도 조심스러워 하는 기류가 강했다.
 
그러나 집값 불안 지속으로 2006년 정부가 LTV 40% 일괄 적용에 나서자 야당이 “실수요층의 주택 구입을 힘들게 할 것”이라며 본격 공세에 나섰다. 그해 11월 당시 한나라당 제4정책조정위원회(건설ㆍ교통 담당) 김석준 위원장은 “공급 확대 정책(2기 신도시)을 정부가 수용한 것은 환영”이라면서도 “금융 규제 강화책은 시장의 혼란을 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민주당 내부에서도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등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논평이 나왔다. 결국 집값 불안과 세제, 금융규제 논란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당시 여권은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에서 연거푸 참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빚내서 집사라는 거냐” 두드려맞은 朴정부의 LTV

2015년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중앙포토

2015년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중앙포토

LTV 논쟁은 보수정당 집권기에도 이어졌다. 방향은 정반대였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야당이 규제 강화를 주장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지방 아파트 미분양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이명박(MB) 정부에선 LTV 규제를 일부 완화했지만, 본격적인 논쟁으로 번지진 않았다.
 
논쟁이 전면화한 건 박근혜 정부 시기였던 2014년이다.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그해 7월 국회 기재위에 출석해 “도입 10년이 지난 만큼 여건 변화를 감안해 LTV를 합리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천명하자 정국이 들끓었다. 이후 정부는 50%였던 서울의 LTV 한도를 70%까지 완화했다.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최 부총리가 한 일이라고는 ‘빚내서 집사라’ ‘부동산 규제해제’ 뿐”(박수현 원내대변인)이라며 전면 공세에 나섰다. 2015년엔 예결위 회의에 참석한 최 전 부총리가 “빚내서 집사라고 한 뜻이 아니었다”고 해명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정권 말까지 야당으로부터 ‘빚내서 집사라’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아직 베일 속 송영길의 90%론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 모습. 뉴스1

서울의 한 은행 대출 창구 모습. 뉴스1

송영길 대표의 LTV 완화론은 한국사회의 기존 논쟁 패턴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우선 90%라는 숫자에 대해선 "사실상 LTV 폐지에 가까운 파격"이란 주장이 있다. 또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 규제 완화책을 꺼낸 것도 송 대표가 사실상 처음이다. 이전 정부에선 ‘가격 상승→규제 강화’(DJㆍ노무현 정부), ‘부동산 시장 침체→규제 완화’(MBㆍ박근혜 정부)의 패턴이었다.  
 
다만 송 대표는 18일 LTV 90% 완화에 대해 “집값의 6%만 있으면 자기 집을 살 수 있는 구조를 협의중”이라며 단순 담보비율 상향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날 송 대표 설명을 종합하면 전체 집값의 50%는 장기모기지론을 통해 조달한다. 이후 10%는 시공사 투자, 10%는 개발이익 재투자를 통해 충당한다. 나머지 30% 중 24%는 입주자가 전세보증금 담보대출로 충당한다. 입주자는 결국 집값의 나머지 6%로 주택을 장기임대해 살다가 최초 분양가로 집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구상이다. 집값의 6%로 입주권을 사실상 취득할 수 있는 만큼, LTV 90%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송 대표의 주장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이 진정된 게 아닌데 LTV 90% 완화는 모험수”라며 “집값이 너무 올라 조정이 올 걸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은데 대놓고 90%를 빌려준다니…집값이 10%만 떨어져도 자기자본금이 0원이다. 개인 파산이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전상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청년이 비투기지역에 집을 사게 하는 건 안하는 것 보단 나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청년에 대한 장기 모기지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단순 규제 완화보다는 정부 재정을 투입해 대출 상환을 위한 청사진까지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 김보담 인턴기자 hanyi@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