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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부문 정규직화 4년, 자회사 셋 중 한곳 사실상 유령회사

지난해 5월 30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및 차별철폐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집행부가 상징의식에 사용할 얼음에 '자회사, 비정규직, 민간위탁, 불법파견' 등의 문구를 붙이고 있다. 뉴스1

지난해 5월 30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및 차별철폐 민주노총 결의대회에서 집행부가 상징의식에 사용할 얼음에 '자회사, 비정규직, 민간위탁, 불법파견' 등의 문구를 붙이고 있다. 뉴스1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위해 설립된 자회사 세 곳 중 한 곳은 근거도 없이 만든 사실상 유령회사라는 진단이 나왔다.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방침에 쫓겨 서두르다 벌어진 일이다. 정부 정책이 바뀌기라도 하면 회사가 통째로 사라질 운명에 처할 수 있다.
 
공공부문 자회사 운영실태 평가위원회(위원장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이런 내용의 평가 결과를 12일 공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4년 전 이날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하고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자회사 정책성과 토론회'에서다. 72개 모기관(공기업)을 대상으로 산하 자회사(80개)의 운영실태를 분석했다.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정규직으로 바뀐 근로자 중 4분의 1인 4만6970명이 자회사에 편제됐다.
 
지난해 8월 1일 오후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인천공항공사 노조 주최로 열린 '투명하고 공정한 정규직 전환 촉구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노조는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 합의 없는 일방적인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이라며 "졸속으로 추진되는 정규직화를 즉각 멈추고,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 노조와 소통하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1일 오후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인천공항공사 노조 주최로 열린 '투명하고 공정한 정규직 전환 촉구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노조는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 합의 없는 일방적인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이라며 "졸속으로 추진되는 정규직화를 즉각 멈추고,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성공적인 전환을 위해 노조와 소통하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평가 결과는 낙제점이다. 경영·인사노무와 관련된 11개 지표의 평가 총점이 100점 만점에 평균 50.4점에 불과했다. 최고점도 73.2점에 그쳤고, 18.5점을 받은 곳도 있다. 제대로 된 독립 법인으로 볼 수 있는 자회사가 한 곳도 없다는 얘기다.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을 공공기관(공기업)의 성격이나 업무 속성 등을 따지지 않고 속전속결로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다.
 
권 교수는 "자회사의 독립성, 사업성,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자회사가 새로 설립된 점을 감안하더라도 인사·노무 등에서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다"고 지적했다. 
 
공공부문 자회사 세 곳 중 한 곳은 유령회사 전락 위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공공부문 자회사 세 곳 중 한 곳은 유령회사 전락 위험.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특히 72개 기관이 운영하는 자회사 가운데 법령이나 기관의 정관에 설립 근거를 마련한 곳은 47개소뿐이었다. 나머지 25개 기관은 근거도 없는 자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출자하는 자회사는 법령에 그 근거가 있거나 이사회 승인을 거친 정관에 설립 근거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이런 게 없으면 존립 자체가 부인되거나 임시·임의 조직으로 여겨져 고용안정은커녕 대량 실직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지적은 한국노동연구원이 2019년 낸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자회사 운영 실태조사'에서도 지적됐었다. 당시 한국노동연구원은 "법령에 따라 설립된 자회사도 모회사의 관련 법이 아닌 상법과 같은 엉뚱한 법에 근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는 "설립 근거가 없는 회사는 정부 정책이 바뀌기라도 하면 유령회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이야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따라 회사 대접을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는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다. 회사의 형태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모기관과 수의계약으로 운영되는 독점적 지위를 상실할 우려가 있다. 민간 업체와 경쟁하는 체제라도 도입되면 도태 또는 사라질 운명에 처할 수 있다.
 
2018년 12월 정부가 마련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관련 자회사 설립과 운영 지침

2018년 12월 정부가 마련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관련 자회사 설립과 운영 지침

 
이 때문에 정부는 2018년 12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관련 바람직한 자회사 설립·운영 모델'이란 지침을 마련했다. 이 지침에는 '모회사의 설립·운영 등을 규율하는 개별 법령 또는 모회사 정관에 자회사 설립 근거 및 구체적인 위탁사업 내용을 명기'하도록 했다. '(고용)안정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붙었다.
 
정부가 민간에 요구하는 정책과 정반대로 자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노임 단가 문제가 대표적이다. 자회사는 모기관(공기업)과 수의계약으로 운영된다. 평가위의 조사 결과 계약 때 예정가격을 산정하면서 노임 단가를 원가에도 못 미치게 계약하는 곳이 절반(36개소)이나 됐다. 민간에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주문하면서 정작 공공부문에선 자회사를 상대로 노동의 대가를 후려치고 있는 셈이다.
 
시중 노임 올라도 못 올리는 자회사 절반 넘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시중 노임 올라도 못 올리는 자회사 절반 넘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또 정부는 되도록 계약대금 지급 시기를 월별 또는 분기별로 선지급하거나 선금과 잔금으로 나눠 지급하도록 민간에 권고하고 있다. 공사 대금을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는 등의 부담을 하청업체가 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공공부문에선 그렇지 않은 곳이 많았다. 무려 65.3%(47개소)의 기관이 예전의 월별 후지급 관행을 지속하고 있었다.
 
모기관이 계약에도 없는 지시를 하는 것과 같은 부당한 업무지시는 물론 모기관의 내부 사정이나 일방적·자의적 판단에 의한 계약해지 가능성까지 내포한 운영 조항을 가진 곳도 수두룩했다. 심지어 모기관이 자회사에 직원 교체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까지 휘둘렀다.
 
임금체계를 연공급(호봉제) 대신 상당수가 직무급(61개소)을 채택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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