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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난 거품 목욕 즐기는 아저씨, 그래도 동네 목욕탕 그립다

기자
한재동 사진 한재동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38) 

커다란 원형 욕탕 안에 거품이 가득하고, 머리에 수건을 감아올린 여성이 샴페인을 들고 목욕을 즐기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몇 번은 본 것 같은 이런 거품 목욕 장면은 인생 역전 신데렐라 스토리를 대표하는 장면이다. 지구 반대편 한국에는 신데렐라와 전혀 상관없지만 거품 목욕을 취미로 가진 배 나온 아저씨가 있다. 바로 내 이야기다.
 
부자가 된다면, 이런 멋진 욕조를 가지고 싶다. [사진 unsplash]

부자가 된다면, 이런 멋진 욕조를 가지고 싶다. [사진 unsplash]

 
어릴 때는 목욕을 좋아하진 않았다. 솔직하게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일요일 아침이면 늘 아버지를 따라 동네 목욕탕에 가고는 했다. 때를 불려야 한다고 해서 온탕에 들어갔는데, 시원하다는 아버지의 말과는 다르게 너무 뜨거웠다. 지금 생각하면 미지근한 수준의 온도였지만, 어릴 때는 데일 것만 같이 뜨겁게 느껴졌다. 그 당시에는 목욕탕을 나와 사 먹는 음료수 말고는 목욕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내가 뜨거운 탕에 들어가서 시원하다고 말한 순간, 이제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다. 전날 잔뜩 마신 술이 깨지 않아 어디든 누울 곳이 필요했던 대학생 시절이었다. 뒤늦게 목욕에 재미 들려 동네 목욕탕을 다 섭렵했다. 주말 오전에 조기축구로 땀을 빼고 난 뒤 친구들과 우르르 가는 목욕탕은 최고였다. 건식사우나와 온탕, 냉탕, 열탕을 번갈아 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집에서도 목욕을 즐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부자가 되면 욕조와 건식사우나가 있는 집을 사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거품 목욕을 할 수 있는 대형 욕조도 좋지만, 원하는 곳에서 목욕할 수 있는 이동식 욕조를 더 가지고 싶었다. 영화 속 잘생긴 배우가 욕조에서 고뇌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던 것 같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고, 나에겐 그들의 욕조만 보였다. 영화에 나오는 비싼 욕조까지 바라지는 않고 그냥 따뜻한 물에 몸을 담글 수만 있으면 뭐든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혼집을 구할 때 욕조가 있는 곳을 애타게 찾았건만, 결국 현실의 벽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발견한 것이 접을 수 있는 이동식 욕조였다. 플라스틱 소재로 가볍고, 펼치게 되면 거구의 몸을 누일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나온다. 사실 신혼집은 그마저도 놓을 공간이 없어 사지는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는 열심히 추천하고 다녔다. 처가에도 하나 있는데 꽤 쓸만하다고 하신다.
 
접을 수 있는 이동식 욕조. [사진 guud]

접을 수 있는 이동식 욕조. [사진 guud]

 
딸이 태어나 아버지가 되고서야 욕조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물론 욕조는 딸을 목욕시키는 데 주로 사용하지만, 종종 여유가 될 때 반신욕을 즐기고 있다. 집에서 목욕을 즐기겠다는 로망을 드디어 이루게 된 셈인데, 덕분에 그간 벼르고 있던 몇 가지 목욕용품을 샀다.
 
가장 먼저 산 것은 입욕제다. 위에 말한 것처럼 거품을 잔뜩 내주는 입욕제도 있지만 요즘 빠진 것은 물의 향을 더 좋게 해주는 고체형 입욕제다. 따뜻한 물에 넣으면 기포를 내며 빠르게 녹아 순식간에 색과 향을 낸다. 온라인에 찾아보면 다양한 향을 가진 제품들이 있다. 아직 몇 가지 제품들밖에 써보지 못했는데, 제품마다 각양각색의 향을 느껴보는 재미가 있다. 다만 입욕제를 쓰고나서는 욕실 청소를 좀 더 까다롭게 해야 하는 점이 조금 귀찮지만,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불편함이다.
 
고체 입욕제는 다양한 향을 가진 제품이 많다. [사진 unsplash]

고체 입욕제는 다양한 향을 가진 제품이 많다. [사진 unsplash]

 
가장 잘 샀다고 느끼는 것은 욕조트레이다. 말 그대로 욕조에 걸칠 수 있는 쟁반인데, 목욕하며 그 위에 음료나 책, 스마트폰 등을 올려 둘 수 있다. 친구들은 그냥 목욕만 하면 되지 뭐 그런 걸 돈 주고 사냐고 타박했지만, 그건 욕조 트레이를 써보지 않기에 하는 이야기다.
 
욕조 트레이가 있기 전의 목욕과 그 이후의 목욕은 질적으로 다르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질 때 시원한 얼음물 한 잔의 쾌감을 맛볼 수 있으며,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 목욕의 만족도를 더욱 높일 수도 있다. 트레이 위에 향초를 켜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고, 목욕하면서 책을 읽는 허세도 부릴 수 있다. 태블릿 PC 등으로 영화라도 보게 되면 물이 식어버릴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욕조트레이는 목욕의 즐거움을 향상시킨다. [사진 unsplash]

욕조트레이는 목욕의 즐거움을 향상시킨다. [사진 unsplash]

 
이런 아이템들 덕분에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홈스파’를 즐기고 있지만, 코로나로 벌써 1년을 넘게 가지 못한 동네 목욕탕이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곳은 고급스럽고 세련되지는 않지만 게으름이 허용되는 나른한 분위기가 있다. 이리저리 탕을 옮겨 다니다 수면실에서 쓰러지듯 잠을 자고, 나올 때는 얼굴이 매끈매끈 해져 작은 빨대로 우유를 쭉 들이켜고 싶다. 다시 그럴 날이 왔으면, 이왕이면 빨리 왔으면 한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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