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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 손가락'에 더 험악해진 젠더충돌, 단순 해프닝 아니다

성평등에 대한 인식.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성평등에 대한 인식.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여자들은 공정을 원하는 게 아니고 특권을 원한다’ ‘남자들은 역사적으로 누려온 혜택은 무시하고 피해자처럼 군다’
(A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에 대한 댓글 중) 
집게손가락 모양이 남성 혐오의 상징으로 지적돼 이를 홍보 포스터 등에 사용한 기업들이 불매 운동을 겪는가 하면,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발언이나 글들이 검열을 받듯 분석(?)돼 남성 지지자인지, 여성 지지자인지 가려내는 사례가 연출되고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남녀의 성대결, 젠더 갈등의 현장이다.

여당 심판한 ‘이대남’의 등장  

젠더 갈등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건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이대남(20대 남자)’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면서부터다. 방송 3사 출구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약 73%가 오 시장을 택했다. 반면 20대 여성은 44%가 박영선 후보를 지지했다. 20대 남녀의 상반된 표심은 정치권에 젠더 갈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온라인상에서 댓글로 싸우는 여론전은 더욱 치열하다. 남녀 권리에 대한 문제가 난데없이 ‘보수는 친남성, 진보는 친여성’ 등으로 정치 이분화하며 갈등을 키웠다. 심지어 ‘남성을 지지하면 일베’ ‘여성을 지지하면 메갈’ 등 극단적이고 원색적인 감정싸움도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특정 게시물에 좌표를 찍은 후 화력 대결을 벌인다”며 전투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일베·메갈, 특정 집단만의 의견 아니야 “

결혼에 대한 인식.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결혼에 대한 인식.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러한 현상에 대해 20대는 비단 가상현실에서만 존재하는 소수의 싸움은 아니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26세·기업인턴)은 “온라인에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젠더 갈등은 현실에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며 “주변에 남성이 싫다는 이유로 짧은 머리에 화장도 하지 않고, 비혼주의를 선언한 친구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젠더 갈등이 증폭된 시점으로 2016년을 꼽았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이후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폭행·살인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면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게 됐다는 얘기다.  
 
또 다른 여성(30세·프리랜서)은 “지난해 부산 지하상가 데이트 폭행 영상을 보고 나니 여성은 남성과의 싸움에서는 무조건 약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며 “역사적으로도 수백년 이상 너무나 일상적으로 여성이 큰 차별을 당해왔는데, 남성들은 익숙한 기득권은 당연시 하고 줄어든 기득권에만 예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버지 세대 잘못을 왜 우리가 떠안나”

2016년 강남역 묻지만 살인사건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메시지. 중앙일보DB

2016년 강남역 묻지만 살인사건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메시지. 중앙일보DB

전문가들은 2030세대의 ‘공정성 요구’에 대해 정치권에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역차별 논란이 생겼고, 젠더 갈등이 증폭됐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여성할당제의 경우가 그렇다. 여성주의자들은 사회적으로 여성 임원, 고위직의 수가 적어 승진 시 ‘유리 천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 비율을 고정시키는 여성할당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2030 남성들은 역차별이라며 반박한다. 남녀가 동등하게 대학을 나와 취직하는 현시점에 인위적으로 성비를 맞출 필요가 있냐는 얘기다.  
 
한 남성(28세·회사원)은 “어머니·할머니가 가부장적 분위기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대학 진학과 사회 진출의 좌절을 겪었던 사실은 안타깝다”며 “그런데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의 2030 여성이 이전 세대의 서러움을 운운하며 보상받겠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남성은 “반대로 생각하면, 아버지 세대가 저지른 잘못의 대가를 왜 아들이 취업·승진 불이익으로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먹고 살기 힘들어…‘파이 쪼개기’ 경쟁 

결혼에 대한 인식.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결혼에 대한 인식.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젠더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불황 및 청년 실업률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더딘 경제 성장으로 파이가 커지지 않는 상황에서 집단끼리 이익을 뺏고 빼앗기는 관계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결국 정치적 호소로 내 이익을 늘리려는 집단적 성향이 강해졌다는 얘기다.  
이명진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보통 선진국이 되면 협력·봉사 등 비물질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것과 다르게 한국인은 유독 물질적 가치를 추구한다”며 “노동 시장에서 부를 쌓는 게 어려워진 시점에서 기성세대 혹은 이성과 이익을 나눠야 한다는 불만이 세대·성별 갈등으로 번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경제적 이유로 연애, 결혼 및 출산을 포기하는 2030이 늘면서 이성을 더는 동반자의 대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취업과 승진을 두고 경쟁하는 대상일 뿐 서로 이해하고 애정을 쏟을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취업 준비 중인 한 남성(30·대학원생)은 “여전히 결혼할 때 남자 쪽에서 집 한 채는 해와야 한다는 성차별 때문에 결혼을 못 하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다”며 “솔직히 여학생들이 학점이 좋아 일자리를 구할 때 경쟁자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남녀 모두 “내가 더 불리하다”

문제는 남자든 여자든 2030의 다수가 성차별을 겪는다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민감도가 높았다.여성가족부가 19∼34세 청년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74.6%가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답했다. 남성 역시 절반이 넘는 51.7%가 “한국 사회는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대별로 20대 초반(19~24세)에서 ‘우리 사회가 자신의 성별에 불평등하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여성 77%, 남성 54.1%로 가장 높았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들이 처한 불공정한 상황에만 집중할 뿐 상대방이 받는 차별에는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태도가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드는 만큼 상대에 대한 이해 노력을 전제로 토론과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배정원·이소아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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