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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겸허함에서 나오는 과학의 권위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과학자들은 믿기 힘든 이야기를 많이들 펼친다. 우주가 “빅뱅”으로 생겨나서 지금까지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등의 난해한 소리도 많고, 전문가들의 주장을 설사 이해한다고 해도 그것이 옳은지를 일반인들이 판단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자면 인간이 이산화탄소를 과잉 생산하여 지구온난화가 되고 여러 가지 재난이 일어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그러므로 석유도 석탄도 가능한 한 쓰지 말고 생활 방식과 경제의 틀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엄청난 이야기를 과학자들이 한다고 해서 그냥 덜컥 믿을 수 있는가?
 

과학 지식은 절대적 진리가 아님
계속 개선하는 것이 과학의 강점
그때그때의 최선을 추구할 뿐
과학도 익을수록 고개 숙여야

특히 사람들의 불신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과학자들 간에도 완벽한 의견 일치가 되지 않고 있으며 게다가 다들 동의하는 정설도 세월이 가면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근본적인 이론도 혁명적으로 뒤집어질 수 있고, 그런 업적을 이루어 낸 과학자들에게는 노벨상 등을 주어가며 찬양한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뭔가 확실하다고 해도 나중에 그 말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할 수 있다. 큰 이론이 아닌 구체적 내용들도 그렇다. 예를 들어 서양의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초반에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해도 병의 확산을 방지하는데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그 의견을 정정하여 결국 동양권과 같이 마스크 착용을 권하게 되었다. 이렇게 서로 말이 다르고 의견을 계속 바꾸는 전문가들을 어떻게 신용할 수 있는 것인가?
 
과학이 절대적 진리를 말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절대적 진리라 하지 않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고 진정한 권위가 서는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 100%의 득표율로 재선되었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조작이나 강압이지 진짜 선거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의견과 판단이 다 같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도 인간이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서로 다른 관점들을 가지고 같은 사실도 서로 다르게 해석하며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린다. 그렇게 계속 연구하다 보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명확한 사항들도 좀 나오게 된다. 하지만 전혀 이견이 없는 만장일치 상황은 거의 없다.
 
과학이 약 400년 전에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은 종교나 전통적 학문이 누리고 있던 지적 권위를 뺏어오는 일이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독교의 성경이나 성직자,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적 권위자들에게서 얻으려 하는 습관을 배척하고 그 대신 다들 직접 탐구하여 답을 얻어 보자는 주장으로 과학은 시작되었다. 신이 우주를 불과 6000년 전에 창조하셨다고 그저 믿지 말고, 그게 정말 그런지 연구해보자. 고대의 현자들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지만 정말 그런가? 철석같이 믿었던 그런 내용들을 배격하면서 과학자들은 인간 문화의 대혁명을 일으켰다.
 
그런데 과학은 무슨 근거로 종교보다도 고전보다도 더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과학이 그렇게 존중받았던 것은 아니고, 초창기에 내놓았던 과학 이론들은 대부분 그리 대단치도 못했다. 그러나 계속 개선해서 결국 많은 훌륭한 결과를 내었다. 과학의 강점은 의견을 고칠 수 있고 계속 고쳐 나간다는 점이다. 그렇지 못하면 진보란 없다. 과학자들이 의견을 바꾸는 것은 실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연구하여 최선의 판단을 하고, 또 그것을 나중에 더 많이 더 수준 높게 배우면서 교정하는 것이다. 과학이 훌륭한 것은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는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끝없이 맞물려가는 가설과 검증을 통하여 매번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지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일반인들을 대할 때는 과학지식이 불변하는 진리인 것처럼 내세울 때도 있지만, 과학자 사회를 잘 들여다보면 서로 강한 비판을 할 수 있는 체제가 형성되어 있다. 물론 정해진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비판이지만 그런 틀 자체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수준 높은 과학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절대 틀리지 않는 사람이나 이론이나 체제는 없으며, 무조건 옮음을 주장하는 것은 독단과 독재일 뿐이다. 뭔가 잘못 알았었다면 거기에 대한 비판을 듣고 개선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이고, 그러한 겸허함에서 참된 권위는 나온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은 개인의 품격에 대한 말이지만, 사회 집단이나 학문 분야에도 적용해 보고 싶다. 과학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은 과학 지식은 진리이며 다른 종류의 지식이나 믿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이 아직 미숙하면서도 패기만만했던 초창기에 적합한 태도였고, 이제는 과학이 충분히 자리를 잡았으니 더 너그럽게 사회를 이끌어 갈 때가 왔다. 과학에 의존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에게 과학이 진리이니 믿으라고 윽박지르기보다는 과학 지식이란 우리가 현재 알아낼 수 있는 최선일 뿐이라 솔직히 이야기하고, 과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 훌륭한 대안을 내놓아 보라고 요구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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