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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퍼스펙티브] 청년들 힘든 삶에 책임지지 않는 586세대의 위선

청년 담론, 무엇이 문제인가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장은수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최근 청년세대에 대한 말들이 폭증하고 있다. 청년의 삶에 대한 각종 통계가 쏟아지고, 청년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여러 보고서가 쌓이며, 청년의 정치적·사회적 의식에 대한 온갖 분석이 넘쳐난다.
 

청년세대 담론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는 ‘청년팔이 사회’
불평등 문제는 세대 게임 벗어나야 정확한 현실 인식 가능
586세대는 청년에게 능력주의 강요하고 여성 존중도 부족
자기반성이 동반되지 않은 윗세대의 청년 담론은 위선적

청년의 삶은 극도로 열악하다. 2020년 말 청년 실업률은 8.1%에 달하고, 체감 실업률은 세 배 이상 높은 25.6%에 달한다. 힘들게 취업해 봤자 대다수가 해고 위협이 상존하는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이기 일쑤다. ‘무급 인턴’ 같은 자발적 노예가 되지 않고는 직업 체험을 할 수 없고, 포괄임금제 등 불평등 계약으로 착취당하는 경우도 흔하다.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고 우석훈이 적절히 지적했듯, 광장에선 민주화를 외치고 직장에선 ‘아닥’(아가리 닥쳐)의 권위주의를 강요하는 기성세대의 이중성은 이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공론장의 페미니스트가 일터에서 성희롱을 일삼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가.
 
청년 10명 중 4명은 이른바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에서 산다. 나날이 오르는 셋방 가격과 폭등하는 집값은 미래를 통째로 증발시킨다. 청년들은 홈리스로 전락 중인데, 집값이 하락한다면서 임대주택을 반대하고 비싼 원룸 채우라고 기숙사 건축을 반대하는 윗세대의 악마성엔 진절머리가 난다. 함께 살 집도 없고, 마땅한 일자리도 없는데, 결혼을 재촉하고 출산을 압박하니 어이없을 뿐이다. 노오력, 헬조선, 이생망 등으로 압축되는,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한 청년들 정서를 소설가 장강명은 ‘한국이 싫어서’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괴물이 되어 버린 20대
 
청년을 가리키는 이름도 다채롭다. 88만원 세대, N포 세대, 생존주의 세대, MZ 세대, 이대남(20대 남자) 등 온갖 이름을 붙여 청년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끝없다. 호명은 고도의 정치적 기술이다. 호명하는 권력은 호명되는 존재를 특정한 주체로 구속한다. 청년을 호명하는 이들은 주로 한국 사회의 권력을 장악한 586세대다. 『사회학적 파상력』에서 김홍중은 청년을 ‘생존주의자’라고 부르면서, “생존에 대한 불안이라는 기조 감정, 서바이벌을 향한 과열된 욕망, 경쟁 승리를 위해 자신 존재의 가능성을 전략적으로 계발하려는 집요한 계산”이 이들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에서 오찬호는 ‘괴물이 되어 버린 20대’를 언급한다. 아무리 애써도 안정된 삶에 이르지 못하는 사회에서 청년들은 극심한 불안에 시달린 끝에 기업이 바라는 최적의 제품으로 자신을 진화시킨다. 그 과정이 무척 힘들기에 이들은 노력 경쟁의 승자가 차별적 보상을 얻는 것이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는 등 자신을 고통에 빠뜨린 경쟁의 체제에 몰입하는 일그러진 자아를 얻게 되었다. 최근 이 청년 괴물은 기계적 공정성에만 민감한 ‘능력주의자’라는 호명을 얻었다.
 
천관율·정한울의 『20대 남자』(시사IN북)는 이대남을 ‘남성 마이너리티 자의식’으로 호명한다. 이 책에서 20대 남성 청년은 ‘남성 차별 문제’를 심각히 여기고, 결혼은 여자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며, 한국의 법 집행이 여성보다 남성에게 불공정하다고 주장하는 등 여성에 비해 남성을 약자로 표상하는 세대로 나타난다. 극단적 반페미니스트인 이들은 기성세대와 여성에게서 이중으로 착취당하는 불쌍한 존재로 자신을 인식하는 마이너리티 성향을 갖고 있다.
  
586세대 청년 담론에 ‘꼰대론’ 반격
 
이러한 호명에는 모두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가 1000만 명이 넘는 청년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호명하는 세대론은 청년세대를 특정 이미지에 가두는 효과를 낳는다. 『청년팔이 사회』(오월의봄)에서 김선기는 청년이란 기호를 팔아 자기 논리를 정당화하는 ‘세대주의’의 발호를 비판하면서 성차별, 빈부 격차, 양극화, 지방 소멸 등 사회문제를 세대론에 떠넘기려는 움직임을 ‘청년팔이’라고 규정한다. 『세대 게임』(문학과지성사)에서 전상진은 불평등이 세대 문제로 치환될 수 없다면서 세대 게임에서 빠져나와야 현실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청년에 대한 일방적 호명이 은폐하는 것도 있다. 586세대의 정치적 지향이나 사회적 인식에 공명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청년은 호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와 어긋나서 비뚤어졌을 때 청년은 불려 나와 이름을 부여받는다. ‘피해자’가 ‘피해호소인’이 되는 일도 있고, “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세대” 같은 교사를 모욕하고 청년을 막돼먹은 인간으로 몰아가는 호명도 있다. 이러한 호명은 모두 586세대의 사회적 책임을 슬쩍 면제한다.
 
능력주의를 청년들에게 강요한 것은 누구인가. 586세대를 포함한 기성세대다. 사교육 뺑뺑이를 돌려 이들을 생존주의자로 키운 사람은 누구인가. 부모들인 586세대다. 여성 존중이 부족한 세대가 어디일까. 전 세대가 가부장제에 젖어 있으나, 20대보다 50대 쪽이 훨씬 심할 것이다. 그러나 20대에 대한 호명은 잦은데, 50대에 대한 언어는 부족하다. 자기반성이 동반되지 않은 청년 담론은 위선적으로 보인다. 586세대가 청년을 말할 때마다 청년들이 ‘꼰대론’을 펼쳐 반격하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586세대는 사회 불평등 심화시킨 헬조선 공모자”
지난달 재보궐 선거에서 586세대의 위선에 대한 ‘이대남’의 반감이 분명히 드러났다. 이에 따라 ‘지역감정’이나 ‘민주 대 독재’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난 ‘세대 정치’의 구도가 일부 확인되면서 관련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세대는 여전히 다루기 힘든 개념이다. 20대 청년이라고 다 똑같지는 않다. 물고 태어난 수저 색깔이나 젠더에 따라 각자 처지가 너무나 다르다. 세대 격차가 계급 차이만큼이나 의미 있으려면, 20대와 50대 간에 눈에 띄는 현실적 균열이 존재해야 한다.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와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이성의힘)는 이 균열에 집중한다.
 
이철승은 민주화를 상징 자산으로 하는 586세대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켜 헬조선의 공모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상관없이, 586세대는 학맥·인맥에 기반을 두고 자원·기회·정보를 동원해 입지를 강화하고, 벼농사 체제로부터 물려받은 동아시아 위계 구조를 이용해 아랫세대를 조직했다. 그 결과 아랫세대는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원청/하청, 선배/후배 등 철저한 위계에 갇힌 채 이념·가문·학벌·인맥으로 얽힌 카르텔에 좌절하는 헬조선을 경험하게 되었다. 특히 청년 여성의 경우 여기에 성차별이 더해진 ‘교차적 억압’에 시달리는 중이다.
 
조귀동은 고성장 사회에서 높은 노동 소득, 불어난 자산 가치 등으로 원천 재산을 축적한 586세대 중산층이 자녀에 대한 막대한 교육 투자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세습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들의 자녀가 번듯한 일자리를 독식하면서 20대 내부의 격차가 고정되고 불평등이 격화되는 과정은, 청년 작가 이미상의 표현대로 ‘대의명분’을 ‘대입 명분’으로 엿 바꿔 먹은 586세대의 또 다른 배신을 드러낸다.
 
두 세대의 역사적 경험 차이, 현실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마주치는 권력관계 등은 상호 인식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중이다. 아마도 586세대가 불평등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세대 정치는 선명한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리셋 코리아 문화분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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