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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은 조작수사 희생양, 이 소설 창작뒤 움직인 그들"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권력은 때로 더러운 공작을 벌인다. 그 점에 관한 한 굳이 여야를 가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 방식에는 두 당이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즉 보수정권의 공작이 사실을 ‘은폐’하는 소극적 차원에 머문다면, 민주당 정권의 공작은 아예 없는 사실을 ‘창작’하는 능동적 성격을 띤다는 것.
 

애초에 없는 사실을 창작한 뒤 대중에 허구의 스토리 증폭시켜
무위로 끝난 김학의·장자연 사건 재수사, 대중은 좌절했지만
자신들 향한 수사 예봉 무디게하고 검찰 개혁의 명분 확보해
국가기관 동원한 공작으로 국민 불신 초래하고 법치 훼손시켜

공작정치의 패턴
 
패턴이 있다. 먼저 스토리를 창작한다. ‘검찰이 유시민(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쳐서 총선에 영향을 끼치고 대통령을 탄핵하려 한다.’ 이 황당한 각본에 따라 재소자와 전과자를 증인으로 캐스팅한다. 법무법인 ‘민본’의 변호사가 이들을 법률적으로 대리하며, 친여 매체를 통해 그들의 허구를 현실에 사실로 등록한다.
 
이른바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도 패턴이 똑같다. 먼저 ‘한명숙 전 총리가 검찰의 조작수사의 희생양’이라는 스토리를 창작한다. 이어서 재소자들을 캐스팅하고, ‘민본’의 변호사가 나서서 친여 매체를 통해 사기 전과자들의 증언을 증폭시켜 대중의 의식 속에 그 허구를 사실로 등록한다.
 
마치 영화를 제작하듯이 다수의 협업으로 날조가 이루어졌다. 문제는 이 허구가 국가기관까지 움직인다는 것.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 정치 검사들이 무리한 수사를 벌인다. 두 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모두 허탕으로 끝났다. 그나마 나라의 시스템은 아직 작동한다는 얘기다.
 
수사의 ‘결론’으로 얻어져야 할 것을 미리 ‘창작 스토리’로 전제해 놓고 그 시나리오에 맞추어 증거와 증인을 조작하는 방식. 이로써 그들은 비위를 저지른 자신들을 방어하고, 이른바 검찰개혁의 명분을 확보하는 한편, 자신들은 도덕적으로 무오류라는 상상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현실을 대체한 스토리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들의 변호를 맡아 ‘재심 전문’이라 불리는 박준영 변호사. 그가 1300쪽에 이르는 ‘대검 과거사 조사단’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공개된 보고서의 내용, 그리고 그 작성의 경위를 살펴보면 권력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추잡한 짓을 해 왔는지 알 수 있다.
 
패턴은 다소 다르나 ‘스토리’에서 출발하는 것은 앞의 예들과 마찬가지. ‘사악한 검찰이 동영상에서 얼굴을 확인하고도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성 접대를 불기소 처리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검찰에서 그를 기소하지 않은 것은 그가 아니라 피해여성을 특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원주 소재의 윤중천씨 별장에서 수 차례 접대를 받았다’는 스토리는 아예 한겨레신문의 보도를 통해 사실로 둔갑했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과거사진상조사위의 이규원 검사가 제 유도 심문을 윤중천씨의 답변으로 둔갑시켜 면담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이다.
 
앞의 두 예에서처럼 여기서도 범죄자의 증언이 결정적 증거로 활용됐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윤중천 본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데 있다. 여러 차례 유도 심문을 해도 그에게서 원했던 답변이 나오지 않자 아예 면담 보고서 자체를 조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건번호도 가짜
 
날조는 계속된다. 이규원 검사는 김학의 전 차관의 출국을 막으려 가짜 사건번호를 붙여 출금요청서와 승인요청서를 만들었다. 명백한 불법이다. 당시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이성윤 서울지검장은 동부지검에 이 가짜를 추인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불법’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 날조극 덕에 현실은 한동안 물구나무 서 있어야 했다.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식 태도로 비판받아 왔습니다. 성폭력 혐의를 조사하지 않았고, 사건 은폐·직권 남용 혐의를 받은 수사 검사도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피해자의 피맺힌 통곡은 계속되고 있습니다.”(민주당 정춘숙 의원)
 
하지만 박준영 변호사의 폭로에 따르면 검찰은 제 식구를 감싼 적이 없다. 성폭력 혐의는 조사 결과 법적 처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피해자도 명확히 성폭력 피해자로 분류하기 애매했다. 출국금지의 불법성을 은폐하고 직권을 남용해 수사를 막은 것은 이성윤 서울지검장.
 
그들이 현실을 물구나무 세운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정춘숙 의원의 말을 들어 보자. “김학의 성폭력 사건은 검찰개혁의 신호탄과 같은 사건입니다.” 검찰개혁은 민초들의 삶과는 별 관계없는 의제. 애초에 부족한 개혁의 명분을 억지로 만들어내려니 허구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물타기
 
모든 사건의 발단은 대통령의 지시였다. 2019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버닝썬·김학의·장자연 등 과거에 무혐의로 종결된 사건들의 철저한 재수사를 지시했다. 김학의 사건 재수사의 동력은 존재하지도 않는 윤중천의 발언, 장자연 사건 재수사의 동력은 사기꾼 윤지오의 허위증언이었다.
 
정권에 부담이 되는 버닝썬 사건에 물을 타려고 슬쩍 검찰 사건 두 개를 끼워 넣은 것이다. 당시 민갑룡 전 경찰청장은 국회에서 “동영상에 등장하는 남성이 김학의라는 건 육안으로도 식별 가능했다.”고 증언했다. 피해자가 특정이 안 돼 기소 못 한 것을 알면서 사태를 호도한 것이다.
 
그즈음 청와대 이광철 비서관은 버닝썬 사건에 연루된 윤규근 총경에게 ‘민 청장이 더 세게 발언했어야 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청와대발(發) 기획사정 의혹을 키우는 대목이다. 이광철 비서관은 김학의 전 차관의 불법 출금 사태에도 깊이 연루되어 현재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 날조극의 규모를 보라. 대통령, 청와대 민정비서관, 두 법무부 장관, 경찰청장, 출입국본부장,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과거사진상조사위, 친여 매체들과 어용지식인들. 영화 한 편 찍는 데에도 엄청난 인력이 들어가거늘, 영화를 현실로 만드는데 이 정도 인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민중은 시작(詩作)을 한다
 
김학의·장자연 사건이 가해자들을 처벌하지 못한 채 종결된 것은 한탄할 일이다. 이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정당하며, 정치권이 그 분노에 응답하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방식. 그들은 허구의 스토리를 만들어 대중의 정의감을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에 철저히 이용해 먹었다.
 
‘민중은 시작을 한다.(Das Volk dichtet)’ 하이데거의 말대로 민중은 스토리에 열광하며 그것을 스스로 지어내곤 한다. 스토리 속에서 이성은 감정으로, 논리는 상상력으로 대체된다. 스토리는 세상의 그 모든 복잡함을 단순한 선악 이분법으로 환원하고, 권선징악의 교훈으로 요약한다.
 
기소엔 증거와 시효가, 출금에는 적정절차(due process)가 필요하다. 확립된 법치의 규칙들을 무시하면 일시적으로 정의감을 만족시킬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사회에 더 큰 불의를 가져온다. 이 복잡한 사정을 그들은 이야기로 대체했다. ‘검찰이 제 식구와 특권층을 챙기려고 사건을 덮었다.’
 
스토리를 활용한 이 포퓰리즘으로 정의가 회복될 리 없다. 김학의·장자연 사건 재수사는 다시 무위로 끝났다. 애초에 허황한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대중은 좌절했다. 하지만 권력은 제 목적을 다 이루었다. 부족한 개혁의 명분을 확보했고, 자신들에 대한 검찰수사의 예봉을 무디게 했다.
 
권력의 선의를 믿지 말라
 
이런 통치는 자유주의 정치문화에는 낯설고, 실은 전체주의형 정치 커뮤니케이션에 가까운 것이다. 국가기관을 동원해 국가기관을 공격하면 국가기관 전체가 불신을 받게 된다. ‘검찰=악마’라는 비현실적 인식에서 나온 개혁방안이 현실적일 리 없다. 그래서 법치만 훼손하고 만 것이다.
 
결과를 보자. 대통령은 지지율이 폭락했다. 이광철 비서관은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이성윤 지검장은 직권남용, 이규원 검사는 공문서 위조, 정진웅 부장은 독직폭행으로 기소됐다. 유시민 작가는 명예훼손으로 기소됐고, 윤지오는 사기혐의로 수배됐다. 과거사위는 또 다른 과거사가 되었다.
 
180석의 최강 여당이 통치하는 상황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이 나라의 시스템을 지탱하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 박준영 변호사의 외로운 싸움을 응원한다. 권력의 선의를 믿으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사악한 정권이 들어서도 흔들리지 않는 법치 시스템이다.
 
VR(가상현실)은 현실이 아니다. 재·보선에 참패하고도 아직 현실감을 못 찾았다. 김용민 의원은 ‘당심이 곧 민심’이라며 빛바랜 검찰개혁에 더욱더 매진하겠단다. 친노 대모 한명숙 전 총리는 ‘억울하다’며 자서전을 낸단다. 이제 대법원 판결까지 무시할 태세다. 대체 왜들 저럴까? 무서운 사람들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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