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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인사이트] 중국의 대북 역할 과대평가돼…북·중 불신 활용해야

북·중 관계 관전법 ‘선택적 공생’

북·중 관계는 모든 국제관계가 그렇듯이 국가이익에 기반을 둔다. 사진은 2019년 방북 시 북한 주민으로부터 열렬한 환대를 받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외 모습. [사진 인민망]

북·중 관계는 모든 국제관계가 그렇듯이 국가이익에 기반을 둔다. 사진은 2019년 방북 시 북한 주민으로부터 열렬한 환대를 받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외 모습. [사진 인민망]

지난 3월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용남 주중 북한대사를 통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구두친서(口信)를 교환하자 북·중 친서외교가 화두에 올랐다. 또 북·중 관계가 밀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전통적 밀월관계 회복’ ‘동맹 복귀’ 등의 수사도 잇따랐다. 북·중 관계의 봄을 노래하는 이런 분석은 타당한가? 그렇지 않다.
 

중국의 미국 포위망 뚫는 핵심축은
러시아와 이란, 파키스탄 3개국
북한은 반미 연대 ‘약한 고리’ 불과

북·중 친서외교는 상호 필요에 따른 전략적 선택의 산물이다. 북한으로선 뒷배인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대북제재와 자연재해, 코로나19라는 삼중고(三重苦)를 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선 미국의 포위와 인도 및 베트남 등과의 ‘접경 갈등’이 증폭되며 북한과의 관계 다지기가 중요하다.
 
한데 최근 친서외교에 담긴 약속은 과거보다 격이 떨어진다. 그냥 원론적 협력 의지를 확인해주는 수준이다. 시 주석은 2019년 방북 시 “힘이 닿는 데까지(力所能及)” 북한의 안보와 발전을 돕겠다고 했다. 지난해 5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도 “힘이 닿는 데까지” 북한의 경제 재건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약속은 과거 동맹시대와 차이가 있다. 중국은 1961년 체결한 ‘북·중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에 명기된 “모든 힘을 다해서(盡其全力)”라는 표현의 사용을 극력 회피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중국 지도자는 동맹조약에 새긴 이 말을 결코 사용한 적이 없다. 동맹으로 인한 ‘연루의 위험’을 감내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북·중 관계는 지난 2018~19년 몰아치기에 가깝게 다섯 차례나 양국 정상이 오갔지만 이렇다 할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상태다. 두 달 후면 북·중 동맹조약 체결 60주년이지만 아직 조용하다. 북·중은 동맹은 물론 정상적인 이웃 국가로서도 자연스럽지 못한 관계다. 중국이 볼 때 북한은 반미(反美) 연대의 축(axis) 중에서 ‘약한 고리’에 속한다.
 
미국의 포위망을 돌파하려는 중국이 핵심축으로 삼는 건 러시아와 이란, 파키스탄이다.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을 근간으로, 이란과 파키스탄으로 이어지는 반(反)쿼드 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3월 27일 이란과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협정’을 맺었다. 25년간 원유를 할인가격으로 공급받는 대신 4000억 달러의 인프라 투자와 무기 공동개발 계획이 들어있다.
 
파키스탄과는 ‘전천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과다르항과 신장 카슈가르를 연결하는 중·파 경제회랑(CPEC)은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 중 핵심이다. 최근 미·중 간 적대적인 전략 경쟁 속에서 북한의 전략 가치가 높아지긴 했지만, 이들에 미치진 못하다. 사실 북·중 관계 역사는 끊임없는 ‘갈등과 협력’의 반복이라는 패턴을 보였다.
 
그것도 협력보단 불신과 갈등의 시기가 더 길었다. 밀월기 산물로는 60년대 ‘국경조약’과 70년대 ‘송유관 건설’이 있다. 불신과 갈등의 사례는 한국전쟁 시기 북·중연합사령부 지휘권 갈등에서 휴전 및 포로교환 이견, 연안파(延安派) 제거, 갑산파 친중인맥 축출, 장성택 처형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다.
 
태생적 한계는 61년 동맹 체결의 동상이몽에서 비롯된다. 북한은 ‘미 제국주의’ 위협에 대한 세력균형이 필요했던 반면 중국은 북한의 위험한 행보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맹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 대미 수교와 한·중 수교를 통해 북한을 크게 배신한 게 사실이다.
 
2000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 때 북한이 베이징이 아닌 시드니를 지지해 중국을 탈락시킨 건 그에 대한 보복 사례 중 하나다. 2000년대 관계회복 이후에도 잠재된 불신은 계속 남아있다. 중국 지도부가 고위급 교류 때마다 북한에 “중대한 문제에 대한 통보와 소통”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양국 간 전략적 협력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방증이다.
 
결국 모든 국제관계가 그렇듯이 북·중 관계는 국가이익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전략적 선택과 대응이란 상호작용을 통해 전략이익을 공유하는 공생관계를 구성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대북정책 결정엔 국가정체성, 지정전략적 가치, 영향력 유지 요인이 작용했다. 북한의 대응은 ‘자주’의 정체성, 의존과 거부, 협력과 이탈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여섯 가지 요인이 상호작용하는 게임 구조엔 ‘한반도 안정’과 ‘북한체제 유지’를 위한 전략이익을 공유하는 ‘공생의 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북·중 관계를 동맹이나 ‘전통적 우의’라는 틀에 가두려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탈냉전으로 약화했던 북한의 전략가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그 중요성을 회복했다.
 
중국의 G2 부상과 미국의 ‘동아시아 회귀(Pivot to Asia)’가 배경이다. 이에 중국은 2009년 7월 중앙외사영도소조 회의에서 북핵과 북한 문제를 분리대응하는 투-트랙 접근으로 전환했다. 여기가 바로 중국이 대북 거리두기를 포기하고 포용적 관여로 선회한 지점이다. 관여 정책은 현상유지 수단으로서 상대방을 자국의 영향권에 묶어두려는 목적을 갖는다.
 
중국의 관여는 관련국에 냉정과 자제를 요구하며 대북제재 수위조절에 앞장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북 경제지원도 대표적인 관여 정책이다. 한데 이 같은 중국의 경제지원 의도를 간파하고 있는 북한은 이를 역으로 이용할 뿐, 중국적 가치와 발전모델에 순응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북한은 중국이 이러한 전략가치를 포기하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기에 ‘제멋대로’식 행동과 핵실험을 강행할 수 있었다.
 
지정학 가치를 미국과 흥정할 수 있는 북한은 중국에 이니셔티브를 빼앗기지 않고 자주적으로 편승과 거부를 반복할 수 있는 셈이다. 결국 북·중 관계를 지배하는 기본 논리는 양국이 아무리 밀착해도 과거 동맹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아무리 악화해도 파탄에까진 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이 당장은 정권의 생존을 위해 대중국 접근과 의존을 강화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양국관계의 수위를 조정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선 상호 수사(rhetoric)만 무성한 북·중 관계의 실상을 꿰뚫어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과대평가된 중국의 ‘대북 역할론’은 재검토돼야 한다. 오히려 북·중 사이의 불신과 간극을 냉철하게 투시하며 우리의 활용 공간을 창출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북·중 ‘통보제도’는 상호 행위 제한하는 동맹관리 수단
북·중 관계에서 ‘통보제도’란 국내와 국제 및 지역문제의 공동 관심사를 긴밀하게 협의하고 상호 통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말한다. 1958년 북한에 주둔하던 중국인민지원군의 완전 철수를 보완할 핫라인 차원에서 시작됐다. 중국 지도부는 56년 ‘8월 종파사건’ 이후 북한 내 친중 인맥인 연안파가 전면 숙청되면서 인적 채널이 사라지자 북한을 관리하기 위해 김일성과의 직접 소통이 필요했다. 이에 58년 2월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의 방북을 계기로 북·중 지도자 간 의사소통 기제로 구축됐다.
 
김일성도 믿을 수 없는 대중국 통로의 대리인을 별도로 두기보다는 본인이 직접 챙기는 방식을 선호했으며 정상회담의 연례화도 대안으로 채택됐다. 61년의 ‘북·중우호원조 조약’ 제4조는 “중요한 국제문제 협의”를 명시했다.
 
이 같은 북·중 혁명 1세대 사이의 통보제도는 결국 서로의 행위를 상호 제한하는 동맹의 관리 수단이다. 한·중 수교로 무력화된 통보제도를 재건하기 위해 중국 지도부가 북한과의 고위급 접촉 때마다 수시로 전략적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1년 김정일 위원장 방중 시 통보제도 복원과 전략대화 개설에 합의했지만, 전략대화는 네 차례 개최 후 중단됐다.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구두친서 방식으로 통보제도 부활을 알리고 있지만 ‘전략적 소통’에 상응하는 실질적인 협력과 신뢰가 회복된 것인지는 의문이다. 구두 메시지로 전달하는 구두친서는 친필서명이 포함된 문건 형태의 친필서한과 함께 친서의 두 가지 형태 중 하나다. 친서외교는 국가 정상 간 직접 소통을 통해 외교적 돌파구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자주 쓰인다.
 
신봉섭 한림대 객원교수, 전 주선양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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