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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세월이 가면, 맛없는 위스키가 맛있어진다

기자
김대영 사진 김대영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18)

 
일하다 보면 손님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질문이 있다.
 
“제일 좋아하는 위스키가 뭐예요?”
 
위스키 맛은 일정하지 않다. 위스키 보관 상태, 마시는 곳의 분위기, 그리고 몸 상태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꿈만 같던 어제의 위스키도 오늘은 지옥의 맛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내 답은 늘 같다.
 
“제일 좋아하는 위스키도, 싫어하는 위스키도 없습니다. 위스키의 맛을 이루는 세 가지가 모두 모였을 때, 그 한 잔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뿐이죠.”
 
손님의 몸 상태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잘 보관된 질 좋은 위스키와 이를 편하게 마실 공간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 위스키 바의 기본이란 생각으로 오늘도 손님을 기다린다.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세요 마스터….”

 
“기운이 없어 보이네요. 무슨 일 있으세요?”
 
“휴~ 남의 돈 받는다는 게 쉽지 않네요. 사회생활이란….”
 
“일하다 보면 힘들 때가 있죠. 스트레스 없는 직장은 아마 없을 걸요?”
 
라프로익 10년 CS 배치10 . [사진 김대영]

라프로익 10년 CS 배치10 . [사진 김대영]

 
백바를 뒤적인다. 아일라 위스키를 모아둔 곳에서 잠시 고민을 한다. 아드벡과 라프로익 사이에서 고민하다 라프로익에 손이 간다. 라프로익 10년 CS. 개봉 후 절반 정도 마신 병과 새 병이 있다. 새 병을 꺼내 코르크를 열고 글렌캐런 잔에 따른다.
 
“오늘은 이게 어떨까 싶습니다. 라프로익 10년 CS입니다. 전에 드셨던 라가불린처럼 스모키한 위스키죠.”
 
“아~! 라가불린 말고도 그런 위스키가 또 있는 거예요? 그런데 CS가 뭐죠?”
 
“CS는 영어 ‘Cask Strength’의 약자예요. 한국어로 ‘오크통 힘’이라고 하면 뭔가 이상하죠. 보통 위스키는 40도대입니다. 위스키 원액에 물을 타서 도수를 낮추고 술의 양을 늘립니다. 술맛의 밸런스도 맞추고요. 그런데 CS 위스키는 오크통에 들어있던 그대로에 물을 섞지 않아요. 도수는 보통 50도가 넘는 게 대부분이고, 60도가 넘기도 해요. 도수가 높은 만큼 맛은 강렬하고, 물을 타지 않아 풍미가 뚜렷한 편이죠.”
 
“그렇군요. 그럼 이건 몇 도예요?”
 
"CS 위스키는 알코올 도수를 일정하게 맞추지 않는 게 특징이라, 출시되는 버전마다 도수가 다른 게 특징이죠. 이건 2011년에 나온 보틀로 도수는 55.3도예요.”
 
라프로익 27년. [사진 김대영]

라프로익 27년. [사진 김대영]

 
“알코올 도수가 상당히 높네요. (한 모금 맛을 보고) 식도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강렬함은 뭐죠? 전에 마셨던 라가불린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는 스모키함인데요. 짙은 안개가 제 입안을 점령해버린 것 같아요.”
 
“네, 확실히 라가불린보다 강한 피트를 가지고 있는 위스키입니다. 게다가 CS이니까 맛이 선명하죠. 라프로익 증류소의 모토가 뭔지 아세요? ‘Love it or hate it’이예요. 자기들이 만드는 위스키는 사람들의 호불호가 확실하다는 거죠.”
 
“아,저는 싫어하는 쪽인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강렬한 맛은 싫어요. 라가불린을 마실 때는 은은한 향이 느껴졌는데, 이건 너무 고통스러워요.”
 
“그렇다면 그 잔을 내려놓고 이걸 한 번 드셔보시죠.”
 
백바에서 반 정도 남아있는 라프로익 10년 CS를 그녀가 보지 못하게 잔에 따라 내준다.
 
“이건 무슨 위스키죠? 아까 마셨던 거랑 비슷한 향이 느껴지긴 하는데, 뭔가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에요.”
 
“드시고 나면 말해드리겠습니다.”
 
라프로익 CAIRDEAS. [사진 김대영]

라프로익 CAIRDEAS. [사진 김대영]

 
“아, 이건 정말 좋네요. 선 굵은 피트향이 잠깐 다가왔다가 이내 사라지곤 꽃향기와 따뜻한 보리의 느낌이 아주 길게 다가와요. 이거 정말 마음에 드는데요!”
 
“사실 그건 같은 위스키입니다. 두 위스키의 차이는 언제 개봉을 했느냐죠. 방금 드신 건 한 5년 전에 딴 거고, 아까 드신 건 오늘 처음 딴 겁니다. 위스키는 개봉 후 시간의 경과에 따라 맛이 달라지거든요.”
 
“아…그렇다면 라프로익을 사랑하는 쪽에 서야겠어요. 아까 라프로익이 싫다는 말은 취소예요.”
 
“위스키는 너무 맛이 없다가도 시간이 지나 맛있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저는 위스키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아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3년 동안 실망했던 사람이라도 언젠가 때가 오면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 될지도 몰라요. 그때까지 그 사람을 지켜보는 건 어떨까요? 지금 당장 맛없는 위스키를 마실 필요는 없습니다. 위스키가 맛있어지길 지켜보는 것도 제법 즐겁거든요.”
 
라프로익(LAPHROAIG)
스코틀랜드 아일라 섬에서 만드는 싱글몰트 브랜드. '아일라 몰트의 왕'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싱글몰트 위스키다. 1815년 증류소가 세워졌다. 20세기 초, 미국 금주법 시대에 약용주류로 수출되었다. 당시 미국에서 라프로익의 약품과도 같은 향이 약으로서 효과가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1994년, 영국 찰스 황태자가 싱글몰트 위스키로서는 처음으로 왕실납품증류소 허가를 내줬다.
 
현재 주력제품은 라프로익 10년. 글에서 언급된 라프로익CS는 매 년 출시되는 한정판으로 아일라 몰트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피트향이 들어간 위스키를 좋아한다면 꼭 마셔봐야할 브랜드.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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