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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눈치 안 보고 파티” 절간 같았던 뉴욕이 돌아왔다

뉴요커가 본 코로나 1년

늘 차량의 소음과 인파로 붐볐던 뉴욕 거리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텅 비었다. [사진 박진배]

늘 차량의 소음과 인파로 붐볐던 뉴욕 거리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텅 비었다. [사진 박진배]

지난 4월 초 어느 날 뉴욕 맨해튼의 한 교회 앞을 지나갔다. 목사님이 예배당을 청소하느라 분주했다. 그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지 못했던 교회가 부활절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교회 앞에는 선생님의 인솔 아래 줄 맞추어 길을 건너는 유치원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길거리에서 어린 학생들을 본 건 거의 1년 만이었다. 폐쇄됐던 타임스스퀘어의 계단이 열렸고, 한동안 보이지 않던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별로 그립지 않은 교통체증도 다시 시작됐다. 예전의 활기찬 모습이다. 저녁 초대로 지인의 집을 방문했는데 같이 온 손님 전원이 이미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쳤다고 했다. 주인은 “이제 눈치 보면서 파티를 할 필요가 없어서 너무 좋다”고 인사말을 했다. 뉴욕이 돌아왔다.
 

셧다운 탓 도시 미관도 감염
시민들 빠져나가 거리엔 부랑자만
시위·약탈 등 추한 민낯도 드러나

연방정부·뉴욕시 총력 대처
노숙자, 영업 악화 호텔에 입주시켜
악명 높은 지하철 깨끗이 청소·소독

백신 접종 속도 내 활기 찾아
식당 실내영업 재개, 대학 개강 준비
관광객 부쩍 늘어나 공항 인산인해

지난해 2월 중국 우한의 바이러스 소식이 전해질 무렵이다. 뉴욕의 차이나타운과 코리아타운 식당에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한 각종 행사와 공연들이 정상적으로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3월이 되면서 학교와 미술관, 관공서 그리고 대부분의 사무실이 폐쇄됐다. 도시가 셧다운된 지 불과 1주일 만에 모든 시스템이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신호등이 바뀌는 소리까지 들려
 
타임스스퀘어의 명물인 ‘알몸 카우보이’만이 마스크를 쓴 채 노래를 계속했다. [사진 박진배]

타임스스퀘어의 명물인 ‘알몸 카우보이’만이 마스크를 쓴 채 노래를 계속했다. [사진 박진배]

바둑판 모양으로 구성된 맨해튼의 한 블록에는 평균 1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상주한다. 건물마다 수천 명이 출근해서 근무하는데, 그 숫자가 단 몇 백 명으로 줄었다. 늘 차량의 소음과 인파로 붐비던 시내는 순식간에 절간처럼 조용해졌고, 흐르는 적막은 극에 달했다.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도 들어 보지 못할 신호등이 바뀌는 ‘찰칵’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온라인 영업이 불가능한 레스토랑, 미용실 그리고 공연장들이었다. 지난해 3월 16일 레스토랑 영업이 전격 중단되면서 주인들의 고군분투가 시작됐다. 신속하게 밀키트(Meal Kit)를 만들어 직접 가가호호 배달을 다녔다. 몇 개월을 버틴 후 여름부터는 야외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공연계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뉴욕의 밤을 화려하게 수놓는 브로드웨이와 발레, 오페라, 재즈 공연들이 모두 멈추어 섰다. 공연자들은 월급이 끊기면서 실업수당으로 연명했다. 가장 괴로웠던 점은 언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코로나는 도시의 미관도 감염시켰다.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길거리에는 소수의 필수 인력과 갈 데 없는 부랑자들만 간간이 눈에 띄었다. 화려한 상품을 뽐내던 쇼윈도는 합판으로 덥혔고, 사람들은 뉴욕을 떠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욕의 이삿짐센터들은 지난 수십 년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렸다.
 
어느 도시나 아름다움과 추함이 있고, 선과 악의 모습이 있다. 뉴욕에서 지난 수십 년간 선에 가려졌던 악이 수면으로 떠오른 느낌이었다. 범죄와 시위, 약탈, 아시아인 혐오 등이 이어졌다.
 
코로나 상황을 대처하고 실마리를 푸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불가피한 셧다운 속에서도 뉴욕은 분주했다. 병원도 어느 때보다 바쁘게 돌아갔다. 초기에는 병실과 의료진의 부족으로 고전했다. 하지만 은퇴한 의사, 간호사들이 다른 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현지 의료진을 돕고 군 병원선 등의 시설을 활용하면서 차차 안정을 찾아갔다. 공립학교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개인용 노트북을 공급하는 등 모든 자원을 동원해 학업을 유지했다. 금융기관, 정부와 회사들 역시 제한된 조건 속에서 각자의 기능을 수행했다.
 
지난 1년 동안 뉴욕의 누적 확진자수는 200만 명이 넘었다. 하루하루가 우울하고 불안한 나날들이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 사이 새로 들어선 조 바이든 정부는 코로나 대처에 총력을 기울였다. 뉴욕은 시 예산으로 감염에 취약한 노숙자들을 영업 악화로 문 닫은 호텔에 입주시켰다. 주민들의 반대가 없지 않았지만 길거리에 노숙자를 방치하는 건 위험한 일이어서 그대로 밀어붙였다. 더럽기로 악명 높은 뉴욕의 지하철과 버스 등의 대중교통 시설도 어느 때보다 더 청결하게 소독하고 청소했다.
 
존폐위기의 레스토랑들을 위해서는 PPP(소득보호플랜)나 RRF(레스토랑재기기금)와 같은 지원책을 마련해 주정부 예산으로 직원의 급여와 영업 손실부분을 메꿔 주었다. 많은 건물주는 임차인의 월세를 감면해 주었고, 은행들은 건물주의 담보대출(모기지) 상환금 납부를 몇 개월 후로 연기시켜 주었다. 토목이나 건설 공사는 코로나 기간 중에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업 중 하나였다. 라과디아공항을 비롯해 각종 공공시설과 오피스 건물이 착공되거나 수리에 들어갔다. 교통이 막히지 않고 도시가 비어서 공사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올해 1월 백신접종이 시작됐다. 65세 이상 고령층과 의료진, 교사, 경찰공무원, 대중교통 운행자, 경비원, 배달원, 레스토랑 직원 등 사람들과 접촉이 많은 필수 인력이 우선 접종 대상이었다.
 
백신 물량과 접종 장소가 충분하지 않았던 초기에는 다소 혼란이 있었다. 부지런히 수백 번 마우스를 클릭해야 겨우 인터넷을 통한 예약이 가능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속도가 붙으며 접종자의 수가 날이 다르게 늘었다.
 
뉴요커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백신접종을 격려했다.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을 위한 전화서비스도 병행됐다. 예약방문하면 접종은 간결하게 마칠 수 있다.
 
뉴요커들 정보 공유하며 접종 격려
 
백신 접종 이후 뉴욕은 활기를 되찾았다. 시민들이 야외에서 음료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 박진배]

백신 접종 이후 뉴욕은 활기를 되찾았다. 시민들이 야외에서 음료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사진 박진배]

불법 이민자 직원들을 모두 데리고 백신을 단체로 접종하는 레스토랑 주인도 보였다.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한 안내와 도움 또한 시민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기다리는 동안 시민들은 셀카를 찍어 인증샷을 올리고, 서로를 격려했다. 2차 접종까지 마친 사람들은 주정부 앱에서 증명서를 내려받을 수 있다. 이 증명서는 야구장이나 공연장과 같은 각종 행사장 방문과 호텔, 레스토랑 체크인 때 프리패스가 된다. 현재 유럽연합(EU)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백신여권의 기초 형태다. 백신을 맞는 현장은 살짝 축제 분위기다. 사람들은 마치 미국시민권을 받는 법원에서처럼 기뻐했다.
 
접종자가 늘어나면서 레스토랑의 실내영업도 재개되고 문을 닫았던 백화점과 상점들도 오랜만에 활기를 찾고 있다. 학교들은 방역계획과 더불어 가을학기의 개강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온라인 수업이 편하지 않던 원로교수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대학의 분위기는 리셋된 느낌이다. 합격해 놓고 캠퍼스는 구경도 하지 못했던 신입생들도 등교의 기대에 들떠있다. 지난 4월 초에는 부활절을 전후로 초·중·고 대학생들이 봄방학을 했다. 플로리다나 하와이 등 따뜻한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 뉴요커들로 공항은 인산인해였지만 표정은 모두 밝았다.
 
다시 도시의 선과 미가 악과 추함을 물리치기 시작했다. ‘정의’에 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저력도 살아났다. 우울한 나날을 감내한 결과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은 전 세계의 웃음거리였다. 엉성한 방역시스템,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사람들, 환자 수용에 부족한 병원 시설, 각종 시위의 모습 등이 가감 없이 중계방송됐다.
 
올해 초 백신접종과 함께 상황은 급반전됐다. 지금은 남미를 비롯한 다른 대륙의 상류층이 백신을 맞으러 뉴욕에 온다. 이제는 많은 나라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완전회복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가을엔 집단면역이 이뤄지고 정상적인 생활을 다시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뉴욕의 분위기는 낙관적이다. 예전처럼 예약이 어려운 레스토랑도 늘어나고, 인원제한은 있지만 미술관들도 개관했다. 이제 대학이 열리고 공연이 재개되면 거의 완전한 일상이다. 뉴욕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에서 가장 선망되던 도시 중 하나였다. 그 뉴욕이 다시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다. 지금 뉴요커들의 표정은 밝다. 코로나 상황이 나빴던 지난해, 뉴요커이자 유명 코미디언인 제리 사인펠드가 남긴 말이다. “요란 떨지 마라. 뉴욕은 괜찮다.”
 
박진배 뉴욕 FIT 교수·마이애미대 명예석좌교수
연세대 상경대학, 미국 프랫대학원에서 공부했다. OB 씨그램 스쿨과 뉴욕의 도쿄 스시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뉴욕 아이디어』, 『천 번의 아침식사』 등을 쓰고, 서울의 ‘르 클럽 드 뱅(Le Club de Vin)’, ‘민가다헌 (閔家茶軒)’을 디자인했다. 뉴욕에서 ‘프레임 카페’와 한식 비스트로 ‘곳간’을 창업,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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