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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문화난장] 원로 정치학자의 ‘삼국지’ 도전기

『삼국지』의 명장면인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의 일부. 제갈량이 지도를 가리키며 유비·관우·장비(시계 방향)에게 천하삼분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조선민화박물관]

『삼국지』의 명장면인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의 일부. 제갈량이 지도를 가리키며 유비·관우·장비(시계 방향)에게 천하삼분책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조선민화박물관]

“인생은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빨리 지나간다.(人生如白駒過隙)” 중국 고전  『삼국지』에서 촉나라 장수 강유가 덧없는 세월을 안타까워하는 대목이다. 강유의 한탄은 이어진다. “그러니 어찌 세월을 천연(遷延)할 수 있으며, 어느 날에 중원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강유는 제갈량으로부터 모든 병서와 지혜를 전수받았다. 그는 주군 유선(유비의 아들)에게 민심이 어지러워진 위나라 정벌을 진언했는데 주위에서 출병을 반대한 것이다. 원로 정치학자 신복룡(79·전 건국대 석좌교수)은『삼국지』의 숱한 호걸 가운데 강유를 문무를 겸비한 최고의 영웅으로 꼽는다. 무예가 출중하고 지략이 뛰어나며 나라에 신명을 바친 명장으로 본다.

신복룡 교수의 40년 집념
한 글자도 빼지 않고 완역
연구하듯 주석만 1100개
“돈다발 흔드는 사람 조심”

 신 교수가 또 하나의『삼국지』(집문당)를 보탰다. 그간 한국에서만 400여 판본이 출간된『삼국지』에 그가 굳이 새 책을 더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기존 번역에 대한 아쉬움에서였다. 오탈자가 적지 않고, 일본판을 번안하고, 난해한 대목은 건너뛴 책들이 마음에 걸렸다. 앞서 강유의 말에 나오는 ‘백구과극(白駒過隙)’이 대표적 사례다.
 ‘백구과극’은 고대 경전『예기』에 처음 등장했다. 『장자』 『사기』 『삼국지』 등에도 인용됐는데 대다수 번역본에서 ‘흰 말이 틈을 지나듯 빠르다’ ‘백구(白駒)가 문틈을 지나듯 한다’ ‘흰 망아지가 (작은 문) 틈새로 달려 지나간다’ 식으로 옮겼다. 덩치 큰 말이 좁은 문틈을 통과할 수는 없을 텐데 말이다.
『삼국지』 완역본을 새로 내놓은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기존 판본에서 볼 수 없는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이제 『삼국지』도 학문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삼국지』 완역본을 새로 내놓은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기존 판본에서 볼 수 없는 상세한 주석을 달았다. "이제 『삼국지』도 학문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신 교수는 “이 대목을 평생의 지침으로 여기며 살았다. 한국어 판본 대부분은 이를 오역했다”고 했다. 그는『삼국지』 원문을 하나하나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옮겼다. 1100여 개에 이르는 상세한 주석도 달았다. 『삼국지』에 인용된 원전만 70여 종에 이르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삼국지』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1974년 김구용의 국내 첫 『삼국지』 완역본(일조각)에 달린 주석은 인명·지명 등에 대한 소략한 설명에 머물렀다.
 신 교수와 『삼국지』의 인연도 각별하다. 읽을 것은 물론 먹을 것도 부족했던 한국전쟁 말기, 15살 소년이었던 그는 큰매형이 사준 최영해의 『삼국지』(정음사)를 읽으며 꿈을 키워나갔다. 지금껏 열 번 넘게 읽었다. 그가 ‘삼국지 키즈(Kids)’를 자처하는 이유다. 그리고 40대 들어 새로운 번역을 결심했다. 틈틈이 국내외 판본을 수집·비교했고, 중국 서적·인터넷을 뒤지며 관련 정보를 정리했다. 2007년 정년 퇴직 이후 본격적으로 번역·주석 작업에 매달렸다. 작심 40년, 착수 14년 만의 결실인 셈이다. 쉽고 가벼운 것을 주로 좇는 요즘 세상에서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온 노학자의 끈기와 열정이 묵직한 울림을 준다.
신복룡 교수의 『삼국지』 표지.

신복룡 교수의 『삼국지』 표지.

 그가 『삼국지』에서 특히 좋아하는 한자성어는 ‘비육지탄(髀肉之嘆)’이다. 천하통일을 꿈꾸던 유비가 세력을 잃고 한때 유표 밑에서 지내던 시절 자신의 허벅지에 살이 오른 것을 보고 자책하는 대목이다. “이 난세에 사나이가 전쟁의 흙먼지(戰塵) 속에 말 달리며 천하를 호령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나는 어찌 이토록 살만 찌고 있다는 말인가?”
 ‘비육지탄’은 신 교수의 젊음을 관통했다. 그는 “인생을 결코 빈둥거리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고 돌아봤다. 『삼국지』와 함께 서양 고전『플루타르크 영웅전』 국내 첫 완역도 마쳤다. 두 책 모두 200자 원고지 1만2000장에 이른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은 올 7월께 출판될 예정이다. “집에서는『삼국지』에, 학교에서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집중했어요. 동서양을 대표하는 영웅담을 완역하고 주석을 단 학자는 세계에서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 교수의 전공은 한국정치사다. 『한국분단사 연구』 『한국정치사상사』 등을 냈다. 이른바 난세인 지금, 두 책의 시사점을 물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에서 로마의 (소)카토가 말합니다. ‘민중은 현자를 따라가지 않고 돈다발을 흔드는 사람을 따라간다’고 했죠. 두 책에는 공통된 메시지가 있습니다. 착하게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살라고 합니다. 악인에게 진 다음에 ‘저놈이 나빠’라고 탓하지 말라는 거죠.”
 간단명료한 대답이다. 반면 실천은 어렵기만 하다. 과연 지혜는 뭘까. “『삼국지』의 정통은 조조가 아닌 유비입니다. 『삼국지』의 교훈은 절의와 충성이지 승패의 결과가 아니거든요”라는 신 교수의 결론이 실마리가 될 것 같다.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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