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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국·미세먼지국에 낀 韓…초등생 지도, 바꿀 방법 있다

 
‘초등학생이 그린 세계지도’라는 제목의 이미지 하나가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유머러스한 그림체지만 한국이 처한 살벌한 처지를 제대로 묘사했다. 그림에 따르면, 2021년의 한국은 동쪽으론 ‘방사능국’ 일본, 서쪽으론 ‘미세먼지국’ 중국, 북쪽으론 ‘핵무기국’ 북한에 둘러싸여 있다. 피할 곳도 없고, 거를 수도 없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초딩이 그린 세계지도'의 모사도. 실제 이 그림의 원본을 그린 사람은 대학생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일본을 묘사한 비속어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초딩이 그린 세계지도'의 모사도. 실제 이 그림의 원본을 그린 사람은 대학생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일본을 묘사한 비속어 부분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속수무책 한국

 
최근 일본 상황부터 보자. 일본은 당장 2년 뒤부터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총 137만톤을 태평양에 방류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다핵종처리시설로 위험한 방사성 핵종(방사성 물질)인 세슘-137, 스트론튬-90 등을 기준 수치 이하로 제거한다고는 하지만, 삼중수소(트리튬) 800조~1000조 베크렐이 그대로 함유돼 있어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삼중수소는 보통 물과 결합한 형태로 존재하는데 일반적인 물과 화학적 성질이 같아 현재 기술로는 제거가 매우 어렵다.
 
후쿠시마 원전 부지에 쌓여 있는 오염수 탱크. 사진 연합뉴스.

후쿠시마 원전 부지에 쌓여 있는 오염수 탱크. 사진 연합뉴스.

 
왜 바다에 버리기로 한 걸까. 비용이 가장 덜 들기 때문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를 위해 크게 5가지 방법을 놓고 고심해 왔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방식.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방식.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우리나라는 정부부터 시민단체, 심지어 일선 시의회까지 나서 일본 정부를 규탄하고 있지만, 일본이 결정을 번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본은 2~3년 전부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명분을 쌓기 위해 국제사회와 치밀하게 공조해 왔다. 그 결과 방류 결정을 발표한 직후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긍정적 반응을 공식적으로 내놨다. 우리 정부는 3년 전부터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에 우려를 표해 왔다. 하지만 정보 공개와 투명한 처리만 일본에 요구했을 뿐, 국제사회에 문제를 의제화하는 등의 움직임은 부족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원자력 전문가는 “일본과 함께 후쿠시마 오염수에 대한 공동조사를 진행하고 국제기구와도 공조해 감시할 필요가 있었는데 시기를 놓쳤다”고 말했다. 
 

중국, 미세먼지 인정 안 하는 이유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 대처에도 외교적 능력의 한계가 드러난다. 중국은 우리 정부가 미세먼지 문제를 들고나올 때마다 “근거가 있냐”며 반발했다. 중국은 미세먼지가 우리나라 국내 영향이 더 크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달 28일(위)과 29일(아래) 경북 포항시의 하늘. 하지만 중국은 미세먼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진 뉴스1

지난달 28일(위)과 29일(아래) 경북 포항시의 하늘. 하지만 중국은 미세먼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진 뉴스1

 
지금까지 우리가 낸 미세먼지 자료 중 중국이 인정한 건 사실상 단 한 건에 불과하다. 2019년 11월 한·중·일 공동연구로 발표한 ‘동북아 장거리이동 대기오염물질 공동연구 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한국 미세먼지에 미치는 연평균 영향은 32.1%다. 구체적으로 서울 미세먼지의 39%, 대전의 35%, 부산의 28%에 중국이 영향을 준다고 나온다.
 
당시 우리 연구진은 겨울철 미세먼지만 따로 자료를 내자고 했으나 중국 측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연구진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겨울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일 때 중국 기여율이 70~80% 수준이고, 최악일 때는 90%가 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처럼 미세먼지와 방사능 문제 모두 우리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문제지만 몇 년간 외교적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해결책은 없을까. 
 
 

최악의 대기 오염에 시달리는 싱가포르 

 
국경을 넘어 날아드는 대기 오염물질로 우리나라만큼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는 국가가 있으니, 바로 싱가포르다. 청정국가 이미지의 싱가포르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인도네시아에서 날아오는 연무(燃霧)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삼림이 불타면서 뿜어내는 연기가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 하늘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발 연무가 닥쳤던 2013년 싱가포르의 하늘. 사진 EPA=연합뉴스

인도네시아발 연무가 닥쳤던 2013년 싱가포르의 하늘. 사진 EPA=연합뉴스

 
2015년은 싱가포르로선 최악의 해로 꼽힌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과 칼리만탄 섬(보르네오의 인도네시아식 명칭)에서 발생한 산불로 막대한 연무 피해를 겪었기 때문이다. 이해 6월 초 시작된 연기는 10월 말까지 싱가포르 하늘을 뒤덮었다. 대기오염지수가 401을 넘어 목숨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비행기 운항이 중단되고 선박도 발이 묶였다. 관광업에도 큰 손실이 발생하면서 피해액이 18억 달러에 달했다.
 
연무가 발생했던 2015년. 사진 왼쪽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과 가운데 칼리만탄섬에서 시작된 연무가 사진 가운데 위쪽에 있는 싱가포르를 덮치고 있는 위성사진. 사진 NASA

연무가 발생했던 2015년. 사진 왼쪽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과 가운데 칼리만탄섬에서 시작된 연무가 사진 가운데 위쪽에 있는 싱가포르를 덮치고 있는 위성사진. 사진 NASA

 
인도네시아도 호흡기 질환 사망자가 10만명이 넘었다. 우리나라 4분의 1 면적인 260만 헥타르의 숲이 불탔다. 이때 내뿜은 탄소량이 영국ㆍ독일 같은 국가의 3~4배였다고 한다.
 

싱가포르의 강단 있는 전략 

 
문제는 이 산불이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팜유 산업은 한해 GDP의 5%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의 주요 산업이다. 팜유는 과자ㆍ초콜릿ㆍ라면ㆍ빵 같은 식품, 로션ㆍ립스틱 같은 화장품에 쓰여 활용도가 매우 높다. 팜유 기업들은 관행적으로 인도네시아 숲을 불태워 밀어버리고 팜나무를 심어왔다. 그러다 불이 옮겨붙으면 국가 전체의 소방력을 총동원해도 불길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번졌다. 인도네시아 숲은 토탄ㆍ이탄 지대로 숲 전체가 거대한 불쏘시개다.
 
인도네시아 숲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기업들이 팜 나무를 심기 위해 의도적으로 불을 지르기 때문이다. 사진 EPA=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숲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기업들이 팜 나무를 심기 위해 의도적으로 불을 지르기 때문이다. 사진 EPA=연합뉴스

 
거대 팜유 기업들이 인도네시아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연무는 끊임없이 싱가포르를 괴롭혔다. 한 해 걸러 한 해 초대형 산불이 터졌다. 싱가포르는 이때마다 인도네시아에 산불 예방과 기업 감시, 위성 지도 공개 등을 요구했으나 인도네시아는 이런 요청을 무시하다시피 했다. 인도네시아 정치인이 팜유 기업과 유착돼 있기도 했고, 싱가포르와의 국력 차이도 컸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인구는 2억7000만명으로 싱가포르 570만명의 47배이고, 면적은 190만㎢ 대 700㎢로 2600배 차이다.
 
인도네시아 숲은 토탄, 이탄 지대라 불이 쉽게 타오른다. 사진 AFP=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숲은 토탄, 이탄 지대라 불이 쉽게 타오른다. 사진 AFP=연합뉴스

 
싱가포르는 여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싱가포르는 '외교적' 해결책을 치밀하게 모색했다. 먼저, 인도네시아발 연무에 시달리는 다른 동남아 국가들을 묶어 대처하기 시작했다. 2002년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를 포함해 아세안(ASEANㆍ동남아국가연합) 국가와 함께 연무오염방지협정을 체결했다. 인도네시아만 이 협정에서 빠졌다.
 
싱가포르는 더 나아가 동남아 수준이 아닌 유엔(UN)에 연무 문제를 끌고 들어갔다. 2010년 5월 열린 유엔 환경포럼에서 싱가포르는 인도네시아의 연무 문제를 중요한 안건으로 제출하면서 국제무대에 의제화했다. 기업도 압박했다. 싱가포르 의회는 초국경연무오염법을 의결해서 싱가포르에 대기 오염을 유발한 ‘해외 기업’에도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인도네시아도 결국 손을 들었다. 2014년 9월 연무오염방지협정을 비준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달라졌다. 팜유 기업들을 봉쇄하고 수사하는 등 이전과는 확연히 변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윤정현 선임연구원은 “싱가포르는 정부 간 갈등을 피하기 위해 전문가 그룹이나 싱크탱크 같은 NGO(비정부기구)를 활용해 사태를 풀어나갔다”며 “국제적 문제는 시기와 방법을 고려해 다각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4가지 스텝

 
싱가포르가 택했던 방식은 사실 유럽에서 산성비 문제를 해결한 스웨덴ㆍ노르웨이ㆍ핀란드에서도 활용했던 전략이다.
 
산성비로 인해 피해를 받은 숲의 모습. 1981년 미국 버몬트주. 사진 AP=연합뉴스

산성비로 인해 피해를 받은 숲의 모습. 1981년 미국 버몬트주. 사진 AP=연합뉴스

 
먼저 취해야 할 행동은 ‘증거 수집’이다. 다른 피해국과 함께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다. 최대한 많은 국가의 데이터를 축적해 명분을 쌓는 것이 유리하다. 
 
두 번째 단계는 ‘국제 사회에 의제화’하는 것이다. 이땐 국제적 감각의 ‘쇼맨십’도 필요하다. 유럽 산성비 문제 해결에 앞장선 스웨덴ㆍ노르웨이의 사례를 보자. 냉전 중이던 1975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의 쟁점은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인권 문제였다. 소련은 이를 회피하려고 환경 문제를 안건으로 냈고, 노르웨이가 이를 덥석 잡아서 주요 안건으로 부각시켰다. 여기서 산성비 문제가 대두됐고 유럽 전반의 논의가 시작됐다.
 
그다음은 의제화한 문제를 문서화해서 ‘모든 국가가 지켜야 할 규칙’을 설정하는 단계다. 산성비 문제를 다룬 제네바 의정서, 이산화탄소 감축을 다룬 교토 의정서처럼 모든 국가가 공히 따르는 규약을 정하는 식이다. 마지막 단계는 '규제 수준을 점차 상향'하는 것이다. 연무 문제, 산성비 문제 모두 논의를 지속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다.
 
전문가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 특수성을 고려한 전략의 필요성도 지적했다. 중국과는 국력 차이, 일본과는 반일 감정으로 인한 특수성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윤정현 선임연구원은 “유럽도 산성비 문제 해결에 30년 이상, 싱가포르도 인도네시아를 협정에 참여시키는 데만 10년이 넘게 걸렸다”며 “우선 현재로써는 여러 나라와 공동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정례화해서 조금씩 업그레이드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영상=김지선ㆍ정수경 PD, 김지현ㆍ이가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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