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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의 이코노믹스] 21세기 편자의 못을 쥐고 있어야 대한민국이 생존한다

반도체 패권경쟁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마찰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의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와 일자리 문제로 시작해 자유시장 경제와 국가자본주의 간의 체제 경쟁으로 발전했다. 이윽고 미국 바이든 행정부에 들어서는 국가 기술주의와 글로벌 산업 패권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더해 유럽연합(EU)도 정부주도 반도체 산업육성 경쟁에 참여했다. 그야말로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시작되었다.
 

미·중 갈등 커질수록 반도체 중요
중국이 대만 쉽게 보지 못하는 건
대만산 반도체 수입 절실하기 때문
삼성전자 지켜야 한국도 생존 가능

지난 2월 24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의 공급사슬에 대한 대통령 명령’은 “튼튼한 공급사슬의 확보를 위해 미국 제조업을 재건하고 활성화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할 것이며, 미국은 경제적 번영과 국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튼튼하고 다양하며 안전한 공급사슬이 필요하다”는 대원칙을 설정했다. 제조업과 공급사슬 중에서도 100일 이내 긴급하게 상황 보고를 요구한 4개 품목 중에서도 핵심은 반도체 산업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서명 문서에서 반도체는 ‘21세기 편자의 못’으로 그 중요성을 설명하고, “이 반도체는 우표보다 작고 사람 머리카락보다 1만 배 엷은 트랜지스터 80억 개를 넘게 담고 있다. 이 칩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스마트폰·TV·의료진단기구 등 현대 생활의 많은 부분을 가능케 하는 경이로운 혁신이자 미국에 큰 힘이 되는 근간”으로 정의했다. 이렇게 중요한 반도체 산업에서 어떻게 미국은 세계 반도체 시장의 45~50%를 차지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생산 비중은 1990년 37%에서 2019년 12%로 낮아졌으며 미국 스스로 반도체 위기를 거론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는가?
 
1990년대 이후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물류비용이 저하되고 직접투자를 통해 세계를 상대로 가능해진 비용 효율성이 높은 공급사슬의 구성에 그 배경이 있다. 이 구조를 토대로 미국의 다국적 기업은 지식재산권에 중심을 두게 되면서 어디에서 상품이 최종적으로 제조되는가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애플의 스마트폰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반도체의 집적도가 높아짐에 따라 제조공정이 고도화되고 투자 규모가 방대해짐에 따라 미국 반도체 산업은 설계중심으로 재편됐다. 미국에서는 설비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고, 반도체 제조는 주문생산방식(파운드리)으로 전환함으로써 미국의 비중은 대폭 낮아지는 대신 동아시아의 비중이 높아졌다.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나선 미국
 
반도체 이미지

반도체 이미지

그러면 왜 이제 와서 세계 반도체 생산에서 동아시아 비중이 높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가? 최근 미 상무장관은 미국이 반도체 부족으로 경제와 안보 양면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강조한 바 있다. 미국과 중국의 동반관계에서는 미국의 선택에 따라 반도체 공급을 동아시아에 의존했으나, 신냉전의 대립관계로 전환함에 따라 미국의 반도체 공급사슬이 내포하고 있는 지정학적 위험이 주목받게 됐다.
 
2018년 7월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반도체에 25% 관세를 부과했으나, 중국은 반도체를 주로 한국과 대만으로부터 수입하기 때문에 관세 부과가 제재의 효과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역으로 중국 반도체를 사용하는 미국 기업들에 부담을 가중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트럼프 정부는 제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와 장비 수출 금지조치를 단행해 반도체 수출 문제는 5세대(5G) 이동 통신 관련 안보문제로 비화했다.
 
반도체 공급사슬의 과도한 동아시아 의존문제는 올해 들어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 감축에 들어감으로써 미국 경제의 당면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자동차 반도체 부족사태를 초래한 원인은 일차적으로 자동차 업체들이 수요예측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미 정부가 중국의 자동차 반도체 생산업체인 SMIC를 수출금지 대상으로 제재함으로써 사태는 더욱 악화했다.
 
각국의 반도체 산업 현황

각국의 반도체 산업 현황

미국 정부는 자동차 반도체 부족 사태를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정책을 정당화하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했다. 그러나 반도체는 생산의 신축성이 미약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문제는 장기간 갈 수밖에 없다. 반도체 시장은 수요와 공급 양면이 과점구조를 형성하고 장기계약을 위주로 생산한다. 기술적으로는 생산 품목을 바꾸기 위한 생산 시스템의 변경이 어렵다. 더구나 공장 구조물 건설에 12~24개월, 장비를 설치하고 생산 시스템을 갖추는데 12~16개월, 시험 생산을 거쳐 양산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또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최소한 4년 정도의 시간을 소모해야 제품이 시장에 나올 수 있다.
 
첨단 반도체는 한국·대만 양강 체제
 
반도체 부족은 주로 기술 수준이 낮은 반도체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7나노(1㎚는 10억분의 1m) 이하의 첨단 반도체는 장기계약으로 수급이 안정돼 있기 때문에 공급 부족 현상이 없다. 자동차 반도체는 8인치 웨이퍼에 90나노 공정에서 주로 생산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자동차 반도체 부족 문제가 심각하지만 투자 유인이 낮기 때문에 생산설비 증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반도체 종류별 국가 비중

반도체 종류별 국가 비중

반도체 산업 패권 경쟁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우선 중국은 미국의 수출금지로 14나노 미만의 첨단 반도체 생산설비를 수입할 수 없게 됨에 따라 한국과 대만을 추격하기 어렵게 됐다. 한편 인텔은 200억 달러를 투자해 새로운 공장을 짓고 파운드리 사업 진출 계획을 발표했으나, 반도체 생산에서는 이미 삼성전자와 대만 TSMC를 따라잡기 어렵다. 최소한 앞으로 4년간은 삼성전자와 TSMC의 양강 구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7나노 이하의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TSMC 둘밖에 없다. 두 기업은 3나노 이하에서 치열한 기술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중 간의 갈등에서 대만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만의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은 중국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대만에 대한 중국의 제재는 고작 파인애플과 육류의 수입금지에 그치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은 대만으로부터 반도체 수입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양국의 공급사슬에서 우리나라의 반도체 공급은 없어서는 안 될 구성요소다. 이런 구조를 토대로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물론 안보에서도 독자적인 소리를 낼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글로벌 산업 패권 경쟁과 신냉전 갈등이 심화할수록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는 대한민국의 버팀목으로서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중국 의존도 높아 대만과의 경쟁에서 불리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은 D램 생산의 69.5%, 낸드 플래시 생산의 44.5%, 파운드리의 17%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세계 경제에서 반도체 공급사슬의 중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러나 기술 국가주의와 안보 대립으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두 가지 큰 위험을 직면하고 있다.
 
첫째, 세계 반도체 장비시장의 50%, 반도체 지식재산권의 52%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정부주도 추격은 우리나라에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중국의 보복과 미국의 수출 금지 압력이다. 대만의 TSMC는 매출의 67%를 미국에서 일으키지만, 중국 시장 의존도는 6%에 불과하다. 반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수출(2020년 1~7월)에서 중국이 41%, 미국 7.7%를 차지하고 있어 중국 위험을 크게 안고 있다. 이 두 가지 위험에 대응하는 대책은 오직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 경쟁력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사슬에서 중요한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2020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매출 72조8000억원, 영업이익 18조8000억원, 시설투자 32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에서 반도체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30.8%임에도 불구하고 총투자액에서 반도체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85.4%다. 이같이 반도체 부문에 극도로 편중된 설비투자 구조는 가전·통신·반도체를 망라하는 상품구조를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의 육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삼성전자만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 패권주의와 신냉전 체제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도 함께 걸려 있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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