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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큰소리 쳤지만…'백신 무기화'에 불안한 한미 정상회담

정부가 "5월 후반기 워싱턴에서 개최된다"고 발표한 한ㆍ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외교당국 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한국이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한 사활적 상황에 처해있는 가운데 이번 회담이 개최된다는 점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 수석ㆍ보좌관 회의에서 “백신 협력 등 양국 간 현안을 긴밀히 공조하겠다”며 “백신 수급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다루겠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담판을 통해 백신 공급 문제에 활로를 뚫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난 16일 새벽 한ㆍ미 정부가 “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초청으로 5월 후반기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밝힌 뒤 1주일째 회담 개최일이 특정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화상으로 열린 기후정상회의에 참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화상으로 열린 기후정상회의에 참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서 외교가에선 “의제 조율 과정에서 양국이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일각에선 회담 연기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러자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23일 문자 공지를 통해 “한ㆍ미 양국은 5월 후반기 중 상호 편리한 시기를 조율 중”이라면서 회담 연기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백신 제공 문제에 대한 미국 정부와 현지 분위기는 일단 한국 정부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간) “해외로 보내는 것을 확신할만큼 백신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지만,(앞으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경을 맞댄 캐나다쥐스탱 트뤼도 총리와의 통화 사실을 공개하며 그 대상으로 "중미 등 우리가 도울 수 있다고 확신하는 나라들"을 언급했다. 국무부는 "캐나다·멕시코를 비롯해 (중국 견제용 연합체인)쿼드(Quad,미·일·호주·인도)가 수급 관련 협의를 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부터 미국 모든 성인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자격이 부여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를 알리는 영상과 글을 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영상에서 “여러분, 좋은 소식이 있다”며 “오늘부로 모두가 백신을 접종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트위터 캡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부터 미국 모든 성인에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할 자격이 부여된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를 알리는 영상과 글을 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영상에서 “여러분, 좋은 소식이 있다”며 “오늘부로 모두가 백신을 접종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트위터 캡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도 “쿼드 백신 전문가 그룹 회의에서 최소 10억회 분량의 백신을 지원하고 인도ㆍ태평양 지역 접종을 강화하는 데 노력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렇게 미국은 백신 우선 공급 대상으로 주변국과 쿼드 회원국을 우선 거론했는데, 주변국도 쿼드 가입국도 아닌 한국이 특별한 배려를 받기는 녹록치 않다는 현실이 재차 확인된 셈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한·미 정부 사이에 '백신 스와프'가 추진중임을 공개하고, 지난 21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선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며 구애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미국 측의 반응 역시 신통치 않다. 미국 측의 공식 반응은 "한국 또는 다른 외국과의 비공개 외교적 대화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 지금의 초점은 미국 내에서의 백신 접종 노력"(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이었다.   
 

외교가에선 “미국이 백신을 외교적인 무기로 삼는 ‘백신 국제정치’를 벌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이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백신 수출을 금지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그럴 리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미국이 금수조치를 취한다면 그건 깡패들이나 하는 일”이란 말까지 했다. 
 
한국이 미국의 백신 우선 협력 대상에서 밀린 데엔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둔탁한 궤적을 그리며 후퇴한 한·미 관계의 그늘이 투영됐다는 지적이 외교 전문가들에서 제기된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미국은 끊임 없이 중국에 대항하는 미국쪽에 서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매번 거부해왔다”며 “미국이 어려울 때는 외면하다 갑자기 '동맹에게 백신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하면 미국이 수용하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문재인 정부의 쿼드 가입 거부는 결과적으로 백신 대신 중국을 택한 실책이 됐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8일 오후 전북 군산시 코로나19 백신접종용 최소잔여형(LDS) 주사기 생산시설인 풍림파마텍을 방문해 최소잔여형 백신 주사기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8일 오후 전북 군산시 코로나19 백신접종용 최소잔여형(LDS) 주사기 생산시설인 풍림파마텍을 방문해 최소잔여형 백신 주사기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쿼드 가입을 요청해왔고, 이는 바이든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서울에서 양국 외교·국방장관간 '2+2 회담'이, 이달초 워싱턴에서 한·미·일 안보실장회의가 열린 뒤에도 한국 측 입장은 그대로였다.
 
봉영식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미국은 3월 쿼드 정상회의에서 백신과 관련해 ‘쿼드의 역량을 결합한다’는 공동성명을 내고 쿼드를 중심으로 한 백신 공급 계획을 밝혔다"며 "국무·국방장관의 방한은 마지막 쿼드 가입 요청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봉 위원은 이어 "최근 미ㆍ일 정상회담 뒤 쿼드 회원국인 일본에 대해선 백신 추가 공급이 결정된 반면 한국과는 정상회담 일정 조율까지 난항을 겪는 듯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건 자칫 ‘코리아 패싱’의 시그널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백신 문제를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외교관행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백신 계약 당사자는 정부가 아닌 기업으로, 회담 의제로 백신을 올린 것은 정상적 외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워싱턴을 방문한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추가적으로 백신을 확보한 건 화이자 CEO와의 통화를 통해서 였다. 천영우 전 수석도 “문 대통령의 언급에 미국은 '한국이 백신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려한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며 “합의되지 않은 사실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는 자체가 외교 프로토콜에 어긋난다”고 했다. 
16일(현지시간) 오후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DC 소재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오후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미국 워싱턴DC 소재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같은 일련의 지적들에 정부 측은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여권의 고위 인사는 중앙일보에 "한국이 소외감을 느낄까봐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 개최 발표를 일부러 미ㆍ일 정상회담 전으로 앞당길 정도로 한국을 배려하고 있다"며 "백신 추가 확보 결과도 곧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남기 총리 직무대행 역시 이날 상황점검회의에서 "일부 제약사와 상당한 물량의 추가 공급 협의가 진전됐다"며 "백신 추가도입 노력은 기존 계약의 차질 때문이 아니라 추가 소요 가능성을 감안한 것"이라고 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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