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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가 아끼던 민정계…‘물망 장관’ 김용태 전 비서실장 별세

199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김용태(왼쪽) 당시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중권(오른쪽)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이 함께 걷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1997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김용태(왼쪽) 당시 김영삼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중권(오른쪽)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이 함께 걷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김용태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23일 별세했다. 85세.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58년 국제신문 기자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신문을 거쳐 1963년 조선일보에 입사한 고인은 조선일보 정치부장과 편집국장을 역임한 뒤 5공화국 출범과 함께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민주정의당(민정당) 소속으로 1981년 대구 동·북구에 출마에 처음 금배지를 단 뒤 11~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는 언변이 수려하기보다 오히려 어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민정당 시절 3년 가까이 당의 입 역할을 맡아 최장수 대변인으로 기록됐다. 고인을 겪어본 사람들은 “솔직하고 담백한 성격에다 친화력까지 갖춰 금세 친한 친구처럼 느끼게 만든다”고 입을 모은다.
 
고인은 ‘의리파’로도 통한다. 노태우 정부 출범 후 ‘5공 청산’ 과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측근이던 정호용 당시 의원의 거취를 두고 이른바 ‘정호용 파동’이 일자 주저 없이 정 의원을 지지하는 서명파에 가담했던 까닭이다. 고인의 생활 신조는 “원칙대로 살아라”였다.
 
그는 민정계 핵심이면서도 고(故)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아끼는 사람이었다. 1960년대 정치부 기자로 활동할 때부터 YS와 각별한 사이였다.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민자당)이 출범한 뒤 정책위의장과 원내총무(원내대표)를 맡았고,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개각이 있을 때마다 “YT가 제격”이라며 하마평에 올라 ‘물망 장관’이란 별명도 얻었다. 1994년 12월에는 실제 내무부 장관이 됐고, 1996년 15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 1997년 2월 28일부터 1998년 2월 24일까지 YS의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다.
 
유족으론 배우자 정난희씨, 아들 재민·재천씨, 딸 휘정씨가 있다. 장례식장은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이고, 26일 오전 7시 발인 예정이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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