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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늦깎이 시인의 애틋한 사부곡

여든살에 첫 시집을 낸 성옥분 시인

여든살에 첫 시집을 낸 성옥분 시인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inform@joongang.co.kr 
 
시는 어디서 오나. 시인은 어떨 때 시심(詩心)에 사로잡히나. 1941년생, 올해 여든살인 시인 성옥분씨의 시 쓰기는 그리움에서 비롯된다. 대상이 없는 막연한 그리움이 아니다. 생전 난초를 사랑하고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사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다. 2013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요즘 기준으로는 천수를 누렸다고 하기 어려운 일흔여덟이었다. 성 시인은 이런 얘기를 담담히 전하며 지금도 목에 멘다. "왜 시를 썼느냐 하면…아이들 아버지가 2013년에 돌아가니까, 그러니까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고 하면서다. 
 시작은 마음 가는 대로 쓰는 수필이었다. 계간 문예지 지구문학으로 등단했다. 가까운 복지관 시 창작반에서 시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시 비슷한 것들을 끄적거리게 됐다. 역시 지구문학으로 시인 등단한 게 지난해. 등단 1년 만에 78편을 소담하게 담아 최근 펴낸 첫 시집 『난촉이 올라』(지구문학)는 단아하면서도 짙은 향기를 풍기는 난초 같은 시집이다. 어떤 그리움은 옅어지지 않는다. 단호한 이런 목소리가 행간에 고여 있는 것 같다. 사그라지지 않는 사무침을 담은 세월을 잊은 시집이다.
 
 시집의 제목을 딴 표제시 '난촉이 올라'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전문이다. 
 "봄빛을 안고 난향으로/ 찾아온 당신/ 작년에는 여섯 촉 올라오더니/ 올해는 일곱 촉 올라왔네/ 꽃대로 쭉 올라오네// 사무친 그리움이 신열이 난 거야// 가슴 속까지 채워지는 향기/ 당신의 체취는 깊은 군자의 향취/ 마디마디 단술로 맺힌 진주이슬/ 당신의 속삭임은 다정도 하지// 해마다 촉은 더하여 올라오는데/ 철없이 꽃은 피어나는데/ 꽃향기 이렇게 감돌고 도는데// 빼어난 춘란 한 촉 올라// 나 어쩌라고/ 님이여, 그리운 당신이라/ 맞이할까요".
 사무친, 신열, 나 어쩌라고. 이런 뜨거운 시어(詩語)들 말이다.
 세월을 잊은 뜨거움이라는 투로 소개하고 있지만,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물학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장 이웃 일본의 100세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2013년 별세)가 생각난다.
 성 시인의 시편들은 애틋한 사부곡(思夫曲)이지만 거기서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생활이, 삶의 감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예술은 무용해서 가치 있다는 무익한 효용론은 어쩌면 수정되어야 한다. 노년의 시간을 풍요롭게 하는 지극히 생산적인 활동이다. 100세 시인은 우리에게도 생길 것이다.
 
 -시집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한편을 고른다면.
 "시집 제목처럼 '난촉이 올라'가 내 대표적인 시고, 대표적인 나의 마음이다. 아이들 아버지가 퇴직하면서 받아온 난촉이 해마다 숫자가 늘어난다. 아이들 아버지 화신으로 생각하고 정성껏 키우다 보니 이 난을 보면 아이들 아버지 보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을 시로 표현하면 심경에 변화가 생기나.
 "슬픔이 가라앉고 차분해진다. 정신도 맑아진다. 주변의 모든 게 시의 소재로 보인다. 그래선지 전부 아름답게 보인다. 내가 몰랐던 하나하나의 소중함, 진지함을 시를 쓰니까 알겠더라."
 -생활도 달라지나.
 "엄청 달라졌다. 잘 쓰든 못 쓰든 시를 쓰려면 자연을 보러 들로 산으로 강으로 나가야 된다. 그러다 보니 내 삶이 활동적이고 활발해지는 것 같다. 시를 쓰려면 같은 물이라도 하얀 물, 파란 물, 옥색 물, 여러 가지 빛깔이 있는데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생활이 외롭다거나 쓸쓸하기보다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다. 내가 이 나이에 유명 시인이 될 리 없지만 지금 가장 감사한 것은 내가 노후에 이렇게 혼자 살면서도 이런 생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구나, 이렇게 살면 치매 같은 건 안 걸리겠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시 쓰기는 내 노후생활에서 절대적이다."
 -시 쓰다가 안 풀리면 어떻게 하나.
 "일단 덮는다. 거기서 계속 가면 더 안 된다. 그냥 안 쓴다. 내 경우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일어났을 때 시상이 제일 많이 떠오르는 것 같다. 아마 정신이 가장 맑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좀 늦게 일어나는 편이니까 5시나 6시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행복한 노년의 시 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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