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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토착왜구" 소리칠 때가 좋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2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8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을 앞두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계자들이 사법부를 규탄하는 문구를 부착하고 있다. [뉴시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2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2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88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을 앞두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계자들이 사법부를 규탄하는 문구를 부착하고 있다. [뉴시스]

퇴임 7개월을 남기고 조지 W 부시는 이라크전 때 너무 호전적인 단어를 구사했던 것을 후회했다. "덤벼보라" "(빈 라덴을) 죽이든 살리든 데려오라" 같은 거친 말들이 자신을 '전쟁을 갈망하는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수사(修辭)를 썼더라면 국민 분열과 국제사회의 오해가 덜했을 것"이라고 했지만 때는 늦었다. 부시를 인터뷰한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매가 비둘기의 언어를 말하다"는 비아냥 조의 제목을 달았다.
 일본 정부에 대한 위안부 손배소 각하 판결로 문재인 대통령의 머리가 복잡하게 됐다. 외교적 부담은 덜게 됐지만 피해 할머니들과 반일 감정을 생각하면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한·일 문제를 둘러싸고 뱉었던 성말랐던 말을 주워 담기가 골치 아플 것이다. 문 대통령의 '반일 메시지' 수위는 취임 후 줄곧 '크레센도'(점점 세게)였다. 2017년 광복절 땐 "한·일 관계 걸림돌은 일본의 역사 인식"이라고 질타했고, 이듬해 삼일절 땐 '반인륜적 인권범죄'라는 말이 동원됐다.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들고나오자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격앙했다. 이러던 '매의 언어'는 임기 후반 '비둘기의 언어'로 급선회했다. 올 초 신년 회견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손을 들어준 1차 판결에 대해 "곤혹스럽다"고 토로하더니 삼일절 땐 "과거에 발목 잡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뒤집힌 위안부 판결, 정부에 숙제
출구 없는 선악 논리론 해결 난망
현실 고려한 합리적 해법 찾아야

 취임 전부터 부정해 오던 박근혜-아베 정부의 2015년 위안부 합의도 최근 '국가 간 공식 합의'라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미·중 신냉전 속에서 한·일 문제를 방치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뒤늦게라도 현실을 깨달은 건 다행이다. 그러나 그 사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는 타격을 입었다. 인화성 강한 한·일 문제를 '조금 다른 수사법'으로 관리했다면 지금처럼 곤혹스럽진 않았으리라.
 이번 위안부 판결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감정 대신 이성으로, 분노 대신 외교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판결에는 다른 주권 국가는 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국가 면제' 논리가 적용됐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청구권이 있음을 부정하진 않지만, 관습법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감정은 감정이고, 법은 법이다. '우리는 선, 너희는 악'이라는 이분법은 국내 정치에선 먹힐지 모르나 이해관계가 부닥치는 국제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세계가 우리를 중심으로 돌 것이라는 '희망 회로'는 고립을 낳을 뿐이다. 일본의 오염수 방출 결정을 둘러싼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반응에서 보지 않았나.
 아니나 다를까, 판결을 두고 '토착왜구' 비난이 요란하다. 신조어 토착왜구의 위력은 대단하다. 피식민 지배의 상흔을 간직한 한국 사회의 콤플렉스를 절묘하게 건드린다. 한·일 문제를 이성적·합리적으로 풀어보자는 목소리는 이 한마디에 움츠러들기 일쑤다. 우리 사회가 반공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면서 '빨갱이' 딱지의 위력이 쇠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토착왜구 딱지가 봉인해 버린 담론 구조는 막상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소외시켰다. 윤미향 추문마저 잉태했다. 박-아베의 위안부 합의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일본군의 관여 및 책임 인정의 뜻으로 화해치유재단에 일본 정부 예산이 들어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합의 후 일본이 "배상은 아니다"고 우기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재단을 해산해 버린 뒤 수수방관해 온 우리 정부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제 열다섯 분밖에 남지 않았다.
 대법원에선 어떻게 결론 날지 알 수 없지만 이번 판결이 건설적인 한·일 관계 해법을 찾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너무 늦은 건 아닌가 걱정이다. 하산 길 제 몸 추스르기도 바쁜 정부일 텐데. 하지만 지혜를 상징하는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돼야 날개를 편다지 않는가. 문 대통령도 최악의 한·일 관계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남기고 싶진 않을 거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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