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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부모 농사일 도우려 직장 때려치고 시골 내려온 사위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88)

꽃이 만발하는 봄이지만 농사짓는 분은 반갑지만은 않다. 농사를 업으로 하고 살던 옛 시절, 바쁜 한 철엔 두레나 품앗이로 동네가 시끌벅적했고 고된 농사일이 풍요롭고 재밌었다. 자기네 일을 먼저 하려고 위아래도 없이 멱살잡이와 삿대질도 하며 전쟁을 치렀지만, 그렇게 일을 끝내고 나면 풋구, 호미씻이라며 모여 한바탕 술판을 벌였다. 원수가 되었던 관계도, 섭섭한 일도 원래대로 돌아갔다. 그때엔 순서가 밀리긴 해도 사람을 구해야 하는 걱정은 없었다.
 
지금은 살기 힘들다는 말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농사짓던 젊은 사람들이 세월이 흘러 70~80대가 돼 체력이 안 따라주니 힘들다는 것이다. 시골은 아직 정을 나눌 이웃이 있어 더 행복한 삶일지 모른다. 틈틈이 방학(?)을 이용해 여행도 가고, 일이 끝나면 회관에 모여 요가도 배우고, 짝을 맞춰 콜라텍도 간다. 옆집 할머니 몇 분은 오늘 새벽에도 벌써 산나물을 한 자루씩 뜯어 와 마당에 부려놓고 호미 잡고 나가신다. 힘든 노동이지만 자기 일에 숙련된 체력이 부럽다.
 
농사는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니어서 자율적인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사진 pixabay]

농사는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니어서 자율적인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사진 pixabay]

 
농사일은 못 배운 사람이 하는 일이라 여기던 우리 부모들은 자식에게 힘든 일을 안 시키려고 기를 쓰고 공부를 시켰다. 그러다 보니 도시에선 좋은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취직 못 한다고 난리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이 수십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의 주체인 농사일은 일할 사람이 없어 난리인데, 그 일은 질 낮은 일이라고 기피한다. 자연과 농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우리의 환경과 생명을 책임진다.
 
농사일을 안 하게 하려고 힘들게 공부시켜놨더니 부모를 돕겠다며 좋은 직장에 다니던 사위가 가족을 이끌고 시골로 내려왔다. 인간은 너나 나나 청개구리과다. 하하. 내려와 줘서 고마운 마음과 함께 힘들게 일하는 자식을 보는 것도 마음 아프니 타박만 늘어난다. 그래도 잔소리할 힘이 남아 있는 부모와 함께하니 든든하다며 행복해한다. 이 힘든 노동을 두 분이 평생 해오셨다는 것에 마음이 더 아프단다.
 
농사의 또 다른 매력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 도장을 찍는 것이 아니어서 자율적인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잘생긴 얼굴이 벌써 구릿빛이 되었다. 힘쓰는 젊은 남자가 필요한데 일꾼을 못 구해 요즘은 새벽에 나가 해가 져야 들어온다.
 
일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걱정되어 동네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그룹을 찾아가 일손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일해 달라는 곳은 많고 일손이 없어서 그런가 품삯도 어마무시하게 올라가 있다. 일하는 조건도 깐깐하다. “이런 일은 못 해요. 저런 일은 못 해요. 안 돼요” 등 서툰 한국말로 일의 여건을 내세워 여자 일과 남자 일을 조율하며 권리를 찾는다.
 
땅을 일구다 보면, 더 쉽게 농사짓는 기계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종자가 탄생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땅을 일구다 보면, 더 쉽게 농사짓는 기계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종자가 탄생할 수 있다. [사진 pixabay]

 
농사일이 힘들긴 하다. 실외에서 하는 일이라 낮엔 더워 새벽과 해거름에 일해야 하는 불편도 있고 온갖 날벌레의 습격도 힘들다. 종일 뜨거운 땡볕에서 일해야 하기도 하고, 비를 맞으며 일할 때도 있다.
 
작년엔 외국인 노동자가 사위를 도와 일했는데 가을걷이가 끝난 후 고국으로 돌아갔다. 힘들게 번 돈으로 고향에 땅을 사고, 배운 농사법을 활용해 큰 농사를 짓고 있다 한다. 다시 오기로 했던 그는 코로나 때문에 못 나왔다. 지금쯤 씨를 뿌리고, 비닐을 깔고, 모종을 심고, 이런저런 일을 하겠거니 하며 서툰 한국말로 소식을 전해왔다. 사람을 못 구해 힘들다 하니 마음 아파한단다. 그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오늘은 힘들고 바쁜 농촌 사람을 위해 구인 광고 글을 올려 봐야겠다. “심장을 펄떡이며 삶의 현장에서 뛰어 볼 멋진 청년을 구합니다”라고.
 
우리 일자리를 우리가 지키며 땅을 일구다 보면, 더 쉽게 농사짓는 기계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종자가 탄생할 수도 있다. 또 정년 걱정 없는 농업이 적성에 딱 맞는 일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 모든 것은 경험한 후에라야 알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고자 한다면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올라가라는 말이 있다. 그 경험은 살아가면서 어디에서나 뿌리내리고 살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땀 흘려 온몸의 세포가 살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육체노동은 70대 노인보다 젊은이가 하는 일이다. 또한 생명을 가꾸는 부모를 사랑하는 일이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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