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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읽기] 풀과 돌밭과 뿌리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곡우가 어제였다. 곡우는 봄비가 내려서 온갖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절기이다. 농가에서는 볍씨를 담가서 싹을 틔우고 못자리를 만드는 때가 이 무렵이다.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는 말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제주에는 이미 온산이 연둣빛의 신록으로 가득하다. 시장 귀퉁이에는 산나물을 뜯어 팔러 나온 사람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봄이 잘 익어 벌써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느낌이다.
 

만곡이 잠에서 깨어난다는 곡우
엉킨 뿌리들 보며 관계들 생각해
기쁘게 하고 슬픔은 덜어줬으면

근래에 작은 터를 얻어 틈틈이 풀을 뽑거나 돌을 캐내는 일을 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 오르는 풀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돌밭에서 돌을 캐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삽이나 괭이의 날이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잔돌이 많다. 제주에 돌 많다는 얘기를 실감하게 된다. 호미로 풀의 뿌리를 뽑고, 또 돌을 골라내는 일로 반나절을 보내다 보면 복잡한 생각도 함께 끊어지고 없다. 마당을 비질하는 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얘기가 허튼 얘기가 아닐 테다.
 
흙속은 지렁이 세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렁이를 ‘지구의 창자’라고 했고, 생물학자들은 ‘흙을 헤집고 다니는 생태공학자’라고 불렀다는데, 지렁이가 이처럼 많이 살고 있는 것은 그만큼 흙이 건강하다는 신호일 테다. 지렁이를 만나면 부드러운 흙으로 다시 덮어주었다.
 
며칠 전에는 터에 작약을 사다 심었다. 동백도 몇 그루 옮겨 심었다. 동백은 작은 터 주변에 흔하고 흔한데 어느 것은 돌들이 쌓인 곳 가운데에서 자라고, 또 어느 것은 비탈에 비스듬히 자라고, 또 어느 것은 좋은 흙에 뿌리를 내려 곧게 자란다. 그 생육이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어디에 뿌리를 내리느냐에 따라 그 자라남의 상태가 달라진 것이었다.
 
그러나 땅을 파면서 풀들의 뿌리를 뽑다 보면 각각 다른 나무들과 풀들의 뿌리들이 서로 엉켜 있고, 결속되어 있는 것을 보게도 된다. 나는 근작으로 ‘뿌리’라는 시를 발표했는데, 졸시의 일부는 이러하다. “뿌리는 무엇과도 친하다// 꽃나무와 풀꽃들의 뿌리가 땅속에서 서로 엉켜 있다// 냉이가 봄쑥에게/ 라일락이 목련나무에게/ 꽃사과나무가 나에게// 햇빛과 구름과 빗방울이 기르는 것은 뿌리의 친화력” 아닌 게 아니라 냉이의 뿌리와 봄쑥의 뿌리가, 라일락의 뿌리와 목련의 뿌리가 서로 엉켜 있다. 그 뿐인가. 나의 뿌리는 꽃사과나무의 뿌리와 서로 엉켜 있다. 사실 모든 존재는 독립적이면서도 그 뿌리는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풀과 돌이 자라는 작은 터이지만 어쨌든 하나의 터를 얻었으니 나는 이 터에서 앞으로 네 계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열반하신 고산 스님께서는 “봄이 오니 만상(萬像)이 약동하고/ 가을이 오니 거두어 다음을 기약하네./ 내 평생 인사(人事)가 꿈만 같은데/ 오늘 아침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네”라며 임종게를 남기셨는데, 나는 이 작은 터를 통해 생겨남과 활발한 생기, 생명의 움직임, 쇠함과 사라짐을 함께 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인간사와 시절 인연, 어떤 일의 도래함과 미래의 약속 같은 것을 함께 깊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남 해남 땅끝마을 미황사 주지로 오래 계셨던 금강 스님이 미황사를 떠나 제주 참선재단 원명선원으로 오셨다. 지난 일요일에 스님의 취임 법회가 열려 스님을 찾아뵈었다. 스님이 미황사를 떠나오려 하자 많은 분들이 스님을 붙잡으려 했다는 아름다운 얘기를 전해 들었던 터였다. ‘해남신문’에는 ‘미황사를 사랑하는 사람들’ 명의의 “금강스님, 당신이 있어 미황사는 아름답습니다. 금강스님, 미황사를 떠나지 마세요”라는 광고가 게재되기도 했다. 스님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많은 분들에게는 더없이 아쉬움이 클 것이었다.
 
취임 법회에서 나눠준 서원문을 법회 내내 반복해 읽었는데, 나는 그 문장들이 참으로 좋았다. “사물을 깊이 있게 관찰하면서 마음 모아 숨 쉬고 미소 짓기를 서원합니다. 자비와 연민을 기르고 기쁨과 평정의 수행을 하고 중생들의 고통 이해하기를 서원합니다. 아침에 한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저녁에 한 사람의 슬픔을 덜어주기를 서원합니다. 단순하고 맑은 정신으로 살면서 적은 소유로 만족하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를 서원합니다. 가볍고 자유롭기 위하여 근심과 걱정을 놓아버리기를 서원합니다”라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을 매일 소리를 내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퇴근을 할 때에나 풀 뽑고, 돌 캐고, 지렁이를 흙속으로 돌려보내고, 서로 엉킨 뿌리들을 볼 때에도 이 문장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명들이 푸릇푸릇 자라나는 곡우 즈음이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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