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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정부 위안부 소송비 낼 필요없다" 법원, 강제집행 첫 제동

법원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첫 손해배상 소송 승소 판결 취지에 반하는 결정을 최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결정문에는 애초 판결과 달리 “소송 비용을 일본 정부가 부담할 필요가 없다”고 명시돼 있으며 “강제집행은 국제법 위반” 등 승소 판결 자체를 문제시하는 내용도 대거 적시돼 있다. 2017년 9월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에게 불리한 내용의 법원 판단이 나온 건 처음이다.
 

“국가 상대 강제집행은 국제법 위반
일본 정부, 소송비 부담 안해도 돼”
재판부 바뀐 뒤 정반대 취지 결정
위자료 지급 효력엔 영향 안 미쳐

당사자 신청없이 이례적 직권 결정
위안부 피해자에 불리한 법원 판단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처음
오늘 또다른 위안부 소송 1심 선고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부장 김양호)는 지난달 29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에 제기한 손배소 승소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 국고에 의한 소송구조 추심결정’을 내렸다.  
 
“국가가 소송 비용을 부담한 이번 소송에서 피고인 일본 정부가 부담할 비용은 없다는 점을 확인한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지난 2월 법원 정기인사로 구성원이 변경되기 전의 같은 재판부(부장 김정곤·이하 옛 재판부)는 지난 1월 8일 “일본 제국의 반인도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예외적으로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 정부는 원고들에게 1억원씩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하면서 “소송 비용은 일본이 부담하라”는 주문도 함께 냈다. 국가면제는 ‘특정 국가는 다른 나라의 사법부 결정에 기속되지 않는다’는 국제법 원칙이다.
 
이 판결은 일제 강점기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지만, 국가면제를 폭넓게 인정하는 국제법 판례와 기존 대법원 판례 및 헌법재판소 결정과 배치되는 내용이라 논란이 일었다.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며 소송·상소 절차에 응하지 않아 1월 23일 이 1심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그런데 새 재판부가 판결 중 일본 정부에 소송 비용 부담 의무를 지운 부분을 정면으로 뒤집은 상황이다. 특히 주목되는 건 재판부가 결정문에 본안 판결 자체를 비판하는 내용까지 조목조목 적시했다는 사실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본안 소송은 일본 정부의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며 “그러나 외국에 대한 강제집행은 해당 국가의 주권과 권위에 손상을 줄 우려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 소송 비용을 강제집행하게 되면 국제법을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외국에 대한 강제집행, 국가 주권·권위 손상 줄 우려”
 
소녀상

소녀상

또 “외국 정부의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은 현대 문명국가들 사이의 국가적 위신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이를 강행하면 사법부 신뢰 저해 등 중대한 결과에 이를 수 있다”며 “이번 사건은 기록에 나타난 모든 자료를 보더라도 유엔 국가면제 협약상의 외국 정부에 대한 강제집행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재산을 강제집행하면 헌법상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와 상충되는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담았다.
 
재판부는 또 ‘이전과 모순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금반언(禁反言·estoppel) 원칙을 들어 “일본 정부에 이 사건 소송 비용의 추심 결정을 하는 것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결과”라며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르면 어느 국가도 국제 조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법부의 판결 등 일체의 국내적 사정을 원용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확정판결에 의한 권리도 신의 성실의 원칙에 따라 행사돼야 하고, 판결에 따른 집행이 권리 남용이 되는 경우에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도 소개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1965년의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거론했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선 “최근에도 양국 정부는 위안부 합의의 유효성을 확인했고, 상당수 피해자가 기금(화해·치유재단)에서 금원을 받아갔거나 잔액이 일본에 반환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본안 판결 직후인 1월 18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곤혹스러운 것은 사실”이라며 “한국 정부는 그(위안부) 합의가 양국 간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국제사법재판소(ICJ) 판례에 대한 판단도 달랐다. 재판부는 “ICJ는 거의 모든 평화조약과 전후처리 관행에서 국가 사이에 총액 정산을 하는 경우 희생자 개개인에 대한 배상은 필수 규범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며 “또 ICJ는 전시에 다른 국가 영토에서 무장군대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에 관해 국가면제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역시 같은 ICJ 판례에 대해 “한반도는 무력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ICJ 사례를 적용할 수 없다”고 밝힌 옛 재판부 판결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단이다.
 
새 재판부가 옛 재판부의 확정판결 집행에 제동을 건 이번 결정에 대해 법원 내에서도 “처음 보는 형태의 이례적 결정”이라며 놀라워하고 있다. 특히 소송 비용을 누가, 어떤 비율로 부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민사판결의 통상 절차는 보통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진행되지만 이번 결정은 당사자의 신청도 없는 상태에서 재판부가 직권으로 낸 것이다. 재판부는 이번 결정의 의미에 대해 “사건 확정 후 기록을 보존하는 절차에 앞서 내린 결정”이라고만 설명했다. 법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확정판결의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결정문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위자료 지급 강제집행 사건에 참고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은 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측은 이번 결정과 관계없이 일본 정부가 위자료 지급을 하지 않을 경우 강제집행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피해자 소송대리인인 김강원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지난 13일 “일본이 한국에서 소유하고 있는 재산 목록을 제출하도록 명령해 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재산 명시 신청을 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 민성철)는 21일 고 김복동 할머니 등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에 대한 1심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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