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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동백 떨어지던 봄날, 시간이 멈춰섰던 백운동 정원

기자
전명원 사진 전명원

[더,오래] 전명원의 일상의 발견(3)

남도에는 동백이 흔했고, 어디나 동백은 한창이었다. 내비게이션은 고갯길에서 멈춘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하였는데 그저 광활한 차밭이었다. 백운동 정원 화살표가 있는 작은 표지판은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는 그 차밭을 향하고 있었고, 입구엔 커다란 건물이 지어지고 있어서 그 앞에 서서 잠시 고민했다. 아무리 봐도 사진에서 보았던 백운동 정원은커녕 비슷해 보이는 건물조차 없었다.
 
여긴 백운동 정원이 아니라 차밭인데, 남의 차밭으로 들어가도 되는 건가. 그렇게 두리번거리는 눈에 다른 쪽에 얼핏, 대숲으로 이어지는 작은 계단과 소로가 보였다. 저기로구나. 그럼 그렇지. 유레카를 외치며 내려가는데 금방 보일 줄 알았던 백운동 정원은 보이지 않고 끝없이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대숲과 동백숲길이었다.
 
남도에는 동백이 흔했고, 어디나 동백은 한창이었다. 내비게이션은 고갯길에서 멈춘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했지만, 그저 광활한 차밭이었다. [사진 전명원]

남도에는 동백이 흔했고, 어디나 동백은 한창이었다. 내비게이션은 고갯길에서 멈춘 후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했지만, 그저 광활한 차밭이었다. [사진 전명원]

 
잘못 내려온 길인가 싶을 즈음 ‘백운동’ 표지판이 나왔고, 맞긴 맞겠지 의심할 즈음 또 ‘백운동’ 표지판이 나왔다. 내리막길이 끝나자 작은 마을이었고, 차들이 다녔다. 당황스러움에 다시 반대편으로 오르며 곧 보이겠지, 할 때쯤 그제야 붉은 동백 사이로 언뜻 백운동 정원이 보였다.
 
백운동 정원은 조선 중기 이담로가 조성한 정원이라고 한다. 그가 이름 붙인 백운동이란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다시 안개가 되어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옛 시절의 풍류가 담긴 너무나 운치있는 이름이다.
 
평일의 백운동 정원엔 사진을 찍는 커플 하나뿐이었는데, 빨간 모자에 빨간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가 이리저리 포즈를 잡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분명 한 공간에 있는데도 그들의 모습이 현실이 아닌 듯 느껴졌다. 열심히 사진을 찍던 그 커플이 떠나고 나자, 더 이상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앨리스가 시계 토끼를 따라간 이상한 나라의 마을이 이랬을지도 모르고,, 땡볕 아래 그 무엇에도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무협지의 결계 걸린 마을이 이러할지 모르겠다.

앨리스가 시계 토끼를 따라간 이상한 나라의 마을이 이랬을지도 모르고,, 땡볕 아래 그 무엇에도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무협지의 결계 걸린 마을이 이러할지 모르겠다.

 
동백이 떨어지는 봄치고는 더운 날이었다. 툇마루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며 주변을 돌아봤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것 같은 곳이었다. 앨리스가 시계 토끼를 따라간 이상한 나라의 마을이 이랬을지도 모르고, 땡볕 아래 그 무엇에도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무협지의 결계 걸린 마을이 이러할지 모르겠다. 그 아가씨는 그럼, 동백꽃이었을까. 숲 속의 백운동 정원엔 대숲을 지나는 바람소리뿐이어서 어쩌면 붉은 동백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도 같았다.
 
시간이 멈추고, 결계가 걸린 듯 한 백운동 정원에서 나오려니 이제 현실이었다. 차가 있는 곳까지 갈 일이 까마득했다. 다른 샛길을 향해 서서 잠시 망설였다. 주차해놓은 언덕까지 이 길이 이어지지 않을까. 다른 곳으로 향해있으면 어쩌지. 날은 더웠고, 차에 내려 바로 앞인 줄 알고 물 한 병 들고 오지 않았는데 아까처럼 그 경사를 올라가야 하나 싶은 마음에 덜컥 겁이 났다.
 
백운동 정원 담 밖으로도 동백은 붉은 꽃을 떨구고 있었다.

백운동 정원 담 밖으로도 동백은 붉은 꽃을 떨구고 있었다.

 
결국 가보지 않는 그 길로 들어섰다. 백운동 정원 담 밖으로도 동백은 붉은 꽃을 떨구고 있었다.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지 않았고 두어 번 급하게 방향을 틀며 이어진 샛길은 처음에 남의 차밭으로 들어가는 것 아닌가 싶던 그 길과 만났다. 아, 표지판을 믿었어야 하는 거구나. 본적 없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숨어있는 낯선 곳을 찾을 때 표지판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했다. 살아가는 길에서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차 있는 곳으로 돌아와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백운동 정원도, 동백도 꿈이었던 것처럼 그저 푸르디푸른 차밭뿐이었다. 단지 언뜻 보이는 대숲만이,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 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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