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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장기 기증하고 떠난 아들…엄마는 네번 울었다

기자
조용수 사진 조용수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69) 

환자가 중환자실에 머무는 동안 나는 틈틈이 보호자를 만나 상태를 설명했다. 변화는 없었다. 나는 그저 가망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해를 위한 설명이라기보다, 인제 그만 포기하라는 종용에 가까웠다. 몸은 살아 있지만, 머리는 사망한 지 오래였으니까. 그건 이미 확정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깨끗한 아들의 육신은 마치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따뜻했으니까. 나는 직감했다. 아마도 보호자와 나는 긴 평행선을 걷게 되리라. 그리고 그것은 필시 우리 셋 모두에게 아프고 힘든 길이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실질적인 죽음’을 짤막하게 통보함으로써 내 책임을 다하고자 하였는데,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믿어지지 않아요. 얼마나 착한 애였는데. 속 한 번 썩인 적 없어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속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음속에 경보가 빠르게 울려 퍼졌다. 보호자가 잠깐 회상에 빠진 사이, 나는 얼른 일어나 환자를 보는 척 자리를 피했다. 환자의 사연을 듣는 건 금물이니까. 그건 어느 순간에도 의사로서 냉정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나만의 철칙이었다. 환자나 보호자와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동정이나 연민 같은 쓸데없는 감정이 찾아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것은 나의 판단을 흐리게 할 뿐이다. 애도는 가족들 몫으로 남겨두는 거로 족하다.
 
바닥으로 가라앉아 지면에 낮게 깔린 뇌파. 환자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연신 빨갛게 울어대는 기계호흡기. 모두가 뇌사를 알리는 신호들이었다. 머리 위쪽에 이미 완벽한 죽음을 찾아와 있었다. [사진 pixabay]

바닥으로 가라앉아 지면에 낮게 깔린 뇌파. 환자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연신 빨갛게 울어대는 기계호흡기. 모두가 뇌사를 알리는 신호들이었다. 머리 위쪽에 이미 완벽한 죽음을 찾아와 있었다. [사진 pixabay]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많은 의사가 기꺼이 환자의 사연을 들어준다는 것을. 그리고 진심으로 함께 아파해주고 사력을 다해 남은 이들을 보듬어준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나의 마음은 유리와도 같아서, 감정에 휩쓸리면 쉽게 부서져 내린다. 그래서 항상 한걸음 떨어져 있으려고 노력한다. 훌륭한 의사는 환자뿐 아니라 남겨진 가족까지 아울러야 한다. 그렇게 배웠다. 나라고 그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니 그저 내 실력이 부족하고, 내 마음이 연약할 따름이라고 해두자. 그래도 내게는 내게 어울리는 역할이 아직 남아있어 다행이다.
 
바닥으로 가라앉아 지면에 낮게 깔린 뇌파. 환자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연신 빨갛게 울어대는 기계호흡기. 모두가 뇌사를 알리는 신호들이었다. 머리 위쪽에 이미 완벽한 죽음을 찾아와 있었다. 나는 보호자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 겨우 마른 그녀의 눈물 자국 위로, 또 다른 물방울이 새 길을 만들었다. 속을 썩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어머니의 말이 지독히 역설적이라고 생각했다. 사연이 어찌 되었든, 이보다 더 큰 속 썩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상 모른 채 잠들어버린 환자에게 원망이 일었다. ‘제발 움직여라.’ 나 자신도 믿지 않는 헛된 기대를 담아, 있는 힘껏 환자를 꼬집었다. 하지만 덩그렇게 멈추어 선 기계호흡기만 그저 세차게 울어댈 뿐이었다.
 
“제 판단이 옳은 거겠죠?”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아주 느릿느릿. 한 마디 한 마디에 깊은 여운을 실려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파르르 떨렸지만, 결코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을 내뱉었다.“저는 잘 모릅니다. 보호자께서 결정하실 문제니까요.”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그만큼 내 대답은 너무 뻔했다. 돌덩이가 얹힌 듯 가슴 한쪽이 무거워져 왔다. 돌아선 어머니의 팔을 나도 모르게 붙잡았다. 그리고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아까의 그녀만큼이나 느리고 느리게. “잘하셨어요, 아드님도, 그걸 원하셨을 거예요.” 어머니는 돌아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이윽고 그녀의 조그만 등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평소에 많은 것을, 정말 많은 것을, 주위와 나누었어요. 유달리. 나누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어요." 엄마의 깊은 눈에 다시금 물방울이 고이기 시작했다. [사진 pixabay]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정식으로 뇌사 판정이 떨어졌고, 장기기증 절차가 이루어졌다. 표현이 이상하지만, 환자의 상태는 무척 긍정적이었다. 젊고 건강한 육신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어느 장기에도 이상소견이 없었다. 아마도 적지 않은 환자에게 빛이 될 소식일 터이다. 소멸과 생성이 마주하는 자리에서 어머니는 의연한 태도로 동의서에 서명을 이어갔다.
 
아마도 오늘이 마지막일 테지. 초조했다. 나에겐 아직 못다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십수 번을 망설인 끝에 겨우 운을 뗄 수 있었다. “처음 기증 얘기 꺼냈을 때 화를 많이 내셨는데. 어떻게 어려운 결심을 하셨네요.” 어머니는 펜을 내려놓으며 내게 대답했다. “평소에 많은 것을, 정말 많은 것을, 주위와 나누었어요. 유달리. 나누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어요.” 그녀의 깊은 눈에 다시금 물방울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더듬더듬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참았던 눈물을 결국 떨구며. 나는 의자를 바싹 끌어 그녀 옆에 앉았다. 그렇게 나는 환자의 마음을 이식받은 첫 수여자가 되었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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