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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사랑이냐 조국이냐" 적국 장수를 사랑한 여인

기자
한형철 사진 한형철

[더,오래]한형철의 오페라, 미술을 만나다(4)

1871년 베르디가 발표한 ‘아이다’는 웅장한 무대와 의상으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섬세하고 아름다운 음악과 인간의 심리를 극적으로 구성한 일종의 블록버스터급 오페라랍니다. 전쟁의 와중에도 피어나는 사랑과 질투, 그리고 죽음으로 완성되는 러브스토리. 게다가 화려한 무대장치와 심장 뛰게 만드는 합창, 시원한 트럼펫의 개선행진곡은 관객을 압도하지요.
 
 
전쟁이 시작된 후 이집트의 공주 암네리스는 에티오피아 공주였다가 포로로 잡혀온 시녀 아이다의 속마음을 떠보고 있답니다. 여자의 직감으로 라다메스와 아이다의 썸씽을 눈치챈 것이지요. 아이다의 고백을 유도하던 그녀는, 결국 라다메스가 전사했다는 거짓말에 아이다가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는 모든 것을 알아챕니다. 그리고는 자신도 라다메스를 사랑한다고 아이다에게 선언해버립니다.
 
아이다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고귀한 신분인 공주에게 자신은 고향도 가족도 모두 잃은 비천한 신분이라며 자신의 사랑을 빼앗지는 말아달라고 애원하지요. 하지만 공주는 “나는 공주고, 너는 노예일 뿐”이라며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이때 전쟁에서 승리한 군대의 개선을 알리는 경쾌한 트럼펫의 팡파레와 함께 합창 ‘개선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라다메스가 등장합니다. 그를 암네리스와 아이다가 반갑게 맞이하지요. 왕이 라다메스를 사위로 삼아 공주 암네리스와 결혼시키겠다고 공언하자 암네리스는 기뼈하고 아이다는 절망하지요.
 
왕이 라다메스를 사위 삼겠다고 하자 절망하는 아이다. [사진 Flickr]

왕이 라다메스를 사위 삼겠다고 하자 절망하는 아이다. [사진 Flickr]

 
그날 밤, 나일강변에서 아이다가 라다메스를 만나기로 약속하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때 느닷없이 포로로 잡혀왔던 그녀의 아버지 아모나스로가 나타납니다. 아이다가 라다메스를 만날 것을 알고 온 그는 딸에게 조국의 승리를 위해 그로부터 군사기밀을 빼내라고 합니다.

 
아이다는 자신을 사랑을 배신할 수는 없다며 거절하지요. 아모나스로는 자신의 말을 거역한다면 더 이상 딸도 아니라고 더욱 강하게 몰아붙입니다. 조국을 택하자니 사랑이 울고, 사랑을 품자니 조국의 운명이 걱정되는 애달픈 장면이랍니다. 결국 아이다는 라다메스에게 정보를 빼내고, 그는 군사기밀 누설죄로 생매장의 극형에 처해지게 된답니다. 무덤에서 아이다와 라다메스는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죽어가며 이루게 되지요.
 
아이다는 에티오피아의 공주이고, 이집트 장군인 라다메스는 그녀의 조국과 싸우는 상황에서 그녀는 어느 편에 서야 하나요?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이런 모습은 우리 역사 속에서도 수없이 많이 보아왔지요. 사랑과 조국 앞에서 번민하고 희생당하는 애처로운 그녀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림 한 작품이 떠오릅니다. 바로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랍니다.
 
신고전주의 미술의 정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다비드 작.

신고전주의 미술의 정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다비드 작.

 
위 작품은 루이 다비드의 대표작으로, 로마의 숙적인 알바 왕국과의 전투에 출정하는 호라티우스 가 3형제가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다짐하며 아버지 앞에서 맹세하는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이들의 용맹스런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오른쪽의 여인들은 널브러지듯 낙담하며 흐느끼는 모습이에요. 오른쪽 두 여인 중 하나는 전투 예정인 알바 왕국 가문의 남자를 사랑하는 3형제의 누이이며, 다른 하나는 알바 왕국에서 이 집안에 시집온 며느리랍니다. 결국 전투에서 어느 쪽이 이기든지 그녀들은 오빠나 애인 또는 남편이나 친정 가족을 잃게 되는 상황인 거에요. 이들에게 무조건 초래될 비극이 너무나 애달파 보입니다. 허나, 국가가 요구하는 애국심과 대의가 강조되는 상황에서, 개인의 사사로움이나 행복 따위는 희생되어야 함을 이 작품은 웅변하고 있는 것이지요. 애처롭기 그지없군요.
 
표현 기법을 보면 화면 구성과 배경의 상징, 그리고 세밀한 묘사가 눈에 띕니다. 3형제는 물론 늙은 아비의 우뚝 선 다리 근육까지 세밀하게 표현했습니다. 해박한 해부학 지식을 과시하며, 철저한 데생을 바탕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샌들 묘사만 보더라도 로마 검투사의 샌들같이 섬세하게 묘사되었네요. 미국의 유명 연예인이 착용해 유행한 누드슈즈와 비슷하거든요. 루이 다비드는 등장인물의 자세를 잡고 묘사를 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데생과 초벌 작업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찌감치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루이 다비드는 26세 때 아카데미 살롱전에서 로마대상을 받고 포상유학을 떠납니다. 로마에서 그는 그리스와 로마 등 고대 미술에 큰 감명을 받았구요. 영웅적인 역사화를 그림으로써 그는 로코코의 경박함에서 벗어나 장엄하고 웅장한 고대의 정신을 되살리고자 했답니다. 그 후 루이 16세의 후원을 받으며 잘 나가던 그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맞이합니다. 루이 16세의 총애를 받았음에도 공화정을 신봉한 그는 소신에 따라 로베스피에르의 혁명정부에 적극 참여하지요.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혁명정부가 붕괴되자, 그 역시 투옥되었답니다. 목숨을 겨우 부지하고 소외되었지만 이후에 다시 나폴레옹의 신임을 받아 부활해,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1801) 등 여러 대작을 그려 냈지요. 그리고 황제가 몰락하자 그 역시 처형을 피해 브뤼셀로 망명하였으며, 그곳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등 격동의 시대에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랍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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