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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대통령 하산길, 반도체에 올인하라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한국의 반도체는 어떻게 세계 최강이 됐나. 업계 원로 A씨는 하나만 꼽는다면 “한·미 동맹”이라고 했다. 그는 두 가지 비사를 소개했다.
 

반도체는 한국의 영혼이자 심장
강력한 한·미 동맹, 민관 협력으로
안보와 경제, 두 마리 토끼 잡아야

1980년대 초. 막 삼성이 반도체를 시작한 때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일본으로 반도체 산업이 집중될 경우 미국의 리스크가 커진다”는 이유였다. 당시는 일본 경제가 곧 미국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올 때였다.
 
미국은 즉각 실행에 들어갔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 엔화(금융)의 기를 꺾더니 이듬해엔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 반도체(산업)의 숨통을 조였다. 일본 내 외국산 반도체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리고, 일본 반도체를 미국에 덤핑 수출할 수 없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일본이 ‘제2의 페리 굴욕’으로 부른 이 협정으로 일본 기업은 차례로 D램에서 손을 떼야 했고, 빈자리에 한국의 삼성과 현대·금성(LG)이 뛰어들 공간이 열렸다. 미국은 흔쾌히 한국에 반도체 기술과 장비를 이전해 줬다.
 
1992년, 이번엔 미국의 칼 끝이 한국을 향했다. 미 상무부는 삼성에 80%가 넘는 반덤핑 예비 판정을 내렸다. 그대로 확정되면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접어야 할 위기였다. 민관이 총력전을 펼쳤다. 미국의 컴퓨터 업계를 집중 공략했다. 당시 쓴 로비자금만 100만 달러가 넘었다고 한다. IBM과 HP·애플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컴퓨터 회사 모두의 서명을 받아 탄원서를 냈다.  
 
절정은 1993년 초 실리콘 밸리의 조찬 모임이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존 스컬리와 빌 클린턴 대통령 당선인, 단둘이 마주 앉았다. 스컬리는 클린턴에게 “한국 반도체 업체가 높은 덤핑 마진을 맞게 되면 미국 컴퓨터 업계엔 재앙이 온다”고 설득했다.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87.4%였던 삼성의 예비 마진은 0.74%로 떨어졌다. 예비 마진율이 118분의 1로 준 것은 미 상무부 역사상 처음이었다. 이후 삼성 반도체 수출엔 날개가 달렸다. 마진이 50%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때까지 대한민국 역사상 이렇게 많은 이익을 낸 기업이나 업종은 없었다. A씨는 “정부와 기업이 한 몸으로 뛰었다. 전쟁을 치르듯 했다. 미국 정·재계의 모든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과 미국이 혈맹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런 ‘반도체 대박’이 없었다면 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도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2021년 신반도체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의 타깃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전쟁의 양상은 훨씬 거칠어졌다. 경제를 넘어 안보·외교와 동맹으로 확대됐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반도체 웨이퍼를 손에 들고 “이게 인프라다”고 외치고 의회를 직접 설득해 500억 달러의 지원금을 끌어냈으며 더 강력한 지원 법안을 준비 중이다. EU·중국·일본·대만도 국가 리더가 앞장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한국만 한가하다. 반도체는 수출의 20%, 상장사 영업이익의 30%를 차지한다. 강력한 한·미 동맹의 존재 증명이자 중국에 큰소리칠 최대의 무기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부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 되레 반재벌 정서에 기댄 각종 규제 입법이 뒷다리를 잡고 있다. 당장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반도체 지원 특별법’부터 서둘러야 한다. 180석 거대 여당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청와대 안에 워룸을 만들고 규제 완화, 인프라 지원, 인재 양성 등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한다. 매일 대통령이 웨이퍼와 칩을 들고 등장해도 좋다. 대통령의 ‘쇼통’은 이럴 때 하는 것이다.
 
반도체는 한국의 심장이자 영혼이다.  경제 활력의 상징이요 민관이, 한·미가 함께 일군 통합과 동맹 신화의 증명이다. 누구 말마따나 “내년 목련이 필 때까지” 대통령이 반도체에 올인하기 바란다. 1년여 남은 대통령의 하산길에 해야 할 일 꼭 하나를 꼽으라면, 이보다 나은 선택은 없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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