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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바이든 인권공세 거세지자, 중국 “한국전은 미국의 침략전쟁” 맞불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이 폭발했다. 미국 정부는 조선 내전에 무장간섭을 결정하고, 제7함대를 파견해 대만해협을 침입했다.”
 

시진핑 “미국의 불패 때려부숴”
한국, 남침 부인에 적극 반박해야

‘의무 교육 교과서’인 중국의 8학년(중2) 『중국역사』 하권의 2과 본문 첫 문장이다. 6·25전쟁의 과정을 “내전 폭발”로 얼버무린 뒤 “미국의 침입”을 주장했다. 2011년 중공중앙당사연구실이 펴낸 『중국 공산당 역사 제2권(1949~1978)』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70주년이던 지난해 10월 23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정의의 군대의, 정의의 행보”라며 “중·조 군대는 이빨까지 무장한 적을 무찔렀고 미군의 불패 신화를 때려 부쉈다”고 주장했다. 지난 9일에는 중국 공산당 산하 중국인권연구회가 ‘조선 전쟁은 미국이 발동한 침략 전쟁’이라는 보고서를 냈고, 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전문을 실었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인권 문제를 비판한 뒤의 일이다.
 
중국은 ‘북한 남침’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배후인 소련과 중국의 존재도 가린다. 소련 해체 뒤 공개된 기밀문서는 6·25가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 49년 여름부터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을 끈질기게 설득하고 중국의 동의를 얻어 도발한 남침 전쟁이란 사실을 보여줬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은 조선족 정예 사단을 북한 인민군에 편입시키며 북한의 남침을 막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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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문서를 바탕으로 한국전쟁을 연구한 선즈화(沈志華) 화둥(華東)사범대 교수는 “아시아 혁명의 책임자를 자처한 마오는 김일성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며 “특히 스탈린이 입장을 표명한 뒤에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북·중·러 삼각관계를 평가했다.(선즈화, 『아시아의 냉전(冷戰在亞洲)』 2016)
 
미국 침략론도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다. 당시 미국의 제7함대 파견은 대만해협의 ‘중립화’를 위해서였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대만의 한반도 참전 제안을 거부했다.(린샤오팅(林孝庭), 『사수와 반격(困守與反攻)』 2017)
 
당시 중국은 왜 참전했을까. 동북아역사재단의 차재복 연구위원은 “중국은 건국 초 ‘중국이 승리하고 미국이 패배한 미·중 전쟁’이라는 역사적 프레임이 필요했다”고 진단한다. 중국의 이런 ‘역사 왜곡 공정’에 대해 차 위원은 “최근 샤먼(廈門) 한·중 회담에서 합의한 외교·안보 2+2채널 등 공식 회담마다 한국전쟁사 왜곡을 반박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는 기억의 싸움이고, 기억은 기록을 기반으로 한다는 이유에서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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