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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시시각각] 차라리 대북 아닌 백신에 올인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15일 청와대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 장관에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마지막 노력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15일 청와대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정 장관에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마지막 노력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여러 번 만난 중국 인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와의 만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20~30년 뒤를 생각하며 이야기하던 모습"이라고 했다. 

북, 13개월 남은 정권 상대 안할 것
돌파구 찾아 중·일에 목매면 곤란
백신 확보나 다자 외교에 힘써야

조부 김일성은 46년, 아버지 김정일도 17년간 통치했다. 김 위원장은 이제 37세. 그런 그가 20~30년 뒤를 이야기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를 상대해야 할 한·미 정상의 정치적 수명은 슬플 정도로 짧다. 한국은 5년, 미국은 연임 시 8년, 실패하면 4년이다. 그럼에도 이들 역시 욕심 있는 인간이기에 재임 중 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고작 열세 달 남짓. 마음이 바쁠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문 대통령이 정의용 외교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며 한 당부는 이랬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마지막 노력을 해 달라"고. 그러니 정 장관이 대북 문제의 물꼬를 트기 위해 뛸 수밖에.
문 정부를 보는 김정은 정권의 시각은 어떨까. 북한 고위인사들을 자주 접한 외교관들의 전언 중엔 이런 게 있다. 북한이 꼽는 최악의 외교 참사는 클린턴 행정부 때 맺은 비핵화 합의를 2001년 취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바로 깨버린 일이라는 것이다. 이때 북한은 정권 교체 시 어떤 약속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음을 절감했다고 한다. 김정은 정권이 트럼프 집권 2년 차인 2018년에 서둘러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연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구도에선 아무리 정 장관이 뛰어다닌들, 북한이 꿈쩍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일본에, 중국에 매달린들 나올 게 별로 없다. 이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친한 척하거나 외교 관례에 안 맞게 행동하면 거부감만 일으킨다. 이제 우리도 세계 10위권 안팎의 강대국이다. 중국을 지렛대 삼아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는 전략도 절대 쉽지 않다. 나온들 13개월짜리 정권과 무슨 알맹이 있는 약속을 하겠나. 외교에도 공짜는 없다. 일본에 앞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이루기 위해 우리도 뭔가를 약속했을 게 뻔하다. 미·중 간 대결에서 중국 편에 서겠다고 다짐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우리에겐 대북 문제처럼 중요한 사안은 없다. 외교 당국이 여기에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책임 못 질 대북 사업을 벌이거나 약속을 해서도 안 된다. 차라리 마음을 비우고 백신 확보에 외교력을 쏟는 게 옳다. 외교적 과제들은 얼마든지 있다. 미세먼지·황사 등 환경문제, 원자력 활용 방안 등은 아무리 관계가 나빠도 한·중·일 세 나라가 부담 없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다. 유엔 가입 30주년인 올해를 맞아 개발도상국 지원 등 다자 외교에 눈을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참에 이념을 뛰어넘는 일관된 대북 정책이 절실함을 온 사회가 깨달아야 한다. 독일 통일의 최대 비결로 꼽히는 건 정파를 초월한 동방정책이다. 1960년대 말 진보적인 사민당 정권이 표방한 동방정책을 보수적인 기민당 정권이 집권 후에도 계속 이어받았다. 이 덕에 동·서독 관계가 안정돼 결국 서독은 통일을 끌어낼 수 있었다.  
우리도 보수·진보 간 논의를 통해 이념을 초월한 통일정책을 만들려는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1998년 출범한 민화협을 필두로 박근혜 정권 때의 통일준비위원회, 현 정권이 추진한 통일국민협약 등 여럿이다. 그런데도 이런 단체가 내놓은 아이디어들이 국가적 통일정책의 근간으로는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정권이 여론을 무시한 채 자기 신념만 따라간 결과다. 
지금처럼 친북 소리를 들을 정도의 대북 정책을 폈다 다음 정권이 보다 강경한 태도로 나온다면 '널뛰기 외교'라는 비아냥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정치권이 나서든, 이제라도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균형 잡힌 통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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