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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의 시선]'문재인 프로덕션'의 마지막 시나리오

 4ㆍ7 재ㆍ보선에 참패한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은 세 문장이었다.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인다. 더욱 낮은 자세로 보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국정에 임하겠다. 코로나 극복, 경제 회복, 민생 안정, 부동산 부패청산 등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실현하는 데 매진하겠다.” 
 

청와대는 국정 컨트롤타워 아닌
인기에 급급한 프로덕션 전락
'착한 대통령 이미지' 전략 유지할 듯

상투적인 말 속에 한 가지 눈에 띄는 단어는 부동산 ‘부패’ 청산이었다. 지난달 LH(한국토지주택공사) 투기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문 대통령은 부동산 적폐청산 운운하며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와 엮으려 했다. 현 정부 초기였으면 먹혔겠지만, 4년 내내 반복되자 적폐 타령도 시들해졌고 “이젠 너희가 적폐야”라는 부메랑도 제법 있다. 이날 등장한 부동산 부패청산은 현장에서 갑자기 바뀐 ‘쪽대본’ 같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한국형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 출고식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한국형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 출고식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 이후 문 대통령의 첫 외부 행사는 9일 경남 사천에서 열린 한국형 전투기(KF-X) 시제기 출고식이었다. 선거 후유증으로 여당은 몸살을 앓고, 코로나 4차 유행이 시작됐지만 그런 흉흉함에 대통령은 초연한 듯 보였다. 백번 양보해 한국형 전투기가 의미 있어 대통령이 참석한 것이라 해도, 군사무기를 알리는 자리에 대중가수가 축하공연을 하고, KBS가 생중계를 하며, 미디어 파사드까지 가미된 휘황찬란한 쇼를 국민 세금 써가며 굳이 해야 하는지는 갸웃했다.

 
당초 KF-X 사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안했지만, 10여년간 지지부진하다가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체계 개발 계약을 맺으며 본격화됐다. 오히려 당시 야당 의원이었던 문 대통령은 국회 국방위에서 “KF-X 사업 계획을 재검토해야 하지 않냐. (미국이 핵심 기술을 넘겨준다는) 기본 전제가 무너졌는데 이제 와서 ‘우리가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할 수 있습니다’라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해서야 가능하겠냐”라며 반대했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이날 기념식에선 “오늘 우리가 이뤄냈다.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문득 “문 대통령은 생색을 낼 때나 쇼가 필요할 때 교통사고 시 귀신같이 달려오는 레커 같은 대통령이라는 소리가 있다”(박성중 국민의힘 의원)는 말이 떠올랐다.

 
현 정부가 쇼만 한다는 비판은 줄곧 있었다. 문 대통령이 현안에 침묵하거나 논점을 흐린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무능하다고들 했다. 본질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애당초 문재인 청와대는 국정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프로덕션(제작사)이다. 주연은 문 대통령이요, 여태 백팩 메고 텀블러 든 조국(전 법무장관)이나 낡은 가죽 가방의 김상조(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비중 있는 배역이었다. 최근엔 형법각론을 든 김진욱(공수처장)도 신인급으로 주목받고 있다. 갈등 해소에 관심 없고 흥행에만 목숨을 거니 전직 대통령 사면을 툭 던지고 반응이 싸하자 바로 덮을 수 있는 거다.  
 
2019년 8월 14일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가운데는 13일 출근 모습. 오른쪽은 12일 첫 출근길. [뉴스1·연합뉴스], 우상조 기사

2019년 8월 14일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가운데는 13일 출근 모습. 오른쪽은 12일 첫 출근길. [뉴스1·연합뉴스], 우상조 기사

주연 배우 분칠하는 것에만 신경 쓰니 집값이 폭등하는데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하고 있다”(2019년 12월)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백신 접종률 1%대로 세계 꼴찌권인데 “치료제가 상용화된다면 대한민국은 방역ㆍ백신ㆍ치료제 세 박자를 모두 갖춘 코로나 극복 모범국가가 될 수 있다“(2021년 1월)고 호언장담하는 것이다. “당근 마켓에 팔아먹었냐”(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비아냥을 듣는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이나 '소득주도성장'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건 시청률 떨어지면 곧바로 폐지되는 TV 프로그램과 같은 원리다.

 
내년 봄 끝나는 문재인 청와대의 지상과제는 ‘시즌 2’ 제작이다. 하지만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치명상을 입은 데다 마땅한 친문 주자가 없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현실적 대안은 캐릭터 유지다. 앞으로도 쭉 착한 척, 공정한 척, 열심인 척하는 거다.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사안에는 입을 꾹 다물고, 아동 학대 같은 선명한 선악 구도가 보일 때만 피해자 입장에서 언급하는 식으로다. 
 
행여 여권에서 레임덕이 본격화돼 “대통령 책임”이라며 내쫓으려는 움직임이 나와도 노여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 없다. 비운의 주인공이야말로 흔들리는 팬심을 붙잡는 강력한 무기다. 무참히 공격당해도 묵묵히 참을 수 있다면 퇴임 후에도 일정정도 정치적 영향력은 보장받을 수 있다.

 
2017년 4월 6일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전남 목포신항을 방문해 세월호가 인양된 현장을 둘러본 뒤 유가족들을 만나 포옹하고 있다. 국회 현장풀

2017년 4월 6일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전남 목포신항을 방문해 세월호가 인양된 현장을 둘러본 뒤 유가족들을 만나 포옹하고 있다. 국회 현장풀

 
문제는 돌발 악재다.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건 구조적 모순”과 같은 엉뚱한 애드립은 곤란하다. 무엇보다 “좀스럽고 민망하다”와 같이 진짜 속내를 드러냈다가는 가까스로 구축한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인기만 지켜내면 청와대를 나와도 ‘문재인 프로덕션’은 망하지 않을지 모른다.
 
최민우 정치에디터 choi.minwoo@joongang.co.kr 
최민우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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