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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아이스크림도 먹을수 없었다” 아파도 울지 않은 그때 대구

『대구가 아프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김정석기자

『대구가 아프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 김정석기자

“시청으로 자정까지 좀 들어와 주셔야겠습니다.”
 
지난해 2월 18일 이경수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교수가 김영애 대구시 당시 시민행복교육국장(현 시민안전실장)으로부터 받은 전화다. 이날은 대구시에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이었다. 전국에서 31번째 발생한 환자라고 해서 이른바 ‘31번 환자’라고 불리는 환자가 나온 그날이다. 당시 이 교수가 수화기 너머로 들은 이 한 마디는 책의 첫 문장이 됐다. 
 
『대구가 아프다 그러나 울지 않는다』에는 이 교수가 정해용 전 대구시 정무특보와 함께 대구시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상황관리반장을 맡아 코로나19 대량 확산 시기 고군분투했던 경험담을 담았다.
 
이 교수와 책을 공동집필한 정 전 정무특보는 “이 책은 어떤 객관적인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그저 내가 있었던 공간에서 마주치고 고민했던 것을,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써내려가는 내 마음속의 지난 일기이자 함께했던 수많은 동지들에게 쓰는 감사의 편지 같은 것”이라고 책을 소개했다.
 
171쪽의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이 책에는 대구 지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될 당시 ‘결정적 순간’들이 모두 그려져 있다. 논문이나 보고서 등에선 그저 몇 줄 기록에 불과한 일들이지만 이 책에선 생생한 경험담으로 그려져 있다.
 
정해용 대구시 전 정무특보. 뉴스1

정해용 대구시 전 정무특보. 뉴스1

 
31번 환자가 신천지 교회 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 먼저 등장한다. 책에서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한 감염이 개인 수준이나 일부 교인들의 수준을 넘어 1만여 명이 넘는 전체 교인의 감염 가능성을 직감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2월 20일이었다”고 적힌 부분이다.
 
당시 8000여 명의 교인에 대한 1차 전화 조사에서 1286명이 증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에 대한 전수검사 결과 첫날 약 90%, 둘째 날 약 85%의 양성률을 보였다. 그렇게 31번 환자가 나온 뒤 두 달간 대구에는 680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저자는 “숫자 ‘31’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지난해 2월 이후 먹은 적이 없다”고 했다.
 
중증과 경증 환자를 분리해 병실 부족 문제를 해결했던 생활치료센터가 대구에 처음 등장한 순간도 적혀 있다. 이 교수는 “세종에서 개최된 중수본 회의에서 대구 지역의 절박한 상황을 설명하고 ‘제발 병원이 아닌 곳에서 경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옵션과 지침을 변경해 달라’는 요청을 간곡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경수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사진 영남대

이경수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사진 영남대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가 처음 탄생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결정적 순간이다. 2월 23일 칠곡경북대병원이 선별진료소를 개조해 전국 최초로 드라이브 스루 방식 진료소를 운영해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저자는 “이런 방식을 미리 도입하지 않았다면 대구시가 하루 최대 6000건 이상의 검사를 해내고 단시간에 지역사회 감염을 차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이 비대면 국무회의 중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렸던 에피소드도 눈길을 끈다. 자택에서 입원 대기 중 사망한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권 시장이 이 사실을 회의 참석자들에게 알렸지만 별다른 대꾸가 없자 화가 나 자리를 떠났다는 얘기다.
 
걷잡을 수 없이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대구시청 공무원들이 지쳐가는 모습도 상세히 묘사됐다. “비상 대응 직원들의 한숨과 무표정한 얼굴, 충혈된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가끔은 울기도 하는 직원도 보였다”는 구절은 당시 상황을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대구 코로나’, ‘대구 봉쇄’ 등 대구가 코로나19 도시로 낙인 찍히는 모욕적 상황에서도 대구시민들이 보여준 수준 높은 시민의식도 책에 언급됐다. “시민들은 도망치지 않았고, 혼란하지도 않았고, 사재기하지도 않았고, 남탓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코로나19는 사회 취약 계층과 생각할 수 있는 최약한 고리와 사회적 분절을 송곳으로 후벼 파듯이 훑고 지나가고 있다”며 “거대 담론과 사회적 책무성을 논하곤 하지만, 돌아보니 ‘시청으로 와주셔야겠다’는 전화 한 통에 달려간 이유가 ‘가족과 이웃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이상은 아니었다고 지금도 느낀다”고 말했다.  
 
대구=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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