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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선한 정책, 나쁜 결과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재계에서 저승사자로 통하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주요 그룹의 단체급식(구내식당) 사업에까지 숟가락을 얹자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정위는 5일 삼성·현대자동차·LG·현대중공업·신세계·CJ·LS·현대백화점 등과 ‘단체급식 일감 개방 선포식’을 열었다.
 

공정위, 단체급식 일감 나누기 추진
대형마트 옥좨도 전통시장은 부진

단체급식이란 기업의 공장이나 사무실, 연구소, 공공기관 등에서 특정 다수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애초 기업들이 직원 복리후생 차원의 비영리 형태로 시작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위탁 급식이 등장하면서 영리 성격도 가미됐다. 현재 5조원 규모의 국내 단체급식 시장에서 삼성웰스토리·아워홈·현대그린푸드·CJ프레시웨이·신세계푸드 등 대기업 계열사나 친족회사가 70%대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일감 나누기’를 명분으로 내세운 공정위의 메시지는 간단하다. 단체급식 사업을 중소기업 등에 넘기라는 요구다. 내년부터 주요 대기업이 과점한 단체급식 시장에서 ‘내부 거래를 줄이되, 대기업끼리 서로 나눠 먹지도 말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 관행 탓에 독과점 폐해가 심한 업종 중 하나로 단체급식을 지목해왔다. 이낙연 전 총리는 2017년 9월 5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공정위에 단체급식 시장의 구조 개선을 지시했다. 당시 “5조원 규모로 알려진 국내 단체급식 시장에서 대기업 6개와 중견기업 5개가 80%를 독식하고 나머지 1조원을 놓고 중소기업 4500여 개사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며 개선 방안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공정위 측은 단체급식 일감 개방은 2017년 9월 기업집단국 설립 이후 독립·중소기업의 사업 기회 확보를 위해 추진해온 일로, 지역 중소기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삼성·현대차·LG·현대중공업·CJ 등은 단체급식 업체를 경쟁 입찰 방식으로 뽑기로 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로 1조2000억원 규모의 단체급식 일감이 중소기업에 돌아갈 것으로 봤다.
 
문제는 수천 명의 식사를 동시에 감당할 능력이 있는 중소 급식 업체가 드물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기숙사·연구소 등 소규모 시설 대상의 단체급식 사업부터 순차적으로 개방할 예정인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대규모 식자재 수급과 유통, 조리사·영양사 등 인력 채용, 혹시 모를 대형 급식사고 대처 같은 난제를 소화할 수 있는 인프라와 경험을 갖춘 중소 업체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자칫 외국계 기업 배만 불릴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식사 품질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도 앓는 소리만은 아니다. 기업 구내식당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특히 개발자 구인난에 시달리는 게임·IT 업계에서는 한 끼에 2만원에 이르는 식사를 제공하는 회사도 있다. 대기업들도 단체급식을 ‘직원복지’ 차원에서 보고 품질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기업 구내식당 메뉴를 소개할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이 정도 눈높이와 입맛을 제대로 맞출 수 있는 중소 업체가 얼마나 될까.
 
공정위의 ‘단체급식 일감 나누기’가 선한 정책일 수 있지만 결과는 딴판일 수 있다. 대형마트를 옥죄면 전통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식자재마트’와 외국계 기업인 이케아 등만 덕을 봤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전체 유통업 매출이 43.3% 늘어나는 사이 전통시장·골목상권 등의 매출은 28% 증가에 그쳤다(대형마트 -14%). 더군다나 코로나19 이후에는 쿠팡·마켓컬리 등 전자상거래 기반 기업이 대세다. 대형마트조차 이들의 위세에 쩔쩔맨다. 시장의 힘은 곧잘 규제보다 세다. 이를 억지로 거스르면 엉뚱한 피해자만 양산할 수 있다.
 
남승률 이코노미스트 뉴스룸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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