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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일기’ 작가 팡팡 “세상은 이처럼 아름답습니다”

오늘(8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시작된 우한(武漢)시가 지난해 겪었던 76일간의 봉쇄 해제 1주년을 맞았다.  
팡팡 작가. [사진=팡팡 웨이보]

팡팡 작가. [사진=팡팡 웨이보]

지난해 봉쇄로 고통받는 우한 시민의 심리를 일기 형식으로 전 세계에 전했던 작가 팡팡(方方·66, 본명 왕팡(汪芳))이 봉쇄 해제 1주년을 맞는 소회를 자신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올렸다. “요 며칠 마음이 무척 따뜻해졌다. 세상은 이처럼 아름답다”란 제목의 수필은 최근 우한에서 독자와 작가가 겪은 잔잔한 에피소드와 사진, 편지를 담았다.  

봉쇄 해제 1주년 기념 수필 중앙일보 전제

팡 작가의 ‘우한일기’는 지난해 한글과 영어·독일어·프랑스어·일본어 등으로 번역 출판됐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출간이 금지됐다. 이후 중국 내 국수주의자와 신좌파 세력의 공격을 받은 팡 작가는 해남도에서 지내다 최근 우한으로 돌아왔다. 팡 작가는 중앙일보에 글의 한글 번역 전제를 허락했다.  
한편 중국 당국은 오는 12일 베이징 외교부 란팅(藍廳)에서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잉융(應勇) 후베이 당서기, 왕샤오둥(王曉東) 성장 등이 참석하는 대규모 후베이 홍보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팡팡: 요 며칠 마음이 무척 따뜻해졌다. 세상은 이처럼 아름답다
우한 봉쇄 해제 1주년을 맞아 팡팡 작가가 자신의 글에 올린 독자에게 받은 꽃바구니 사진. [사진=팡팡 웨이보]

우한 봉쇄 해제 1주년을 맞아 팡팡 작가가 자신의 글에 올린 독자에게 받은 꽃바구니 사진. [사진=팡팡 웨이보]

 
며칠 전
비가 왔다. 몇몇 친구와 밥 먹기로 약속했다. 넉 달간 못 봤다며 수다나 떨자고 했다. 큰 비가 오는데도 괜찮냐고 물었다. 이럴 때 만나야 제맛이란 답이 돌아왔다. 포도주 한 병을 들고 갔다. 자연스레 생선 요리 식당으로 갔다. 우리 단골집이다. 부뚜막 장작에 굽는다. 요리사가 삽으로 구워준다.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흩어진 적 없는 인터넷 폭력과 같다. 손님들 생각도 똑같다. 친구들은 무시하라 말한다. 인터넷에서 악다구니 치는 사람들은 끊기지도 않고 왜 그리도 많은지. 인터넷을 보지 마. 모두 내가 열정이 넘친 탓이라 말린다. 당연하다. 이미 저들의 욕설에 무감각해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만 때는 분노가 치밀었다. 매일 수면제를 먹었다. 설명도 해명도 시도했다. 9월이 되자 이치가 분명해졌다. 설명도, 해명도 의미가 없음이. 인터넷 깡패 무리와는 이치를 따질 수 없었다. 마음이 곧 편해졌다. 그때부터 수면제가 필요 없었다. 친구들과 웃었다. 과연 이렇게 하기가 쉬웠을까?
우한 봉쇄 해제 1주년을 맞아 팡팡 작가가 자신의 글에 올린 식당의 사진. [사진=팡팡 웨이보]

우한 봉쇄 해제 1주년을 맞아 팡팡 작가가 자신의 글에 올린 식당의 사진. [사진=팡팡 웨이보]

 
 
그저께
저녁에 우한대 교수들과 동호(東湖)에서 식사를 함께했다. 초대하며 책을 가져오라고 했다. 모두 자기 저서를 가져왔다. 나도 한 보따리 챙겼다. 문학작품, 무척 얇았다. 돌아올 때 서예와 학술서적으로 바꿔왔다. 두께가 상당했다. 갈 때 가져갔던 가방 무게가 곱절로 늘었다. 수지맞는 장사를 한 기분이다. 모인 사람 대부분 낯이 익다. 학교 동창이다. 몇몇은 동기동창이다. 얼굴을 보자 탄식이 나왔다. 이제 모두 노교수다. 당시 여학생이 적었다. 철학과에 둘, 역사과에 여덟. 내가 나온 중문과 여섯이었다. 열여섯 여학생이 함께 체육 수업을 들었었다. 자연스레 그들 안부를 물었다. 그 당시 얼마나 젊었던가 떠올리며. 학장이 편액을 썼다. ‘낙가선(珞珈仙, 락가는 우한대학이 자리한 산으로 우한대학의 별칭이다. 우한대학의 신선이란 뜻)’ 편액을 오른쪽으로 보면 ‘선가락(仙珈珞).’ 신선 선(仙)을 파자하면 ‘낙가산인(珞珈山人)’으로 읽을 수 있다. 재미있다.
우한 봉쇄 해제 1주년을 맞아 팡팡 작가가 자신의 글에 올린 편액. [사진=팡팡 웨이보]

우한 봉쇄 해제 1주년을 맞아 팡팡 작가가 자신의 글에 올린 편액. [사진=팡팡 웨이보]

 
식객은 주로 문과 교수다. 말이 청산유수다. 우한대는 늘 떠버리 사관학교였다. 식사 사이사이 화제는 다양했다. 모두 말하며 웃었다. 무엇이건 도마 위에 올랐다. 로마 원로원에서 주나라 진나라 제도까지, 국가와 천하에서 우한대 출신 여성 작가 위안창잉(袁昌英, 1894~1973), 링수화(凌淑華, 1900~1990), 쑤쉐린(蘇雪林, 1897~1999)의 운명까지, 서예박물관 구상에서 삼성퇴(三星堆) 유적까지 주제는 수시로 바뀌었고, 누구나 마음껏 끼어들었으며 전혀 쉴 틈 없이 물 흐르듯 대화가 이어졌다. 재미있었다. 연회가 마치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시 ‘누실명(陋室銘)’의 한 구절 “훌륭한 선비들과 담소를 나누고 비천한 자들은 왕래하지 않는다(談笑有鴻儒 往來無白丁, 담소유홍유왕래무백정)” 그 자체였다. 한 교수가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사위가 감염되어 병실조차 구하지 못했으나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경험을 말했다. 그 시절 모두 나의 일기를 읽으며 정보를 찾고, 위로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비참했던 기억이 되살아 나며 그들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느낄 수 있었다. 감동이었다. 당연히 내가 당한 인터넷 폭력을 모두 알고 있었다. 여덟자 촌철이 심금을 울렸다. “인간과 비인간은 대화할 필요가 없다(人與非人 不必對話).” 대화의 결론인 듯했다. 집에 돌아와 지인에게 전했다. 다들 동의했다. 맞아, 맞아. 인터넷의 쓰레기를 이제는 떠나 보내야겠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당신이 좋아하는 이와 함께 많고 많은 밥을 먹는 일입니다.″ 우한 봉쇄 해제 1주년을 맞아 팡팡 작가의 글에 올라온 사진. [사진=팡팡 웨이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당신이 좋아하는 이와 함께 많고 많은 밥을 먹는 일입니다.″ 우한 봉쇄 해제 1주년을 맞아 팡팡 작가의 글에 올라온 사진. [사진=팡팡 웨이보]

 
 
어제
 
또 큰 비다. 정오경 동료가 전화했다. 87세 노인 이야기를 했다. 오전에 비를 무릅쓰고 작가협회 사무실에 와서 나를 찾았다고 한다. 한 직원이 장강 문예 잡지사를 알려줬다. 난 이미 퇴직했기에 장강 문예 직원은 간부사무실을 알려줬다. 간부사무실 책임자가 노인을 접대했다. 노인은 내 우편함에 책 한 권과 편지 한 통을 남겼다. 노인은 어떤 이의 부탁을 받고 책을 전하러 왔다며 나에게 말을 전했다. 코로나19 도중에 그들은 매일매일 내 일기를 읽었다고 한다. 내 일기가 그들이 봉쇄의 날들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또 나의 안녕과 건강을 물었다. 동료는 하나하나 대답해 드렸다. 동료가 노인에게 물었다. 이렇게 연세가 많으신 분이 이렇게 큰비를 무릅쓰고 나설 생각을 하셨느냐고. 노인이 엄숙히 말했다. 부탁을 받았으니 해야 했다고. 돌아갈 때, 동료는 노인을 건물 밖 정문까지 배웅했다. 사무실에 돌아와 전화로 사정을 알렸다. 감동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후다. 교외에 나설 준비를 했다. 바로 그때 동료 두 명이 차로 짐을 실으러 왔다. 누군가 소리쳤다. “팡팡 선생 계세요?” 기뻤다. 그가 찾아와서다. 그녀는 스커트 차림으로 총총 달려왔다. 손에 든 등나무 바구니에 월계수 꽃이 가득했다. 성경 한 권과 카드 한장이 있었다. 그녀는 기독교도라며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줄곧 우한을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매일매일 팡팡일기를 읽었다고 한다. “당신은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썼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척 감격했고, 또 마음을 놓았습니다.”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다. 짐을 나르려던 참이라 다운재킷 차림에 단정한 옷차림이 아니었다. 그녀는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그의 난처한 모습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는 날씨가 차가웠다. 열정적인 그녀를 보니 내 마음이 무척 따뜻해졌다. 인간 세상은 사실 이처럼 아름답다.
2021.4.2
팡팡
 
 
우한 봉쇄 해제 1주년을 맞아 한 독자가 팡팡 작가에게 보낸 편지. [사진=팡팡 웨이보]

우한 봉쇄 해제 1주년을 맞아 한 독자가 팡팡 작가에게 보낸 편지. [사진=팡팡 웨이보]

 
 
 
팡팡 선생:
 
영웅의 도시에서 영웅을 보았습니다.
손에 쥔 붓을 칼처럼 휘두르며 가시덩굴을 베었습니다.
무명옷 입은 시민들의 울음을 듣고
한 줄기 빛으로 어둠을 갈랐습니다.
봉쇄된 도시에 당신의 일기가 전해져 읽혔습니다.
한 자 한 자 주옥같이 진실한 인정을 말했습니다.
그 도시가 평안하길 기도합니다.
의로운 선행은 세상 널리 가득할 것입니다.
(英雄城內見英勇
持筆如劍斬荊棘
聽聞布衣平民泣
一方亮透暗夜醒
封城傳閱伊日記
字字珠璣顯眞情
祈禱平安臨那城
義擧善行滿人間)
 
봉쇄된 도시의 어두운 밤마다 매일 전 세계 온 나라 형제자매들이 기도했습니다.
팡팡 선생의 하루하루 일기를 따라 어려웠던 2020년 봉쇄의 날을 견뎠습니다.
마지막 한 편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를 읽는 순간 참호 속 전쟁의 영광은 희열로 변했습니다.
상하이와 우한 교인들의 부탁을 받고
부활절을 맞아 팡팡 선생께 문안을 드립니다!
 
번역=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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