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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시시각각] 꼭 좋아서 찍은 건 아니라네요

청년 유권자들이 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자치회관에 마련된 투표소로 향하고 있다. [뉴스1]

청년 유권자들이 7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자치회관에 마련된 투표소로 향하고 있다. [뉴스1]

2번 후보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그의 당이 예뻐서 표를 준 건 아니라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리 말합니다. 1번 찍었다는 친구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응원이 아니라 응징 의지가, 지지가 아니라 반감이 서울·부산 유권자 표심을 좌우했다는 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될 것을 알았기에 1번 후보는 상대 후보 흠집내기에, 2번 후보는 경쟁자의 당 공격에 열중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대다수 투표자는 자기가 찍은 후보가 시장이 되면 무엇을 하겠다고 했는지 잘 모릅니다. 애초에 그것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 선거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장면은 청년들이 2번 후보 유세 연단에 올라 절규하는 모습입니다. 유튜브에 ‘20대 유세’를 검색어로 넣어 보면 줄줄 나옵니다. 지난해 4·15 총선 땐 젊은이들이 푸른색 옷을 입고 투표소에 가 인증샷을 올리는 게 반짝 유행이었습니다. 아무리 정부와 집권당이 실망스러워도 ‘꼰대 당’에는 도저히 표를 줄 수 없다고 청년들이 대놓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1년 새 청년 민심이 확 달라졌습니다. 2번 지지 청년 연설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진솔합니다. 정치 용어가 별로 없습니다. 자기 삶에서 우러나오는 주장을 합니다. 정치·운동 조직과는 무관하다는 게 드러납니다. 청년 연설의 일부 대목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1년 새 확연히 달라진 2030 민심
배신한 건 청년이 아니라 집권층
승자는 '비판적 지지' 의미 새기길

 “박영선 후보가 20대 지지율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20대는 역사적 경험치가 낮다고 얘기하면서 취직도 잘 안 되고 미래도 불안하니 이에 대한 불만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취업 참 힘들고 미래 불안합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20대 무시 발언 전 참을 수 없습니다.”(숙명여대 3학년생)
 “너희 월세 지원해줄 테니 마음 풀어, 이러고 있습니다. 세금을 또 자기들 돈 마냥 펑펑 써서 해결하려는 그들의 주특기를 보여줍니다. 사탕 하나 더 준다고 말 잘 듣는 어린애도 아니고….”(서울대 1학년생)
 “현 정권이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그래도 청년들이 저축도 하고 조금이라도 희망과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희망까지도 모조리 사라져버렸습니다.”(20대 스타트업 창업자)
 “기회는 평등합니까? 네, 평등하죠, 자기들끼리만. 과정은 공정합니까? 네, 공정하죠. 자기들끼리만.”(26세 직장인)
 한 청년은 한국에서 취업하기가 어려워 일본으로 건너가 면세점에서 일자리를 구했는데 한국에서의 ‘토착 왜구’ 척결 소동에 여행객이 줄어 실업자가 된 자신의 사연을 말하다 목이 멨습니다. 눈물도 흘렸습니다. 유세장에 정적이 퍼졌습니다. 다른 청년은 서울에서 자랐는데 집값 때문에 부모와 경기도로 이사했고, 그래서 이번에 투표할 수 없게 됐으며, 다시 서울로 오고 싶지만 이루기 힘든 희망이라는 걸 안다고 말해 주변을 숙연케 했습니다.
 청년들이 자주 말한 게 있습니다. 정부가 자기들한테 자꾸 뭐를 해준다고 하지 말랍니다. 결국 자기 세대가 나중에 갚아야 할 빚임을 안다고 합니다. 2번 후보가 좋아서 연단에 선 게 아니라는 말도 단골로 등장합니다. “오세훈 후보 마냥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국민의힘 솔직히 별로입니다.” 이런 말을 후보 면전에서 쏟아냅니다. 
 청년층이 보수화됐다며 얼굴 찌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더는 진보가 아니어서, 아니 원래 진보가 아니어서 청년들이 외면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멀어져 갑니다.
 청년층의 저항과 새 시대 갈망이 곧바로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30대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그 힘을 이용해 파시스트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4년 반 전에 촛불 들고 광장으로 간 한국 청년들이 이런 나라를 맞이하게 되리라고 꿈에라도 생각했겠습니까. 부디 이번 선거가 젊은이들에게 성공의 기억으로 자리 잡기 바랍니다. '좋아서 찍어준 것 아니다’를 잊지 마십시오. 잘 보이는 곳에 크게 써 붙여 놓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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