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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세운 ‘마자르족’ 조상은 부여계 기마민족

유럽으로 간 고조선 문명 〈끝〉

아르파드의 지휘 아래 마자르족이 카르파티아 분지로 이동하는 모습을 그린 헝가리 기록화. 기병대는 부여·고구려·말갈족처럼 새 깃털을 꽂은 관(鳥羽冠)을 쓰고, 일반 백성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위키피디아]

아르파드의 지휘 아래 마자르족이 카르파티아 분지로 이동하는 모습을 그린 헝가리 기록화. 기병대는 부여·고구려·말갈족처럼 새 깃털을 꽂은 관(鳥羽冠)을 쓰고, 일반 백성은 고깔모자를 쓰고 있다. [위키피디아]

현대 헝가리의 직접 조상은 멀리 동방에서 출발하여 AD 895년 카르파티아 분지(판노니아 평원)에 영구히 정착해서 헝가리 왕국을 세운 고조선·부여 후예 ‘마자르’(Magyars)족이었다.
 

고중국과 국경 지키던 민족 ‘불도하’
형제관계 훈족 따라 서방으로 이동
895년 판노니아 평원에 왕국 건립

부여족처럼 단군·태양·불·달 숭배
가옥·복식·5음계·장수 모자도 비슷

고조선과 고중국의 국경이 지금의 베이징 부근 영정하(永定河)와 간하(干河) 일대였을 때, 고조선의 간하 일대를 지키던 기마민족이 산융(훈족)과 ‘불도하’였고, 영정하 일대를 지키던 기마민족이 ‘불리지’와 ‘고죽’이었다. 산융은 매우 강대한 데 비하여 불도하는 강소했기 때문에, 불도하는 지금의 탁록(涿鹿)현에 맞닿은 간하 동쪽만 지키고, 광활한 서쪽은 산융이 지키면서 형제처럼 잘 협동하고 있었다.
  
헝가리 교과서에 개국 설화 실려
 
마자르 전통 흰옷과 붉은 댕기를 단 소녀들의 민속춤. 강강술래를 닮았다. [위키피디아]

마자르 전통 흰옷과 붉은 댕기를 단 소녀들의 민속춤. 강강술래를 닮았다. [위키피디아]

불도하는 머리 명칭 ‘불’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부여족 일파였다. 부여는 처음 ‘예’족이 건국했다가 후기에 왕조가 ‘맥’족으로 교체되어, ‘예맥족’ 국가가 되었다. 고조선은 용감한 예족 기병부대를 훈족(산융)에 붙여서 서변 요충지 간하 방어에 배치했었다. BC 108년 고조선 해체 후 불도하는 농경민만 남고 유목 기마부대족은 훈족을 따라 이동하다가 결국 중앙아시아에 들어갔다.
 
현재 헝가리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마자르족의 개국 설화에는 한 나라 임금에게 두 아들 훈오르(Hunor)와 마고르(Magor)가 있었는데, 사냥 나갔다가 불가사의한 수사슴을 만나 뒤쫓았더니 두 사냥꾼을 깊은 숲속으로 유인하고는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실망한 두 사냥꾼에게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둘’(Dul) 왕의 아름다운 두 딸이 호수에서 물을 튀기며 놀고 있었다. 두 아들은 두 공주를 각각 말에 태우고 돌아와서 혼인하여 아내로 삼으니, 훈오르가 낳은 자손이 훈족(Huns)이 되고, 마고르가 낳은 자손이 마자르족(Magyars)이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이 설화는 훈족과 마자르족이 국왕을 같이한 형제 관계이며, 훈족이 형이고 마자르족이 아우임을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훈오르’는 ‘훈+오르’로, ‘마고르’는 ‘마ㄱ+오르’로 분절된다. 이어 ‘마가르’가 ‘마자르’로 변음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여는 대장군이나 장관을 ‘가’(ga, gar)로 호칭하고, 말·소·양·개 등의 가축 이름을 붙였는데, ‘말가(르)’가 ‘마자르’로 변음된 것으로 해석된다. 마자르족 개국설화는 고조선 시기 훈족과 불도하의 형제 관계와 관련이 있다고 필자는 본다. 이 설화는  동일 국왕 아래서 살다가 이동하여 각각 훈족과 마자르족을 형성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불도하의 족장 말가(르) 지휘 하의 기마부대족은 2~4세기경 훈족의 뒤를 따라 우랄산맥의 동쪽 토볼강 유역에 정착했다. 이 시기부터 부족 이름이 마자르(마가르)로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 훈족이 4세기에 더 서방으로 이동하여 판노니아 평원으로 들어가자, 마자르족은 우랄산맥 서쪽 카마강과 볼가강 사이의 이전 훈족의 첫 정착지 자리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마자르족은 목축과 농경에 힘쓰며 상당히 성장하여, 헝가리 학자들이 ‘대(大)헝가리아’(Magna Hungaria)로 호칭하는 시기를 맞았다. 그러다 마자르족은 5~7세기 돈(Don)강과 드니에프르(Dniepre)강 하류 사이의 레베디아 지방으로 이동했다가 강대한 불가르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헝가리 왕국을 건국한 마자르족장 아르파드 동상. 부다페스트 광장. [위키피디아]

헝가리 왕국을 건국한 마자르족장 아르파드 동상. 부다페스트 광장. [위키피디아]

마자르족은 7세기 말~8세기 전기에 막강한 힘을 배양했다. 그 요인이 동방으로부터 찾아온 유목민의 충원을 받은 것이라면, 필자는 그것을 속말말갈(粟末靺鞨)족으로 본다. 원래 말갈족의 본거지는 부여의 통치 아래서 요동지방 동만주에 분포된 7개 부족으로 구성돼 있었다. 고구려 건국 후 영토 확장 과정에서 ‘제2 송화강’ 부근의 ‘속말말갈’이 영토를 지키려고 581~600년 고구려와 전쟁에서 패했다. 대부분 고구려에 항복해 고구려 신민이 되었으나, 궐계부(厥稽部)의 ‘만돌’과 그의 동생 ‘돌지계’는 항복을 거부하고 수나라로 피신했다. 수나라는 이들을 요서의 대릉하 부근에 두었는데, 동생 ‘돌지계’는 수나라의 신하가 되었고, 형 ‘만돌’과 그 기마부대는 탈출하여 중국 역사에서 사라졌다. 이것이 요서 지방으로 이동한 유일한 말갈족 기병부대이다(『隋書』, 『太平寰宇記』, 『北史』). 이들이 중앙아시아의 동일 예족인 마자르족을 찾아가 합류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자르족은 8~9세기에 드니에프르 강과 드니에스테르(Dnyester)강 사이의 흑해 위 서편 카자르 제국 영토인 에텔쾌즈(Etelkoez) 지방으로 민족이동을 감행해 정착하며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카자르 제국은 마자르족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889년 마자르족을 공격했다.
  
말갈족 기병부대 합류한 뒤 강성
 
마자르족은 다시 895~900년 카르파티아 분지(판노니아 평원) 안으로 민족이동을 감행했다. 이곳은 동로마의 영지였으나 로마인은 많지 않았고 약 20만 명의 슬라브족이 살고 있었다.
 
마자르족은 이 민족이동 때 7개 기마 부족장이 모여 혈맹의 뜻으로 피를 나누어 마시고 아르파드(Arpad)를 왕으로 지명함과 동시에 그의 남자 후손을 세습 군주로 봉대할 것을 서약했다.
 
아르파드가 지휘하는 약 2만 명의 정예 기병부대는 895년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어 분지 안으로 진입해서 슬라브 농민들을 신속하게 정복했다. 아르파드는 뒤따라온 약 40만 명의 마자르족을 정착시키고, 마침내 카르파티아 분지에 마자르족의 헝가리 왕국을 건국하였다. 이것이 현대 헝가리 마자르족 국가의 시작이다.
 
말, 투룰(Turul·신성한 새) 등을 새긴 마자르족의 토템 장식(왼쪽부터). [위키피디아]

말, 투룰(Turul·신성한 새) 등을 새긴 마자르족의 토템 장식(왼쪽부터). [위키피디아]

마자르족의 동방 기원 이해를 위해 부여족·말갈족·고구려족과 흡사한 몇 가지 전통 민속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① 부여 왕족 토템은 ‘사슴’이고, 주민 토템은 ‘새’였다. 마자르족 건국 설화에 사슴과 투룰(Turul, 독수리)이라는 새가 나오는데, 연관성이 현저하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말이 애호되었다.
 
② 마자르족의 반수혈(半竪穴) 가옥은 부여의 수혈 주거와 매우 유사하다.
 
③ 마자르족 주민의 7부족(Hétmagyar) 구성은 부여의 ‘예’계 말갈족의 7개 부족 구성과 같다.
 
④ 마자르족의 남·녀 복식과 고깔모자는 부여족의 복식과 고깔모자와 매우 유사하다.
 
⑤ 형이 사망하면 아우가 형수를 취하는 마자르족의 제도는 구려·고구려와 동일하다.
 
⑥ 마자르족의 민족음악 5음계는, 부여족 등 고조선 후예들의 민족음악 5음계와 동일하다.
 
⑦ 마자르족 언어는 아발족(우구르족) 언어와 가까운 친족 관계이다. 이것은 고조선 언어가 부여·아발어·말갈어·마자르어의 조어(祖語)이기 때문이다.
 
⑧ 마자르족의 장수들과 아르파드 족장의 군모에 새 깃털〔鳥羽〕을 꽂는 양식은 부여·고구려의 깃털 모자와 동일하다.
 
⑨ 마자르족의 전통 종교는 텡그리즘(Tengrism)으로 단군 신앙이다.
 
⑩ 마자르족의 신앙에 단군과 함께 태양과 불〔火〕에 이어 달을 숭배하는 전통은 부여족의 태양·달·불 숭배와 동일하다.  
  
※고조선 문명의 후예들이 유럽에 들어가서 수행한 활동을 되돌아본 이 연재를 이번 회로 종료합니다. 인류의 편견 없는 소통과 교류를 위한 연구와 토론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서울대 교수(1965~2003) 정년퇴임. 한양대·이화여대·울산대 석좌교수(2003~2018) 역임. 저서 『독립협회 연구』 『한국독립운동사 연구』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사회사』 『한국 민족의 기원과 형성』 『고조선 문명의 사회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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