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오징어회를 쫄깃한 맛으로 먹는다면, 먹찜은 부드럽다. 고소하면서도 담백한 맛. 생양파와 궁합이 잘 맞는다. 먹물을 입가 묻힐 각오를 해야 한다. 한우삼합은 장흥산 키조개 관자, 한우, 표고버섯을 한꺼번에 싸먹는 장흥의 대표 먹거리다.

장흥 안양면 수문리는 키조개마을로 유명하다. 득량만으로 나갔던 키조개 어선이 수문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왕조개 vs 서민조개

키조개는 농기구 '키'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껍데기를 열면 두툼한 관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서남해안 전역에서 잡히는 바지락이 서민이라면, 키조개는 조개의 왕이다. 전복‧백합과 함께 고급 조개로 통한다. 껍데기를 벌리면 꽃등심처럼 두툼한 관자(패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매년 5월 키조개 축제(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취소)를 열 만큼 장흥에서도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다. 키조개 마을로 통하는 안양면 수문항 일대에서 한 해 330t가량의 키조개가 잡힌다.
얕은 갯벌에서 잡히는 바지락과 달리, 키조개는 수심 5m 이상 펄 바닥에 붙어 자란다. 종패는 사람이 심지만, 따로 먹이를 주지 않으므로 양식이라 말하긴 모호하다. 키우는 건 온전히 바다의 몫이다. 장흥 사람은 “개펄에 키조개를 이식한다”고 표현한다. 봄이면 잠수부들이 고깃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2~4년 자란 키조개를 건져 올린다.

장흥 수문항 앞 바다하우스에서 맛본 조개 요리. 키조개는 회로도 먹고 구이로 먹고 맑은탕으로 먹기에도 훌륭한 식재료다. 막걸리식초로 맛을 낸 바지락 회무침도 별미다.
한우에도 제철이 있다

장흥에는 소여물용로 재배하는 이탈리안라이그라스 들판이 흔하다. 마침 벚꽃이 한창이다.
장흥 사람은 한우를 그냥 먹지 않는다. 지역 특산물인 표고버섯과 키조개까지 곁들인다. 이른바 ‘한우삼합’이다. 소고기에는 철이 없지만, 한우삼합에는 제철이 있다. 표고는 봄과 가을에 재배한다. 키조개는 4~5월의 것이 알차다. 하여 봄철의 한우삼합을 최고로 친다.

정남진장흥토요시장에 즐비한 한우 판매장. 26개 판매장이 줄지어 있다.
한우삼합은 세 가지 재료를 불판에 조금씩 올려 바로바로 구워 먹는 게 요령이다. 키조개는 빨리 익기 때문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잠깐, 한우만으로로도 충분하지 않으냐고? 입에 넣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육즙 가득한 한우, 짭조름한 키조개 관자, 향긋한 표고버섯이 입안에서 한데 뒤섞인다. 풍미가 대단하다.
체통을 버리게 되는 맛

장흥 관산읍 '병영식당'의 갑오징어회와 먹찜. 갑오징어의 속살은 우윳빛이다. 먹찜으로 조리하면 검은 먹물을 뒤집어 쓰게 된다.
갑오징어는 다혈질이다. 잘못 건드렸다간 먹물에 쏘이기에 십상이다. 횟집의 베테랑들은 수조에서 꺼내기가 무섭게 먹통, 눈알, 입부터 제거한다. 싱싱한 갑오징어는 배를 가르고 몸통을 두 동강 낸 뒤에도 꿈틀꿈틀 도마 위를 한참 헤집고 다닌다.
갑오징어 본연의 맛을 끼려면 회나 찜으로 먹는 게 좋다. 관산읍 ‘병영식당’ 주방에서 조리 과정을 엿봤다. 회도 찜도 과정이 간단했다. 살아있는 갑오징어를 절단한 뒤 뼈를 제거하고 껍질을 벗겨내니 우윳빛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갑오징어회(6만원)는 씹어야 제맛. 첫맛은 달고, 뒷맛은 고소했다.

남은 먹물로 비벼먹는 먹밥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작지만 진하다

된장을 풀어 끓인 쫄복탕. 40년 내력 '성화식당'의 솜씨다.
졸복은 작다. 다 자라도 좀처럼 어른 손바닥 크기를 넘지 못한다. 볼록한 배와 입이 앙증맞아 보이지만 여느 복어와 마찬가지로 맹독을 품었다. 하여 세심히 손질해야 한다. 독을 품은 창자와 아가미 등을 제거한 다음, 온종일 물에 담가 핏물을 뺀 뒤 조리한다.
졸복은 고춧가루 없이 맑은탕(지리)으로 끓이거나, 통째로 갈아 걸쭉한 어죽 형태로 먹는 게 일반적이다. 장흥식 쫄복탕은 맑지 않고 누렇다. 소금 대신 된장을 넣어서다. 그러고 보니 장흥의 여름 별미로 통하는 된장 물회 역시 고추장 대신 된장을 넣는 게 핵심이다.
“맑은 탕은 도시 사람이나 좋아하지라, 우린 촌사람이라 된장을 풀어야 먹어부러.”
40년 동안 졸복을 다룬 ‘성화식당’의 임평심(73) 할머니도 집된장 풀고 미나리를 올린 쫄복탕(2만원)을 냈다. 구수한 국물 덕에 금세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떡이야 빵이야

탐진강변의 데크로드에 벚꽃이 만개했다.

장흥읍내 '달콤꽃시루'의 장성호, 박영란 부부. 매일 아침 함께 떡을 빚고 쪄낸다.
장흥=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