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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의 ‘자산어보’…예나 지금이나 세금이 문제더라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 정약전(설경구)이 흑산도 유배 중 섬 청년 창대(변요한)의 도움으로 집필한 동명의 어류도감이 모티브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 정약전(설경구)이 흑산도 유배 중 섬 청년 창대(변요한)의 도움으로 집필한 동명의 어류도감이 모티브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사극 장인’ 이준익(62) 감독이 영화 ‘자산어보’(31일 개봉)에 닿는 길은 서해의 절해고도 흑산도처럼 멀고 험했다. “사극을 계속 찍으면서 조선의 근대를 명확하게 못 그려내는 아쉬움이 있었다. 접근하려 보니 동학이 보였는데, 그 앞에 서학이 있더라.” 서학을 탐색하러 그는 충북 제천 베론 성지까지 갔다. 긴 시놉시스를 썼지만 완성하지 못했다.
 

정약전 흑산도 유배 담은 흑백영화
희귀 해산물 성찬 ‘먹방’ 선사하다
섬 청년 입 통해 사회 부조리 고발
“과거 통해 현재를 보는 게 사극”

마음속 숙성 기간에 ‘사도’(2015) ‘동주’(2016) ‘박열’(2017) ‘변산’(2018) 등의 성공과 실패를 맛봤다. “이제야 서학 이야기를 다시 할 때 됐다 싶어 정약용 형제들을 들여다보니 정약전이 두드러졌다. 『목민심서』와 『자산어보』의 차이, 그리고 『자산어보』 서문에 등장하는 청년 어부 창대. 인물들이 뚜렷해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영화 개봉에 앞서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이 감독의 말이다.
 
‘자산어보’는 정조 사후 세도정치 발호 속에 움텄던 사회 변혁 의지와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절제된 흑백 영상에 담아낸다. 극 초반은 1801년(순조1) 신유박해를 전후해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 천주교를 포함한 서양의 가치·이념이 위협이 되는 과정을 순발력 있게 소개한다. 정약전(설경구)은 첫째 아우 약종(최원영)을 형장의 이슬로 보내고 둘째 아우 약용(류승룡)과 마찬가지로 귀양 살러 가는데, 호기심 많은 그에게 유배지는 새로운 배움터다.
 
학문에 목마른 섬 청년 창대(변요한)에게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고 제안해 두 사람이 티격태격 가까워지는 과정은 여느 버디 무비처럼 정겹다. 특히 창대가 거친 파도와 싸우며 거대한 돗돔 등을 잡는 과정은 마치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해방감을 선사한다. 이들이 차려내는 해산물 밥상은 군침이 절로 도는 ‘먹방’ 파노라마다.
 
정약전의 첩이 된 섬 여인(이정은) 등 실화에 바탕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정약전의 첩이 된 섬 여인(이정은) 등 실화에 바탕했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그러나 정약전이 쓴 한국 최초 어류도감 『자산어보』는 영화의 한 축일 뿐. 중반 이후 이야기는 또 다른 축인 『목민심서』의 세계로 달려간다. 천한 신분을 딛고 출세해 탐관오리의 학정을 바로 잡으려던 창대는 가혹한 군포 징수에 시달린 가장이 자신을 자해하는 ‘애절양(哀絶陽)’의 현실을 맞닥뜨린다. 애절양은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실화를 전해 듣고 쓴 사회시. 이처럼 영화 주요 에피소드엔 정약용의 한시가 사회 고발성으로 담겼다. ‘동주’에서 윤동주의 시가 준 울림과도 겹친다.
 
“정약용은 ‘시대를 아파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했다. 『목민심서』는 말하자면 공무원들 행동강령 같은 지침서인데, 그게 왜 나왔겠느냐. 창대가 성토하듯 ‘백성은 땅을 논밭으로 삼는데, 아전은 백성을 논밭으로 삼는’ 시대, 과도한 세금 징수에 백성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 후반부는 마치 주인공이 창대로 바뀐 듯 거친 고발극으로 바뀌는데, 이 감독은 “전체 컨텍스트에서 봐달라”고 당부했다.
 
이준익 감독

이준익 감독

“동주든 약전이든 창대든, 모든 개인은 시대와 불화를 겪는다. 이겨내는 방식이 다를 뿐. 창대는 실존 인물이지만 기록이 거의 없어 상상력으로 스토리를 덧입힐 수 있었다. 약전, 약용, 창대의 대비 속에 고루 다른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섬 청년에서 소과 급제한 진사까지 폭넓은 캐릭터를 소화한 변요한에 대해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연기를 했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흐트러짐 없이 일관되게 잘 밀어붙였다”면서 극찬했다.
 
그는 ‘변산’을 함께 한 김세겸 작가와 머리를 맞대고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등 당대 기록물을 두루 참고했다고 한다. 어물 장수 문순득의 표류 경험을 토대로 한 『표해시말』 등도 반영해 근대 서양 문물과 조우하기 시작한 조선 후기의 풍물을 세세하게 그렸다.
 
“극 중 가거댁(이정은)의 입으로 성 평등 문제도 언급했다. 그 또한 정약용이 당진 주막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활용했다. 그 시대에도 그런 담론이 있었단 얘기다. 과거의 관행·관습을 왜곡할 순 없지만 ‘지금 나는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해보는 게 사극이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이고 자세히 보면 내가 있다. 현재를 정확히 파악한 자만이 미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흑백 시대극 ‘자산어보’는 푸른 바다를 더 깊게, 가녀린 풀과 꽃을 더 보드랍게 드러낸다. 특히 유배지 초가의 툇마루에 앉은 인물들 뒤쪽으로 바다 수면이 반짝이는 모습 등은 한폭의 산수화 같다. 정약전 역 설경구의 첫 사극 주연이자 정진영(정조), 김의성(창대 친부), 방은진(창대 엄마), 조우진(흑산도 별장) 등이 신스틸러 활약을 한다.
 
“한국영화가 장르·현대물로서 세계적 수준인데, 내가 챙길 것은 역사극이라 생각한다. 서양인들이 동북아 3국 중 잘 모르는 게 한국 역사인데 난 이걸 영화로 보여주겠다. 1800년대 그들이 총질할 동안, 우리는 시 배틀을 벌였다고. 조선의 문명을 두고 열패감으로 100년을 살았지만, 이젠 우리 눈으로 (그 시대를) 목도할 필요가 있다.”
 
정약전의 유배지였던 흑산도는 촬영 환경이 적합치 않아 인근 도초도·비금도·자은도 등에서 찍었다고 한다. 촬영 기간 가장 맛있게 먹은 것을 묻자 이 감독은 ‘생물 홍어’라고 했다. “흑산도에서 실어오느라 삭히는 거지, 생물로 먹으면 그 맛이…. 영화에서 설경구가 오도독 씹잖아요, 그거 실제예요. 꼭 맛보세요.”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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