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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기타 쳐줄게 맥주와 담배 달라"

팝의 전성기인 1970~80년대를 주름 잡았던 이들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디 반 헤일런. [AFP=뉴스1]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에디 반 헤일런. [AFP=뉴스1]

  

하늘 무대로 떠난 70~80년대 빌보드 스타들
에디 반 헤일런 '비트 잇' 찬조 연주 조건 걸어
'레이디' 부른 케니 로저스, 여성과 노래 히트


마이클 잭슨의 83년 빌보드 1위 곡 ‘비트 잇’ 중반에 기타 신이 20초간 작렬한다. 록 그룹 반 헤일런의 기타리스트 에디 반 헤일런의 연주다. 그의 이 노래 찬조 연주 조건은 단 두 가지. 녹음 중 음주와 흡연. 그가 도착한 스튜디오에는 6개들이 캔 맥주 두 묶음과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반 헤일런이 낸 ‘점프’는 84년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5주 연속 올랐고 연달아 낸 네 장의 앨범은 모두 정상에 올랐다. 두 손으로 치는 '투 핸드 태핑' 등 기타 연주의 혁명가 에디가 지난해 10월 6일(현지시간) 사망했다. 후두암·폐암·골다공증 등을 앓다가 뇌졸중이 겹쳤다.
1972년 빌보드 핫100 1위 곡 '아이 엠 우먼'으로 여권의 대명사가 된 헬렌 레디.[AP=연합뉴스]

1972년 빌보드 핫100 1위 곡 '아이 엠 우먼'으로 여권의 대명사가 된 헬렌 레디.[AP=연합뉴스]

지난 1월 ‘아이 엠 우먼’이라는 영화가 국내 개봉했다. 한국계 문은주 감독이 호주 출신의 가수 헬렌 레디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헬렌이 부른 ‘아이 엠 우먼’은 72년 빌보드 1위에 올랐다. 페미니즘의 상징이 된 노래였고 헬렌은 여권의 대명사가 됐다. 그가 지난해 9월 29일 사망했다. 에디슨병을 앓았고 치매증세가 있었다. 78세.

1983년 케니 로저스와 돌리 파튼이 공연을 하고 있다. 이 둘이 함께 부른 '아일랜드 인 더 스트림'은1983년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다. [AP=연합뉴스]

1983년 케니 로저스와 돌리 파튼이 공연을 하고 있다. 이 둘이 함께 부른 '아일랜드 인 더 스트림'은1983년 빌보드 핫100 1위에 올랐다. [AP=연합뉴스]

케니 로저스는 여성과 듀엣으로 남긴 히트곡이 두드러진다. 돌리 파튼과 ‘아일랜드 인 더 스트림(83년 빌보드 1위)’, 킴 칸스와 ‘돈트 폴 인 러브 위드 어 드리머(80년 4위)’, 시나 이스턴과 ‘위브 갓 투나잇(83년 6위)’이다. 공교롭게도 ‘레이디(79년)’는 그의 첫 번째 빌보드 1위 곡이었다. 로저스는 지난해 3월 20일 81세로 사망했다.

2008년 NFL 수퍼보울 하프타임 때 공연 중인 톰 페티. 2017년 사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008년 NFL 수퍼보울 하프타임 때 공연 중인 톰 페티. 2017년 사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이 2006년 NFL 수퍼보울에서 미국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이 2006년 NFL 수퍼보울에서 미국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AP =연합뉴스]

2019년 그룹 카스의 리더 릭 오카섹, 2018년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을 비롯해 최근 5년 새 톰 페티, 조지 마이클, 프린스, 데이비드 보위 등이 세상을 떠났다. '비트 잇' 녹음 당시, 에디 반 헤일런이 '아이(kid)'라고 했던 마이클 잭슨이 떠난지도 어언 12년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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