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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 정보 투명하게 공개를”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해야”

갈팡질팡 국민연금

국내 증시에서 지난해 말부터 이달 12일까지 51거래일 동안 주식을 매도한 국민연금은 ‘증시의 안전판’에서 ‘증시의 뇌관’이 됐다는 비판 을 받고 있다. 사진은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기지로에 자리한 국민연금 본사. 장정필 객원기자

국내 증시에서 지난해 말부터 이달 12일까지 51거래일 동안 주식을 매도한 국민연금은 ‘증시의 안전판’에서 ‘증시의 뇌관’이 됐다는 비판 을 받고 있다. 사진은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기지로에 자리한 국민연금 본사. 장정필 객원기자

국민연금을 둘러싼 전문성·독립성·투명성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말부터 51거래일 연속 국내 주식을 순매도하면서 발생한 시장의 혼란, 저조한 운용 수익률, 삼성전자 사외이사 연임안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하는 과정에 나온 잡음 등이 주요 배경이다.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기획재정부 연기금투자풀 운영위원회 민간위원)와 한국연금학회 윤석명 학회장(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제시하는 해법을 들어봤다. 두 사람은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로 단기 성과 내기에 급급한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2006년 서스틴베스트를 만든 류 대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윤 학회장은 2002~2018년 네 차례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 위원을 맡은 연금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윤석명 한국연금학회장
스튜어드십 코드 폐지론은 과해
정보 비대칭성 정치권 악용 여지
스웨덴처럼 ‘연금 보고서’ 내야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복지 전문가 위주 기금운용 문제
일본 공적연금, 국가 미래 내다봐
단기 수익률에 매달려선 안 돼

윤석명

윤석명

국민연금이 최근 주주권 행사에 적극적이지 않은 듯하다.
류영재 대표(이하 류영재)=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로 투자기업에 주주권을 행사하는 건 당연하고 필요한 절차다. 기업들이 경영을 잘 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지배구조나 사업에 리스크가 있다면 대안을 찾도록 해야 기업은 물론 주주 등이 피해를 입지 않는다. 글로벌 연기금들도 주주로서 기업에 관여한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지배구조에서 오는 한계다.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다 보니 불필요한 정치적 억측이 자꾸 나오고, 복지 전문가들이 기금운용위원회를 이끌다 보니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윤석명 학회장(이하 윤석명)=과거에도 복지가 아닌 연금·투자 전문가 10명 내외의 정예 조직으로 기금운용위원회를 개편하자는 논의가 많았다(현재 20명). 다만 여기엔 반대 입장이다. 전문성을 갖추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만한 전문가가 많지 않다. 오히려 소수라서 정치권 입김에 더 쉽게 좌우될 수도 있다. 차라리 인원을 40~50명으로 대폭 늘리는 게 어떨까 싶다. 그러면 정치권이 지금보다 흔드는 데 애를 먹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예전에 국민연금 심의위원회 부위원장을 8년간 맡았었는데, 양대 노총에서 이해관계자가 잔뜩 들어와서 목소리를 내는 걸 보며 그래도 쉽지 않은 문제겠다라고 느꼈다.  
 
기금운용위원회를 아예 복지부로부터 독립시키면 되지 않나.
류영재=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그런 논의가 활발했지만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공산이 크다. 일단 복지부에서 끈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각의 논의처럼 기획재정부 산하로 옮긴다고 해서 정치적 입김이 줄어들까? 기재부가 전문성은 더 있겠지만 국민연금 재정을 각 정부의 입맛에 맞는 정책에 쉽게 끌어다 쓸 위험성은 더 크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고 국회가 어떻게 형성되든 여야 간의 이견을 좁히기도 어렵다. 현실적 대안으로 2018년 국민연금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거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와 관련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기존처럼 밀실에서 하지 말고, 훤히 보이는 유리상자 안에서 하게 만들어서 정부나 정치권 마음대로 국민연금을 주무르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였다. 지금으로선 스튜어드십 코드라도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게 차선책이자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다.

윤석명=스튜어드십 코드가 연금사회주의 수단으로 악용되기 때문에 일각에선 폐지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폐지는 과하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에서 때론 백기사 역할을 하고, 때론 쓴 소리를 내면서 건강한 견제에 나서는 순기능도 한다. 중요한 건 정부·정치권이 제도 자체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국민연금이 매사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제도 도입 취지에도 부합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국민연금이 더 투명하게 운영된다면 칼끝이 자신들을 겨눠도 지금처럼 정치적인 문제를 걱정하는 일은 줄어들 거다.
 
국민연금의 투명성 결여 정도는.
윤석명=막대한 자산을 운용하는데도 매년 대략적·형식적 계획 말고는 대외비라는 이유로 구체적 내용은 거의 밝히지 않는다. 기금운용위원들만 파악하고 있다. 이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은 정치권의 악용 여지를 남긴다. 무엇보다 온국민의 노후자금인데, 국민 누구나 내 노후자금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 쉽고 빠르게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합리적 비판도, 사회적 합의도 가능해진다. 복지 선진국 스웨덴은 연금 총괄 조직인 SPS(Swedish Pension System)가 ‘오렌지 리포트’라는 연간 보고서를 낸다. 매년 연금을 어떻게 운용했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심지어 현 제도의 지속가능성까지 설명한다. 서술은 최대한 객관적으로 한다. 뼈아픈 자평도 많다.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투명하고 중립적인 보고서다. 한국도 예전에는 복지부 산하 국민연금연구원에서 비슷한 보고서를 내기도 했는데, 지금은 잘 내는 것 같지 않다.
 
벤치마킹할 만한 해외 연기금 모범 사례가 더 있다면.
류영재=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캐나다 국민연금에서 최대한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100% 독립은 아니다. 한국으로 치면 기재부 같은 부처에서 CPPIB 위원 선임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도 장기 투자와 ESG 분야 등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12명의 위원을 추려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이 때문에 운영 성과도 상당히 좋아 지난 13~14년간 연평균 13%가량의 자산 운용 수익률을 기록했다. 비슷한 기간 한국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5% 안팎으로 추산된다.
 
류영재

류영재

한국처럼 독립성은 떨어져도 평가가 좋은 연기금은 없나.
류영재=세계 최대 규모 연기금인 일본 공적연금(GPIF)을 참고할 만하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영향력이 강해 독립적이라 보긴 어렵지만 스튜어드십 코드를 지난 6~7년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이행한 연기금이다. 특히 초장기적 관점에서 ‘유니버설 오너(거대한 기관투자자)’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운용 수익률 제고뿐 아니라 나라 경제 근간을 탄탄히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초고령화 영향으로 구인난이 더 심각한데 GPIF는 여성 인구의 경제활동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Empowering Women Index’라는, 여성 친화적인 근무 환경을 구축한 기업들로 구성된 인덱스를 따로 만들어 거기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했다. 눈앞의 단기 수익률보다 장기 수익률, 더 나아가 국가의 미래에 대한 기여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보고 자산 운용을 하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자산을 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윤석명=국민 노후 대비가 최대 목적인 만큼 장기 수익률이 중요한데 이쪽에 중점을 두질 못하고 있다. 단기 수익률이 나쁘면 언론에서 혼내고, 여론도 나빠진다. 국정감사도 견제와 감시라는 순기능이 있지만 장기 수익률 제고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감사도 철저히 이원화해야 한다. 예컨대 구성원 일부의 비위(非違) 적발을 목표로 한 감사, 그리고 각 조직이 본연의 존재 이유에 맞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보는 감사다. 둘을 분리해서 봐야 하는데 지금은 경계가 불분명하다.

류영재=국민연금은 국내총생산(GDP)의 37%(2019년 기준)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기금 규모를 갖고 있다. 국민 노후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더구나 공적 성격이 강하므로 긴 안목으로 봐줘야 한다. 단기 운용 수익률을 강조하다 보니 여의도의 ‘단기 투자 기술자’들을 운용에 대거 끌여들이게 되고,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다. 이들은 시장 원칙과 전략적인 투자법을 넘어서는 장기적 안목을 갖기 어렵다.
 
낮은 수익률 등 현안과 동떨어진 얘기처럼 들린다. 장기 투자가 왜 중요한가.
류영재=장기간 경제 성장에 탄력이 붙어 일자리가 늘면 연금 가입자도 늘고, 이들이 재정에 기여하므로 나중에 보면 단기 수익률도 높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된다. 국내 주식 투자를 예로 들어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특정 주식이 ‘대박’이 나서 당장은 좋을 수도 있지만 사실상 그게 전부다. 하지만 국가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면 국내 증시는 계속 우상향을 할 거고, 여기서 수익률도 계속 높게 나올 게 아닌가. 당장 안정적 수익률이 나올 것 같은 기업에만 투자하면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계속 수익률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신세가 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국민연금을 선진국 수준으로 개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윤석명=앞서 강조했듯 투명성 확보가 급선무다. 지금처럼 불투명한 조직일수록 정치권에 잘 휘둘리고, 국민도 특정 정치 세력의 ‘입맛대로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가 하면 바텀 업(bottom up) 방식의 개혁도 중요하다. 높은 수준의 시티즌십이 이를 가능케 할 거다. 핀란드는 2018년 연금 개혁으로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이 따로 운용되지만 급여 체계는 같도록 하면서 재정 안정화에 성공했다. 처음에 이렇게 하자고 해서 사회적 반발이 클 줄 알았는데 한국으로 치면 민주노총과 대한상의 역할을 하는 단체가 합심해 연금 개혁을 일사천리로 이뤘다. 지금의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류영재=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이 간과되기가 쉽지만 매우 중요하다. 국민연금이 저조한 단기 수익률을 기록해도 장기적으로 봐줘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기금 운용자들도 힘을 얻게 된다. 최소 1~2년 꾸준히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 CPPIB도 연금 개혁 과정에서 캐나다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길게 봐달라는 주문을 했다. 길게 본 투자가 기금 수익률에도 긍정적이라는 사회적 담론부터 시작해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기관 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 유도하기 위한 자율 지침. 국내에선 2016년(국민연금은 2018년) 도입.
연금사회주의=공적 연기금이 정치권 영향으로 투자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현상.
유니버설 오너=장기 관점에서 투자 방향을 모색·실행하는 초대형 기관 투자자.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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