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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의 소신 "젠더 이슈가 진보 소유물인가, 망국병이다"

지난 16일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정수경PD

지난 16일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정수경PD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건·사고마다 정확한 분석과 진단을 내놓아 사람들에게 ‘믿고 보는 그알(SBS 그것이 알고싶다) 교수’로 통한다. 대중의 신뢰가 두터우니 정치권 러브콜도 당연한 일인데, 최근 야당 정책 자문에 응하면서 정치에 나설 거란 얘기가 예전보다 더 자주 들린다. 십수 년간 민주당 등 진보 정당의 정책 자문에 응해온 그가 최근 야당을 돕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표현대로 정치적 "변절"일까. 지난 16일 이 교수를 만났다. 
 
정치 안 한다면서도 계속 야당 자문에 응한다.
정당·정치인 자문에 답하며 입법 기회를 갖는 건 내 업무의 연장선이다. 그게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상관없다. 17~20대 국회에선 모두 민주당을 도왔다. 21대 국회 때도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박원순 사건으로 많은 게 달라졌다. 박원순 사건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으면 이번 재보궐 선거는 근본적으로 명분 없는 선거라고 생각한다. 난 피해자 편에 서야 해서 야당을 도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만약 민주당에서 가라앉는 박원순 사건을 다시 띄우자고 했다면 받아들였을 거다. 이걸 정치적 제스처로 이해한다면 굉장히 올드하다. 줄다리기도 아니고 맨날 운동회 하나. 피해자 편에 선다는 생각으로 20년째 학교 출퇴근하는데 정당인도 아닌 내가 뭐가 바뀌었다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말한 활동들이 흔히 생각하는 '정치' 아닌가.  
정치인이 하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난 직업이 교수고 정년 채울 거다. 교수로서 최선을 다해 여성이나 피해자들 대변해 목소리 낼 뿐이다.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목소리를 내야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이 무시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이 정도 역할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이것도 교육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본 사건 기록들에서 ‘죽은 사람이나 피해자들이 나한테 무슨 이야기를 대신 떠들어 달라고 할까’ 생각하며 산다. 이들 입장 대변한다면서 정치판에 뛰어들 수 있을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야당에서 때마침 본인을 이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런 위험도 예상했다. 대가도 치렀다고 생각하지만, 소득도 있었다. 국민의힘 성폭력 대책 특별위원회(성폭력 특위) 대화방에서 위원들 태도가 점점 변화하는 걸 봤다. 지금까지 관심 없던 여성 이슈 관련 개정·제정안 만들면서 ‘아 우리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구나’라며 서로 응원하더라. 나도 적극적으로 토론했고 일말의 후회가 없다. 이정옥 전 여가부 장관이 박원순 사건 두고 국회에서 “젠더 감수성 교육받을 기회”라고 말했다가 엄청 공격받았는데, 난 그분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비싼 수업료 냈지만 배울 기회가 맞다. 난 교육자니까 애초에 교육할 작정으로 야당에 갔고, 이 당 저 당 왔다리 갔다리(?)하며 여성 이슈가 가라앉지 않게 하는 게 내 임무다.   
 
지난 17일 이수정 교수는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위 정책토론회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 보호 어떻게 할 것인가’에 참석했다. 오종택 기자

지난 17일 이수정 교수는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위 정책토론회 ‘권력형 성범죄, 피해자 보호 어떻게 할 것인가’에 참석했다. 오종택 기자

 
오랫동안 민주당 자문에 응하며 “신념을 갖고 지켜왔던 노선”이라고 했다가 최근 “방향성에 차이가 생겼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부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활동을 옆에서 도왔다. 그 활동가들이 민주당을 통해 정치권에 들어간 뒤 17~20대 국회까지 제도·정책 연구와 세미나 등을 도왔다. 그런데 안희정 사건까지 같은 목소리를 낸 단체들이 박원순 사건 계기로 피해자·가해자 편으로 나뉘었다. 스스로 매우 큰 혼란에 빠졌다. 때마침 여성 이슈에 별 관심 없던 국민의힘에서 ‘뒤늦게라도 성폭력 대책 특별위원회(성폭력 특위)를 만들겠다. 당에 전문가가 없으니 이런 일 해왔으니 함께 해달라. 여성인권 보호법안 만들고 싶다'고 권유해서 자문에 답하는 거다. 
 
여성·젠더 이슈 다루는 야당, 처음에 어땠나.
황무지였다. 처음 성폭력 특위 맡았을 때 코로나가 터져서 ‘비대면 예방 교육을 해드리겠다’고 교육 영상 찍어서 보냈는데 그 영상이 국민의힘 홈페이지에 올라가는 데도 한참 걸렸다. 필요를 별로 못 느꼈을 것이고, 영상 같은 것도 활용해본 적이 없던 거다. 결국 들들 볶아서 올라갔지만, 특위 활동하면서 이런 집단을 조금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이후 경선준비위원회(경선준비위) 들어간 건 여성후보 가산점 달라고 시비 붙으려고 들어간 거고 결국 생겼다. 여성 후보 2명 중 지지율 높은 사람 돕기로 작정했었고. 전체적으로 보면 국민의힘은 지금껏 여성·아동·인권 문제를 다룰 기회가 많았을 텐데 굉장히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런 분야에 관심 있는 초선의원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과 주로 일했다. 다선(多選) 남성 의원들은 못 만났다. 경선준비위 때 잠깐 온 몇 분 봤는데 그때도 여성가산점, 100% 국민경선제 놓고 이견이 워낙 많았다. 보궐선거 취지 생각하면 그렇게 논쟁이 필요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목소리 크게 반대하시던 분들 기억난다. 다행히 관철돼서 경선룰과 가산점 다 적용됐다. 그분들도 많이 양보한 거다. 과거 보수진영에선 이런 양보 못 했을 거다. 난 이 정도 짱돌 던지면 된 거지. 더 뭘 할 수 있겠나.  
 
정치권의 전문가 활용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건가. 촌스럽고 서툴다는 느낌도 든다.
전문가라는 사람 자체를 정파에 맞춰 이용하겠다는 생각만 접으면 된다. 네 편 내 편 없이 다양한 전문가를 다양하게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꼭 색채 구분을 하려고 든다. 그러면 아무리 탁월한 전문가도 스스로 색깔이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자문이 어렵다. 이런 낭비가 어디 있나. 우리나라는 특정 영역에 전문가 풀(pool)이 많지도 않다. 이슈 따라서 조금 달라도 끌어오는 게 모두 이익이다.
 
당 옮겨 다녀서 악플 시달렸다고.
직업이 분석이라 악플도 분석해가며 읽었다. 특정 시점에 특정 임무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악플이 달린다는 걸 알았다. 일종의 작전처럼. 정말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나와 관련된 모든 내용에 악플이 달려야 하는데 안 그렇다. 특정한 때만 집중적으로 달리고 멈춘다. 이런 걸 보면서 ‘악플도 어떤 정치적인 흐름이 있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정략적으로 악플을 활용한다. 요즘은 악플이 뜸하다. 더는 (내가) 국민의힘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됐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악플 기준으로 인기가 좀 떨어졌다.
 
젠더 이슈를 야당에 가져가서 악플이 달렸을까.
진보진영에서 ‘젠더 이슈는 특정 진영이 독점한 이슈, 여기에 민감한 사람들은 모두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다가 나의 ‘변절’ 때문에 전선이 깨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어서 나를 공격한 게 아닐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떤 가치라는 게 특정 집단·세대가 독점할 수 있는 건가. 세상을 둘로 쪼개서 편 가르는 '망국병'이라고 본다. 굉장히 고루하다.  
 
정의당 사태까지, 권력형 성범죄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보나.
구조적 문제다. 국민의힘도 정의당처럼 공개 처분을 안 했을 뿐, 내부적으로 다양한 처분을 했을 거라고 추정한다. 어느 당이든 권력·주종관계가 분명한 조직에선 쉽게 벌어질 일이다. 정의당 사태는 이런 문제를 푸는 큰 해법을 제시했다. 교육적 가치가 크다. 조직이 피해를 알린 피해자 편에 섰다. 가해자는 퇴출당했고 피해자는 활동을 이어 간다. 나도 이런 해결방식은 생전 처음 봤다. 박원순 사건 피해자도 이러고 싶지 않았을까. 그분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는 얘길 전해 들었다. 나라도 몸을 던져서 이 문제(박원순 사건)에 관심 갖도록 희생해야지. 난 잘리는 직장도 아닌데.
 
지난 1월 26일 정의당 김윤기 당대표 직무대행 등 정의당 의원들이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1월 26일 정의당 김윤기 당대표 직무대행 등 정의당 의원들이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최근 ‘그알’(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잘 안 보인다.  
국민의힘에 연루된 정치적인 인물이다. 이런 오해를 한 것으로 보이고, 악성 댓글이 달리니까 (제작진도) 부담이 됐겠지. 그런 것들이 아무래도 방송에는 영향을 준다. 그런데 지금은 또 악성 댓글이 잠시 안 달린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다시 자문에 응하기 시작했다. 불편함을 유발해서 나도 좀 유감이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니 이해해달라.
 
최근 연예계·스포츠 ‘학폭 미투’는 어떻게 생각하나. 
폭력을 훈련으로 착각했던 과거 잔재들이다. 주로 먼 과거 일이라 객관적 증거도 내밀기 어렵고 검증도 어렵다. 대부분 시효도 끝나서 사건화도 어렵지만, 피해자 상처는 계속된다. 특히 유명인 가해자의 경우 노출이 잦아서 그 상처가 더 크다.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가 1:1로 풀 수 없는 문제로 바뀐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볼 건 ‘학폭 미투’에서 학교는 책임이 없느냐는 거다. 피해자가 문제 제기할 대상엔 가해자 말고 학교도 포함돼야 한다. 공적인 책무를 다하지 않았으니까. 
 
조두순 출소했을 때 보호수용법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형사·사법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조두순이 세상에 나오면 피해자가 동네에서 쫓겨날 걸 알았지만, 입 닫았다. 그래서 보호수용법 입법되길 바랐는데 불발됐다. 인권침해라는데 가해자 인권만 형사사법 제도에서 중요한가. 이게 불만이다. 피해자 인권은 등한시한다. 피해자 안전과 일상생활 위해 너무 필요한 법인데 대책 없이 범죄자들 내보내니 참을 수가 없었다.
 
보호수용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수용 기간을 늘려서라도 대안을 세워야 한다. 모든 시스템이 다 바뀌었는데 ‘너 한번 잘살아 봐라’라면서 범죄자 출소시키면 사회는 또 다른 위기를 맞는다. 수용시설에서 심리치료도 받고, 바깥세상 나갈 준비를 더 시켜야 한다.
 
범죄 사건 사고 자주 접하면 염세적으로 변할 거 같다. 
인간 본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이(정치인) 제시하는 파라다이스(이상)를 믿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정치인과 가까이 못 한다. 의심이 많고 감언이설에 잘 안 넘어간다.
 
그래도 희망은 필요하지 않나. 
강렬한 희망이 너무 간절히 필요해서, 내가 ‘희망이 없다’는 걸 더 자주 느끼는 걸 수도 있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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