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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컨 방한 전날 김여정 “잠 설칠 일거리 만들지 말라”

미국의 대북 접촉 제안에 침묵해 왔던 북한이 16일 입을 열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5일자 담화에서 남북관계 파국을 시사했다. [중앙포토]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5일자 담화에서 남북관계 파국을 시사했다. [중앙포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를 통해서다. 김 부부장은 ‘3년전의 봄날은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제목의 15일자 담화를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했다. 김 부부장이 담화를 낸 건 지난 1월 12일 이후 62일 만이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임기말에 편안치 못하게 될 것”이라거나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말라”며 한ㆍ미 양국을 동시에 겨냥했다. 단 미국에는 짧은 문장과 비교적 통제된 표현으로 수위를 조절했지만, 한국 정부를 향해선 “미친개”, “태생적 바보” 등의 원색적인 언사를 동원했다.
 
북한이 비난 수위를 높인 표면적인 이유는 한ㆍ미 연합훈련(3월 8~18일)이다. 한ㆍ미가 실기동 훈련을 생략하며 실전성을 대폭 축소했지만, 지난 1월 8차 당 대회에서 김 위원장이 남북 관계의 ‘본질적 문제’라고 언급한 훈련 중단이 받아들여지지 않은데 대한 반발이다. 김 부부장은 “동족을 겨냥한 침략전쟁 연습이라는 본질과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미친개를 순한 양으로 보아 달라는 궤변”이라고 비난했다.
 
① 미 국무ㆍ국방장관 방한 전날 미사일 카드 = 그런데 전문가들은 담화 시점을 주목한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은 담화를 낼 때 치밀하게 시점을 계산한다”며 “담화를 작성한 15일은 토니 블링큰 미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일본에 도착한 날이고, 두 장관의 방한 하루 전날 이를 공개한 건 의도적으로 시점을 조정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리뷰 과정에서 “동맹과 협의를 해 반영하겠다”고 밝힌 점을 고려해, 미국 정책 책임자들의 방한에 맞춰 미국에는 직접적으로, 한국 정부에는 ‘미국 설득’을 주문하는 메시지라는 뜻이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미국을 향해 “앞으로 4년간 발편잠을 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미국이 경계하는 탄도미사일 카드를 시사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3월 방북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에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하느라 고생 많으셨다”며 “이제 더는 문 대통령이 새벽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1월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제외되고, 당 제1부부장에서 부부장으로 강등된 김여정(오른쪽)이 1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동원하며 간부 대열에서 이탈해 뛰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제외되고, 당 제1부부장에서 부부장으로 강등된 김여정(오른쪽)이 1월 12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동원하며 간부 대열에서 이탈해 뛰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② 여지 남긴 파국 = 지난해 대남 비방을 주도했던 김 부부장은 한국 정부를 향해 “태생적 바보”“떼떼”(말더듬이의 황해도 방언)“미친개”라며 비난 수위를 한단계 높였다. 그러면서 남측 통일부 격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금강산 관광 업무를 담당해 온 금강산국제관광국의 해체를 검토중이라고 했다. 또 남북군사분야합의서 파기도 예고했다. 김 부부장은 지난해 개성공단내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위협했고 그 위협은 실제로 진행됐다. 단 김 부부장은 “최고수뇌부에 보고 드린 상태”라며 최종 결정된 건 아니라는 식으로 여지를 남겼다. ‘3월의 봄’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적 표현이 아니라 “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해에도 북한이 군사행동 계획을 마지막 단계에서 김 위원장이 철회한 전례가 있다”며 “김 부부장이 밝힌 ‘건의’를 한국과 미국의 향후 대응을 지켜보며 결정하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남북관계 파국의 선언이 아니라 조건부를 즐기는 북한식 마지노선 제시라는 뜻이다.

 
③김여정 건재 확인한 담화 = 김 부부장은 이날 “3월의 봄계절에 따뜻한 훈풍이 아니라 스산한 살풍(殺風)”, “붉은 선(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얼빠진 선택”이라고 한국 정부 비난에 앞장섰다. 지난 1월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제외되고, 제1부부장에서 부부장으로 강등된 김여정이 미국과 한국을 향한 입역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에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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