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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질 군무’로 무대 점령…“춤은 변화하고 도전해야”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안무가 매튜 본

원조 맛집을 아류가 따라갈 수 없듯, 공연 예술에서도 원작을 넘어서는 재해석은 좀처럼 나오기 힘들다. 하지만 발레의 대명사 ‘백조의 호수’ 만큼은 ‘원조 뺨치는 아류’가 나왔으니, 바로 매튜 본(Matthew Bourne·61)의 ‘백조의 호수’(1995)다. 순백의 튀튀를 입은 발레리나로 빼곡했던 무대를 근육질의 남자 백조로 점령한 혁명가, 동성애에 대한 사회문화적 금기를 충격적인 아름다움으로 깨버린 예술가, 말 한마디 없는 스토리텔링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최고의 엔터테이너가 바로 매튜 본이다. 박제화된 고전에 동시대적 재미를 불어넣는 그의 무대는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의 경계를 간단히 무너뜨린다.
 

3월 한 달 ‘온라인 컬렉션’
‘레드슈즈’‘카 맨’ 등 미공개작 4편
멈춤 없이 촬영, 눈앞서 보듯 생생

“라이브 공연처럼 땀·감정 포착
젊은 팬들 영상 보고 극장 찾을 것”

그의 2016년작 ‘레드슈즈’가 지난해 내한공연을 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탓에 무산됐다. 이 아쉬움을 달래주는 기획이 3월 매주 금·토요일 LG아트센터가 네이버TV를 통해 선보이는 ‘매튜 본 컬렉션’이다. ‘레드슈즈’를 비롯해 ‘카 맨’(2000), ‘신데렐라’(1997) ‘로미오와 줄리엣’(2019) 등 국내 미공개작 4편을 선보이는 ‘매튜 본 대축제’다.
매튜 본 컬렉션. 위로 부터 '카 맨' '신데렐라' '로미오와 줄리엣' '레드 슈즈' [사진 LG아트센터]

매튜 본 컬렉션. 위로 부터 '카 맨' '신데렐라' '로미오와 줄리엣' '레드 슈즈' [사진 LG아트센터]

 
천하의 매튜 본도 코로나의 타격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e메일로 만난 그는 “공연을 안 한 지 1년이 되어간다. 무용단 역사상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지난 1년 간 단원들이 매우 고통스럽게 지냈어요. 그들을 돕기 위해 애를 썼죠. 필라테스 클래스를 열기도 했고요. 영상화 프로젝트를 펀딩해 팬들에게 보여줄 디지털 영상도 많이 늘렸습니다.”
 
LG아트센터, 네이버TV서 유료 상영
 
매튜 본 컬렉션은 회당 1만원이다. 국내에서 무용 영상의 유료화는 드물지만, 그는 “미국·아시아·러시아에 팬이 많아 매우 성공적으로 상영 중”이라고 했다. “왜 예술가들이 작품을 공짜로 나눠줄 거라고 생각할까요. 창의적인 사람들도 생계를 유지해야 하죠. 우리도 아카이브 영상은 무료로 공유했지만, 유료 영상들은 최근 촬영된 고화질 영상이에요. 다른 데선 못 보는, 영화 같은 특별한 영상들이죠.”
 
그는 이번 컬렉션이 ‘라이브 촬영’임을 강조했다. “관객이 있는 공연을 시작부터 끝까지 멈춤 없이 촬영했기에 눈앞에서 보는 듯 생생하다”는 것이다. “라이브 공연만이 줄 수 있는 땀과 감정을 포착하려고 노력했어요. 특히 클로즈업 장면들은 공연장에선 볼 수 없죠. 공연장에 못 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최선의 대안이라 생각해요.”
 
실제로 지난 6일 직접 본 ‘카 맨’의 영상은 몰입감이 대단했다. 2000년 초연 이래 그의 최고 인기 레퍼토리로 꼽혀온 이 무대는 ‘백조의 호수’의 계보를 고스란히 잇고 있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모티프 삼았지만, 남자 백조처럼 카르멘에 해당하는 ‘카 맨’도 남자다. 치명적인 매력의 이 ‘옴므 파탈’이 외로운 남자를 유혹한다. 그런데 표현은 훨씬 원초적이다. 춤인지 싸움인지 모를 격렬한 남성 2인무를 비롯해 홀딱 벗는 목욕 장면, 붉은 조명 아래 집단 섹스장면까지, 95분간 눈을 뗄 수 없게 몰아치는 화끈한 ‘사랑과 전쟁의 드라마’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도 “20년 전 ‘카 맨’을 관람했지만 지금 영상으로 다시 봐도 충격적”이라면서 “그의 작품은 극적으로나 장면적으로나 굉장히 버라이어티하기에 현장성이 강조되지만, 영상 역시 섬세한 카메라 워크와 편집으로 감정선을 따라가기에 완성도가 높다. 코로나 이전부터 영상 제작 노하우를 다져왔기에, 무대에서 다시 직접 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의 무대는 현대무용이지만 마냥 추상적이지 않고 스토리가 뚜렷하기에 영상 언어와 더욱 찰떡이다. 누구나 아는 고전을 현대적 콘텐트와 결합해 서사를 확장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백조의 호수’에 히치콕 영화 ‘새’의 이미지를 차용해 심오한 심리극으로 만들고,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 고딕소설 『드라큘라』와 영화 ‘트와일라잇’의 설정을 덧입혀 공감도를 끌어올리는 식이다. “‘카 맨’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이야기를 뒤섞었죠. 왕자나 공주 이야기를 계속 만든 이후라, 현대인들의 현실적인 움직임에 기반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우리는 현대무용단이니까요.”
 
‘안무가’로 불리지만 사실 그는 자칭 ‘스토리텔러’다. 어린 시절부터 영화와 뮤지컬에 빠져 살다가 스무 살 넘어 춤에 관심을 가졌고, 스토리를 전달하는 언어로 춤을 택했을 뿐이다. “말하는 것보다 움직이는 것을 훨씬 좋아하거든요. 움직임이 말보다 보편적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세계를 투어할 수 있고, 여러 나라의 관객들도 우리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죠.”
 
‘백조의 호수’로 큰 반향을 일으킨 직후 만든 ‘신데렐라’ 역시 동화가 아닌 전쟁 속 피어나는 러브스토리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2차 대전 때 작곡됐거든요. 전쟁을 떠올리며 음악에 귀를 기울였더니 그 시대의 소리가 들려왔어요. 런던에 떨어지는 폭탄들이 보이고, 사람들의 현실도피 욕망까지 느껴졌죠. 그래서 배경을 런던 대공습으로 설정했고, 신데렐라는 몽상가가 됐어요. 전쟁의 공포를 잊기 위해 영화를 보면서 현실과는 다른 꿈 같은 세계로 들어가죠. 고난 속에서 사랑을 찾아낸 진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라 더 애정이 갑니다.”
 
‘카 맨’‘신데렐라’가 초기작이라면 ‘레드슈즈’와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장 최근작인데, 옛날 작품이나 요즘 작품이나 한결같이 혁신적이다. 30년 작품 세계의 변화를 묻자 “작품마다 안무와 음악 스타일, 정체성과 매력이 다 다르다. 늘 다음에 들려줄 위대한 이야기를 찾을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안데르센 동화를 모티프 삼은 동명 영화(1948)를 무대화한 ‘레드슈즈’도 그런 ‘위대한 이야기’다. 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매튜 본 자신의 극장에 대한 “사랑 편지”이기 때문이다. “무용수를 꿈꾸던 소녀가 세계 최고의 무용단에 들어가 사랑과 예술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저는 이 영화로 발레를 처음 만났는데, 사랑하는 일을 하지 못해 상심이 가득한 지금 더 각별하게 느껴지네요. 발레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니까요.”
 
‘레드슈즈’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원조 남자 백조’인 아담 쿠퍼의 출연이다. 그가 연기한 매력적인 남자 백조는 이후 모든 남자 무용수들의 로망이 됐는데, 발레를 향한 소년의 꿈을 담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도 꿈을 이룬 어른 빌리(아담 쿠퍼)가 ‘백조’로 도약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매튜 본은 “아담은 우리 무용단이 배출한 최고 스타”라며 “잠시 돌아와 발레단장 역할을 할 때 운 좋게 영상까지 촬영할 수 있었다”고 했다.
 
현대무용 ‘스토리텔링의 마법사’
 
‘레드슈즈’의 아담 쿠퍼(왼쪽).

‘레드슈즈’의 아담 쿠퍼(왼쪽).

거칠고 공격적이지만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백조 군무처럼, 그의 작품에는 잊기 힘든 명장면들이 꼭 있다. 그는 “모든 관객이 자기만의 명장면을 찾을 것”이라면서도 작품마다 특별히 공들인 장면들을 꼽아줬다. “‘신데렐라’에서는 폭격 맞은 무도회장에 주목해 주세요. 시간을 되돌려 생명을 얻었다가 종소리와 함께 스펙터클하게 파괴되는 장면에 전율하게 될 겁니다. ‘레드슈즈’에서는 움직이는 프로시니엄 아치가 놀라울 거예요. 세트가 정말로 ‘춤’을 추거든요.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코니 듀엣에선 무용 사상 가장 긴 키스신이 나오죠.”
 
최신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젊은 세대용’임을 유독 강조한다. 관객 노령화가 심각한 유럽에서는 젊은 관객을 사로잡을 작품을 만드는 게 안무가들의 미션이 됐다. 그가 30년 가까이 거부해왔던 ‘로미오와 줄리엣’에 도전한 이유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성장 중인 젊은 무용수들에게 기회를 줘서 그들에 관한 작품으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무용수 뿐 아니라 안무 등 모든 제작 과정에서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했죠. 젊은이들의 아이디어에서 아주 독특한 작품이 나왔어요.”
 
확 젊어진 ‘로미오와 줄리엣’에 가문의 갈등 따위는 없다. 기성세대의 통제와 시스템에 저항하는 새로운 세대의 순수함과 열정, 불안한 청춘의 사랑이라는 플롯만 살렸다. “학대·범죄 등 요즘 젊은이들과 관련된 주제들을 다뤄서 조금 불편할 지도 몰라요. 하지만 중심은 첫사랑의 열병이고, 가슴 저린 파드되도 두 번 있죠.”
 
온라인 세대인 젊은 관객들이 공연장을 떠나는 추세는 만국 공통이다. “무용 공연을 본 적 없는 이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고 칭송받는 그에게 젊은 관객을 사로잡는 노하우를 물었다. “그들이 정말 보고 싶어 하고, 그들과 연결되어 있고, 그들이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어야죠. 춤과 공연은 살아있어야 하고, 전진하고, 변화하고, 도전해야 합니다. 젊은 관객들은 늘 이런 것에 응답하거든요.”
 
매튜 본의 ‘원조를 뛰어넘는 혁신’도 늘 관객과의 ‘연결’을 고민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유주현 기자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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