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당장 국내 주식 매도를 중지하시기를 청원합니다’(6539명)
‘연기금은 증시의 대세 상승을 막는 행위를 중단하십시오’(2538명)
‘국민연금 대량 매도 이유가 궁금합니다’(1786명)
‘연기금의 국내주식 보유 비율을 높여 개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십시오’(1147명)
올해 들어 일명 ‘동학 개미(국내주식 투자자)’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잇따라 올린 글이다. 연초부터 49거래일째 지속한 연기금의 주식 ‘팔자’ 행렬에 대해 반발하는 내용이다. 국내 증시 ‘큰 손’인 국민연금의 매도세가 최근 증시가 주춤한 원인이란 판단에서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지난 4일 전주 국민연금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작년 말부터 역대급 매도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국민연금이 주가 하락의 주범”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매도를 막아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타당성이 떨어지는 청원인데도 정부 곳곳에서 여론 눈치 보기 정황이 나타났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주가가 2000~3000선일 때 리밸런싱(자산배분) 문제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검토해 다음 기금 운용위원회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연기금 자금을 받아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주요 자산운용사들에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연기금의 순매수ㆍ순매도액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해 물의를 빚었다. 비밀 유지가 생명인 고객 자금의 운용 내용을 제출하라는 건 이례적이다.

개인투자자 모임인 한국주식투자연합회(한투연)가 지난달 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매도 반대를 주장하는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3040 동학개미' 지지층 의식했나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특히 공매도 재개 같은 경우 시장 논리나,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일정대로 추진했어야 맞다”며 “현 정부의 주요 지지층인 30~40대 동학 개미의 집단 반발 청원에 밀려 승복한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2017년 정부 출범 후 처음 도입한 국민청원이 개인 이해관계를 가진 소수가 여론을 왜곡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질했다”며 “정부에게 불리한 청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지지층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청원에만 반응하는 식으로 운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