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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65억 들고 튄 집주인…청춘 100명 '해피하우스' 악몽

집주인과 연락이 끊겼다. 서울 시내 역세권의 10층짜리 오피스텔을 가진 부호로 알려진 부부. 그러나, 그들은 100명의 청춘을 절망에 빠트렸다. 대부분 2030인 세입자들의 결혼과 성공의 꿈이 위기에 몰렸다. 그들의 피와 땀이 어린 전세보증금 수십억 원이, 집주인과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5층 예비신부의 악몽

항공사 승무원 정모(31)씨는 아직도 지난해 3월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5월의 신부를 꿈꾸던 그를 짓누르던 불안이 끝내 현실이 됐다. 집 주인 임모(61)씨는 약속만 하며 1년 넘게 지급을 미루던 전세보증금 6500만원을 주지 않고 잠적했다. 예비 남편과 부모님 얼굴, 비행을 하며 힘들었던 기억이 스쳐갔다. 부모님이 어렵게 도와주고 20대 내내 모은 돈이었다. 다행히 결혼은 했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정씨와 집주인이 나눈 문자 메시지 내용. 집주인은 자신이 원할 때 문자로 답을 했지만 전화는 일절 받지 않았다. 사진 정씨 제공.

정씨와 집주인이 나눈 문자 메시지 내용. 집주인은 자신이 원할 때 문자로 답을 했지만 전화는 일절 받지 않았다. 사진 정씨 제공.

"부자라는 말 믿었는데…"

2014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승무원이 된 정씨는 김포공항과 가까운 9호선 가양역 근처에서 집을 알아봤다. 공인중개사가 추천한 '해피하우스'는 주변 시세보다 최소 500만원이 저렴했다. 건물 등기부엔 2010년 금융기관이 설정한 20억원의 근저당권이 있었다. 외형은 오피스텔이지만, 서류상 근린생활시설인 고시원으로 등록한 뒤 편법으로 취사시설을 설치한 건물이었다. 전세 계약은 가능해도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어려웠다. 계약을 고민하는 그에게 집주인과 공인중개사의 말이 듬직하게 다가왔다. "건물이 80억원이다. 20억원 근저당권은 별 거 아니다." "대부분이 월세고 집주인이 부자다."
이사 나가는 이웃들도 보증금을 잘 받아가는 것 같았다. 2019년 하반기 일이 터질 때까지는….
 

10층 해남 청년의 좌절

"회사를 통해 뚫은 마이너스 통장 돈에 지금까지 모은 돈까지. 제 전부나 마찬가지예요."
전남 해남 출신의 김모(31)씨는 지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2016년 말 취업에 성공해 상경했다. 친구와 가족들은 취업 바늘 구멍을 뚫은 그를 자랑스러워했다. 1년간 월세살이를 하다 돈을 모으기 위해 2017년 11월 해피하우스에 들어왔다. 전세보증금은 향후 결혼자금이기도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증금을 못 받고 있다. "확정일자를 받고 전입신고를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요."
서울 가양역 인근 오피스텔 해피하우스. 여성국 기자

서울 가양역 인근 오피스텔 해피하우스. 여성국 기자

사라진 주인 부부, 복잡해진 권리 관계

해피하우스는 임씨의 남편 김모(66)씨 명의 건물로 16.5㎡(약 5평)짜리 원룸 98세대가 있다. 세입자들은 주로 여주인 임씨와 소통을 했다. 부부는 2010년 지어진 이 건물을 2013년 9월 샀다. 5년간 문제가 없다가 2019년 하반기부터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전세보증금 피해자는 대부분 20~30대다.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이사한 이들을 포함해 약 100명의 세입자가 약 65억원을 받아야 한다. 집주인이 건물을 이모(64)씨에게 신탁을 맡기면서 사안은 더 복잡해졌다. 세입자 김종현(35)씨가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돌려받기 위해 경매를 신청했다. "경매를 풀기 위해 협상을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건물을 신탁을 해버렸다"며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 몰랐다"고 했다.
 
수탁인 이씨는 "나도 집주인 부부와 연락이 안 된다. 건물 문제를 내가 해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누구도 믿기 어려운 처지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세입자들은 수탁자에게 보증금을 달라고 할 수 없고, 수탁자도 보증금을 줄 의무는 없다. 세입자들의 채권은 집주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집주인은 건물 신탁을 이유로 나몰라라 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권리 관계가 엉켜 있는 건물에 새로 전세금을 내고 들어올 이도 없어서, 전세금을 못 받은 세입자는 계속 거주하는 것 말고는 권리를 주장할 길이 없는 셈이다.

 

"서민 자녀들의 단칸방인데…."

수도요금 체납에 따른 단수 예고 고지서와 요금 납부 독촉장. 여성국 기자

수도요금 체납에 따른 단수 예고 고지서와 요금 납부 독촉장. 여성국 기자

건물 1층 관리사무소 책상 위에는 수도가 곧 끊긴다는 노란 독촉장이 올려져 있었다. 2010년부터 이 건물을 관리한 이일복(73)씨는 "집주인이 잠적한 뒤 전기세 수도세 등 관리비도 내지 않았다"고 했다. 한동안 세입자들이 관리비를 걷어서 비용을 댔다. 이씨도 주인 부부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부모가 부자고 유력자면 이런 좁은 원룸에서 살겠어? 여기 사는 젊은 애들은 다 서민이고 서민 자식들인데. 주변 시세보다 싸고 지하철역 가까우니까, 돈 벌려는 지방 애들이 주로 살았지. 부잣집 애들이었으면 벌써 집주인 찾아내서 벌주고 법도 바꿨을걸." 관리인 이씨는 안타깝다며 혀를 찼다.
관리소장 이일복씨. 이씨 월급은 세입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다 최근에는 수탁자가 주고 있다고 한다. 여성국 기자

관리소장 이일복씨. 이씨 월급은 세입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다 최근에는 수탁자가 주고 있다고 한다. 여성국 기자

줄고소에도 "수사 어렵다"던 경찰

20대를 바쳐 모은 돈, 대출금, 부모님 노후 자금, 결혼 자금…. 보증금 6500만원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승무원과 해남 청년 등 일부 세입자들은 지난해 4월 검찰과 경찰에 집주인 부부를 사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 사라진 집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왜 돈을 안 주는지 수사기관이 밝혀줄 것이라고 믿었다. 모르는 이웃의 문을 두드려서 함께 수사를 받으러 갔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액수가 적다", "증거가 부족하다", "사기로 보기 어렵다" 등이었다. 경찰 조사를 받은 세입자 설모(36)씨는 "내 이전 세입자도 돈을 못 받았다. 다른 세입자들의 증거를 모아서 갔는데, 경찰이 '다 같이 해야지 왜 같이 안 해서 귀찮게 하냐'는 식으로 얘기했다. 이후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고 한숨을 쉬었다. 주인 부부는 지난해 5월 수사기관으로부터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세입자들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잠적한 상태다. 현재 총 98세대 중 62세대만 해피하우스에 남아있다. 지방 발령을 받거나 결혼한 이들은 돈을 받지 못한 채 이사를 했다.

5평 남짓 원룸의 내부. 여성국 기자

5평 남짓 원룸의 내부. 여성국 기자

집단 고소로 희망 찾나

그러나, 피해자들은 다시 힘을 내고 있다. 피해자 대표 조모(28)씨는 최근 한 판결문을 보고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세입자들이 낸 수십억 원의 원룸 보증금을 가로챈 임대사업자에게 중형이 선고된 판결이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2단독(부장판사 모성준)은 주범인 임대업자에게 징역 13년 6개월을 선고했다. 범행을 도운 이들에게도 징역형과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 임대업자는 익산시 대학가에서 원룸 임대사업을 하면서 보증금 46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등 세입자 122명의 돈이었다. 이들은 빼돌린 보증금으로 고가 외제 차를 타고 해외여행을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조씨는 "우리 사건과 너무 비슷하더라. 다시 한번 세입자와 증거를 모아 수사를 해달라고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경찰서.

서울 강서경찰서.

"피해 회복 노력 안 해 중형 불가피"

전주지법의 판결문은 해피하우스 세입자들에게 희망이다. 법원은 주범의 사기와 전자금융거래법위반 등을 유죄로 인정해 중형을 선고하면서 "이 사기 범행으로 다수의 원룸에서 경매가 진행됐고 사회경험이 부족해 전입신고나 배당요구를 한 바도 없고 피고인들을 고소하지 못한 피해자들도 다수에 이르며 이 사건으로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휴학한 피해자들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들로부터 전세보증금을 최대한 편취하기 위해 노력을 계속한 점, 자산을 은닉하고 범죄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은 점, 피해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중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사회적 약자가 속는 시스템

조씨 등 피해자 63명은 최근 경찰에 김씨 부부를 사기 등 혐의로 고소해 다시 수사가 시작됐다.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이제 막 조사를 시작해 기록을 검토하고 있다. 피해자 수가 많고 피해액도 상당하고 범죄 수법도 교묘해 보인다"고 말했다. 

 건물 편지함에는 밀린 고지서 등이 쌓여있었다. 편광현 기자

건물 편지함에는 밀린 고지서 등이 쌓여있었다. 편광현 기자

이 사건을 대리하는 한용현 변호사(법무법인 정법)은 "'익산 전세보증금 사건'과 범죄수법과 피해 상황 등이 상당히 비슷하다. 세입자들은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할 수도 없었고, 등기부만으로는 전·월세와 보증금 현황, 임대 기간 등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선순위 권리에 대한 고지를 못 받았고 집주인의 기망에 사기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병원장이다. 월세 비율이 높다'는 집주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법 개정이 전세 사기 대책 될까 

전국적으로 비슷한 전세보증금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민간임대주택 특별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임대주택 권리관계 정보 제공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사업자가 임대차 계약을 할 때 임차인에게 세금 체납 여부와 선순위보증금 현황 등 권리관계에 대한 정보제공의 의무를 추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보증금 회수가 어려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임대 사업자가 선순위 보증금 정보를 예비 임차인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국회에는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임대사업자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발의된 상태다. 계약이 끝난 뒤 보증금을 고의 또는 상습적으로 돌려주지 않고 재산상의 이익을 취한 임대사업자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피해자 더 나오지 않았으면"

세입자들은 행복을 꿈궜다. 이곳에서 2, 3년 정도 살며 돈을 모아 결혼을 하거나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인생 계획을 세웠다. 여성국 기자

세입자들은 행복을 꿈궜다. 이곳에서 2, 3년 정도 살며 돈을 모아 결혼을 하거나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인생 계획을 세웠다. 여성국 기자

해피하우스 피해자들은 "보증금 내역을 알았더라면, 월세가 더 많다는 게 거짓말인 걸 알았다면 500만원이 저렴해도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서민들의 상황과 정보로는 어리숙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전세 사기 피해자가 더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해피하우스 세입자들의 소망이다. 반론을 듣기 위해 며칠 동안 집주인 부부에게 전화하고 문자를 남겼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임씨는 기자 신분을 밝히니 전화를 끊었다.
 

진짜 해피하우스를 기다리며 

세입자들은 행복을 꿈궜다. 2, 3년 정도 살며 돈을 모아 결혼을 하거나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인생 계획을 세웠다. 100명의 청춘은 해피하우스에 입주할 때의 행복을 되찾고 싶다.
 
여성국·편광현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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