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국무총리는 8일 이번 사건 수사를 총괄하는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본부장을 정부서울청사로 불러 정부 합동 특별수사본부(합수본)를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국수본 내 특별수사단에 더해 부동산 차명 거래나 미등기 전매 등 불법 행위 등을 신속히 규명할 수 있도록 국세청·금융위원회 등 유관기관과 공조하라는 것인데, 향후 사건을 송치받아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할 검찰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았다. LH 합수본에 검찰만 제외한 셈이다.
6대 범죄 아니라고 검찰 배제…증거 인멸 기회 주는 것

정세균 국무총리(맨 왼쪽)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맨 오른쪽)의 보고 받기에 앞서 발언을 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신도시 투기 의혹 사건 수사를 총괄 지휘한다. 정 총리가 이날 설치를 지시한 정부합동 특별수사본부에도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할 뿐 검찰은 빠졌다. 뉴스1
정부는 합조단 조사 결과를 토대로 범죄 혐의가 발견된 이들을 국수본에 수사의뢰한 뒤 합수본을 통해 본격적인 수사와 진상 규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1990년 1기 신도시 투기와 2005년 2기 신도시 투기 의혹 수사 때 대검찰청에 경찰청·건설부(2기 땐 건설교통부) 등과 함께 합동수사본부를 차리고 처음부터 강제력을 동원한 수사를 검찰이 주도했던 것과 정반대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단순 토지거래보다 사전 공적정보를 유출·이용했단 의혹이 범죄 혐의의 핵심인데 처음부터 방향이 잘못된 것 같다. 토지거래 내역은 10년이 지나도 확인할 수 있지만, 공적정보 유출·공유 혐의는 은폐하면 발견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미 범죄자들은 증거를 인멸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2005년 7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찰 부동산 투기 사범 단속 전담 부장검사 회의에서 참석자들이 회의가 시작되기 전 양복 상의를 벗고 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6대 범죄에 해당하는지 따지기에 앞서 부패범죄에 잘 대응하는 게 우선이란 지적도 만만찮다. “권력이 개입된 구조적 비리의 전모를 밝히는 게 목표가 돼야 한다”(법조계 관계자)는 뜻에서다. 부패범죄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검찰 관계자는 “수사 초기부터 부동산 투기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사를 투입해 수사를 지도하고 법률 조언을 하는 체계로 검·경 합동수사단을 꾸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 방향에 관해 수사팀에 조언하는 건 현 수사권 제도 아래서도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국수본 단일 지휘 수사를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3일 오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다. 연합뉴스
현직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를 개시했으면 청와대나 국토부 등 정책결정라인을 따라 최초로 공적정보를 취급한 이들부터 수사했을 텐데 그러면 또 과잉수사·정치수사란 말이 나왔을 것”이라며 “결국 기득권층에 대한 수사는 하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주장했다.
법조계 일각엔 남구준 본부장의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 근무 이력과 관련, “성역 없는 수사가 가능할지 의문”이란 시각도 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법무부·행안부 업무보고에서 수사·기소 분리 방향을 강조하며 재차 ‘검찰개혁’을 강조한 것을 두고도 검찰 안팎에서는 “LH 사건 수사에 검찰은 빠지라는 얘기”란 뒷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LH 사건에 대해 “국가가 가진 모든 행정력, 모든 수사력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검·경의 유기적 협력을 강조했지만, 검찰의 수사 참여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하준호·정유진 기자 ha.junho1@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