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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화가 이왈종의 위로…그럴 수 있다, 그게 인생이다

서울 한남동 가나아트의 두 전시장에서 동시에 전시를 열고 있는 이왈종 화백.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의 그림엔 제주도에서의 삶과 작가의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한남동 가나아트의 두 전시장에서 동시에 전시를 열고 있는 이왈종 화백.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의 그림엔 제주도에서의 삶과 작가의 철학적 사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왈종 화백에겐 ‘경계’라는 게 없다. 그의 화면은 현실과 환상을 뒤섞고, 작품 속 이야기는 농담과 선문답을 무심하게 넘나든다. 나무엔 집과 자동차가 매달려 있고, 물고기는 날아다닌다. 꽃이 무성한 매화 가지는 땅과 하늘을 잇는 길이자 모세혈관이다. 그 안에 작가는 자기만의 세상을 펼쳐놓는다. 강아지와 새와 물고기, 집과 사람, 자동차와 꽃이 하나 된 정원이다.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세계인가. 그는 붓으로 번뇌와 이기심, 갈등이 넘치는 세상을 해체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구도와 색으로 평화롭고 명랑한 이상향을 짓는다.
 

서울 가나아트서 5년 만에 전시
자연·사람·일상이 어우러진 화폭
“코로나로 세상 뒤집어지는 경험
지혜롭게 상황 받아들이자는 것”

‘제주 화가’ 이왈종(75) 화백의 개인전이 서울 한남동 가나아트 나인원과 가나아트 사운즈 두 곳에서 4일 개막했다. ‘그럴 수 있다-A Way of Life’라는 제목으로 신작 20점을 선보인다. 자연과 사람, 일상이 어우러진 소재는 그대로이되, 색은 더 눈부시게 밝아졌고 화면엔 기운이 넘친다. 종종 해학적인 문구를 말풍선으로 그려 넣어온 그는 이번엔 작품마다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라고 써넣었다. 5일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제목을 ‘그럴 수 있다’로 했다.
“지난해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다 같이 세상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했다. 팔십을 앞둔 저도 혼란스러웠다.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싶었는데, 어느 순간 ‘그럴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세상엔 ‘그럴 수 없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지혜롭게 상황을 받아들이자는 얘기다.”
 
‘제주생활의 중도’ 연작. 이 화백은 한지 장인 장용운이 만든 1.5~2㎝ 두께의 장지에 아크릴 등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에겐 재료 사용에도 동서양의 경계가 없다. [사진 가나아트]

‘제주생활의 중도’ 연작. 이 화백은 한지 장인 장용운이 만든 1.5~2㎝ 두께의 장지에 아크릴 등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에겐 재료 사용에도 동서양의 경계가 없다. [사진 가나아트]

79년부터 추계예술대에서 학생을 가르쳤던 그는 91년 교수직을 떠나 제주 서귀포에 정착했다. 이후 ‘제주생활의 중도(中道)’ 연작을 발표하며 ‘제주 화가’로 불려왔다. 교수 시절부터 읽고 또 읽었던 『반야심경』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그림은 그가 꿈꾸는 ‘중도’와 ‘평상심(平常心)’의 세계다.
 
중도란 무엇인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평등의 세계를 말한다. 인간과 동물, 꽃을 평등하게 보고, 만물을 서로 중요한 관계, 수평 관계로 본다. 내 그림에선 꽃, 사람, 새, 나비, 개미는 모두 그런 존재로 등장한다. 수선화 꽃이 실제로는 아주 작은데 향기가 매우 진하다. 어떻게 하면 그걸 담을까 고민하다 보면 수선화가 집보다 더 커진다(웃음).”
 
제주의 유유자적한 삶이 원천이 됐을까.
“이전보다 제주에서 행복해진 것은 맞다. 작가가 행복해야 행복한 그림이 나오는 것도 맞고. 하지만 나는 그림 그리는 생활인이다.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5시 반까지 그린다.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제한한다. 매일 50분 7000보씩 걷고, 요가(지도자과정)도 5년째 해오고 있다. 전업 작가의 작업은 절제 없이 이어갈 수 없다.”
 
‘제주생활의 중도’ 연작. 이 화백은 한지 장인 장용운이 만든 1.5~2㎝ 두께의 장지에 아크릴 등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에겐 재료 사용에도 동서양의 경계가 없다. [사진 가나아트]

‘제주생활의 중도’ 연작. 이 화백은 한지 장인 장용운이 만든 1.5~2㎝ 두께의 장지에 아크릴 등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에겐 재료 사용에도 동서양의 경계가 없다. [사진 가나아트]

그는 자신의 그림을 “현대판 풍속화”라고 부른다. 골프하는 사람, 요가하는 사람을 그려 넣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번 신작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 북 치는 ‘강한’ 여성은 아내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미술계에서 그는 일찌감치 한국화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해온 기수로 꼽혔다. 80년대엔 수묵과 채색 기법으로 변화하는 도시 풍경을 담아 실경산수화로 그렸다. 제주도 정착 이후엔 부조 기법을 도입해 회화, 도자기, 목조 등을 넘나들었다. 어린이 그림을 닮은 듯 친근한 그의 그림엔 실경산수화, 민화, 풍속화 등 전통미술의 DNA가 내재해 있는 셈이다. “30년 전 제주도에 정착하면서 민화에서 작품의 답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그는 “내가 취할 것은 취해야 한다. 민화에 담긴 해학과 삶에 대한 성찰, 혜원 신윤복이 풍속화에서 이른 경지는 늘 내게 영감과 자극을 준다”고 덧붙였다.
 
골프, 춘화 등 소재에 금기가 없다.
“20년 전 처음 골프 그림을 전시하려 했을 땐 갤러리로부터 ‘이런 걸 왜 그렸냐’는 핀잔을 들었다. 그런데 작품이 모두 팔려나갔고, 지금 전국의 많은 골프장 클럽하우스에 내 대형 작품이 걸려 있다. 골프하는 사람들은 내 그림 속 사람들이 왜 거기 앉아 있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다 알고 웃는다. 그 역시 리얼한 우리 삶의 풍경이다. 춘화에 대해서도 주변에서 많은 걱정을 들었는데, 솔직히 그게 뭐가 이상한가. 다 현실에 있는 거다. 창작하는 사람은 눈치 보면 안 된다. 그림은 솔직해야 한다. 작가가 자기를 속이면 안 된다.”
 
그는 전통미술 다음으로 영감을 준 이들로 10년간 어린이 미술 교실을 운영하며 만난 ‘아이들’을 꼽았다. 그런 그에게 ‘당신은 그림처럼 낙천적인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나는 낙천적으로 살고 싶은, 속 좁은 사람”이라며 “사람들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선 누구든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정말 필요하다. 꽃을 더 들여다보고, 자연과 많은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많은 것을 더 깨우치게 된다”고 했다. 전시는 28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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