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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폐 안 끼치는' 일본 고립문화···코로나 블루 직격탄 맞았다

지난 1년 인류를 '비자발적 고립'으로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인간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공격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고독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었고, 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는 말이 확산됐다.    
 

[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우치다 고베여대 교수 인터뷰
경제 호황기에 번진 자기 책임론
코로나 급습에 사회적 약자 더 타격
일자리 확보로 소속감 갖게 해야
"일본 여성 지위, 지난 10년간 악화"

이런 현상이 뚜렷하게 드러난 나라가 일본이다. 1인 가구가 많고, 고령자 비율도 높은 일본에선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정서적 고립이 사회 문제로 불거지고 있다. 일본 언론에는 연일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어 아이들에게 제대로 끼니도 챙겨주지 못하고 있다"는 싱글맘이나 "학교에 가지 못해 친구를 사귈 수 없다. 혼자 살아서 의논할 사람도 없다"는 등 고립을 호소하는 이들의 사연이 소개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늘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의 지난해 자살자 수는 2만 919명으로 전년보다 3.7% 늘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 증가세로 돌아섰다. 특히 여성과 젊은 층이 급증했다. 지난해 남성 자살자 수는 1만 3943명으로 전년보다 135명 감소했으나 여성 자살자 수는 7025명으로 937명 증가했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한 초·중·고생의 수도 전년보다 약 40% 증가한 479명(잠정치)으로 역대 최다였다. 
 
일본 정부는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적극 대응에 나섰다. 지난달 코로나로 인한 고독과 고립 문제를 담당할 각료를 임명하고, 총리관저에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고립·고독 대책실’을 만들었다. 
 
우치다 다쓰루 고베여학원대학 교수는 지난 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약자들이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희 기자

우치다 다쓰루 고베여학원대학 교수는 지난 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약자들이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희 기자

고독과 고립 문제를 묻기 위해 지난 5일 우치다 다쓰루(內田樹·71)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를 만난 건 그가 오래 전부터 '자립'과 '자기책임'을 강조하는 일본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며 '상호부조 시스템'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우치다 교수는 한국에도 출간된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등의 책에서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약자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동체의 회복을 강조하는 그는 10년 전 고베(神戶)에 '개풍관(凱風館)'이라는 공간을 열었다. 인근 주민들과 합기도 수련은 물론 공부 모임 등을 함께 하며 상호부조를 실천하는 곳이다. 
 
코로나로 인해 '고립·고독'이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거리두기 등으로 사람과 만나지 못해 겪는 정서적 외로움보다는 일자리를 잃고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절망감이 문제다. 코로나19로 실직한 사람들이 경제적, 정서적으로 어디에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사회에 안전망이 사라졌다는 지적을 해 왔는데. 
"경제 호황기였던 1980년대부터 약 20년간 '가족은 필요없다'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독립적인 인간' 등의 생각이 일본을 지배해왔다. 이는 사실상 자본이 만들어낸 논리다. 4인 가족에는 집도 냉장고도 하나면 되지만, 모두 독립하면 4채의 집과 4대의 냉장고가 필요해진다. 일본이 풍요롭던 시기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거품은 꺼졌고, 혼자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이들이 늘었는데도 가족 공동체, 지역 공동체 등은 다 붕괴했다.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닥쳤다."
 
특히 여성이나 젊은층이 고통을 받고 있다.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육아나 간병 등의 돌봄 노동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것도 여성이다. 또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가정 내 폭력의 희생자도 늘고 있다." 
 
일본 여성과 초중고생 자살자 수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일본 여성과 초중고생 자살자 수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우치다 교수의 지적은 통계로도 드러난다. 일본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와 파트타임 등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의 수는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간 전년 대비 계속 감소했다. 지난해 1월~11월 비정규직 일자리를 잃은 경우는 여성이 535만명, 남성은 279만명으로 여성이 2배 가량 더 많았다. 내각부는 지난해 4~11월 가정폭력 상담 건수도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1.3~1.6배 많았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가 고립·고독 대책에 고심하고 있다.   
"지원금을 주고 상담을 늘리는 것 등은 일시적인 방법밖에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일을 하며 사회에 대한 소속감과 삶의 보람을 찾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다고 하지만 일본 전국을 보면 구인난을 겪는 중소 규모 회사도 많다. 고베만 해도 많은 기업인들이 '일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구직자와 구인에 나선 회사들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정부가 앞장서서 만들 필요가 있다."
 
감염병 측면에선 대도시가 위험도가 더 높은데.
"삶의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사스(SARS)와 메르스(MERS) 이후 코로나19가 온 것처럼 감염병은 몇 년 안에 반드시 또 온다. 인류가 5년마다 한 번씩 팬데믹을 맞을 수도 있다. 가장 시급한 변화는 대도시 집중을 피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곳에 몰려 똑같은 방식으로 살지 말고, 분산돼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해야 한다."
 
지난 5일 일본 도쿄에서 우산을 쓴 사람들이 시부야 교차로를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5일 일본 도쿄에서 우산을 쓴 사람들이 시부야 교차로를 지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역 분산은 고립을 더 악화시키지 않을까.
"지역에는 아직 공동체가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 간장이 없다고 할 때 도시에선 편의점에서 바로 살 수 있지만 시골은 옆집에서 빌려야 한다. 이런 식의 상호부조,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여성들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일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최근 10년간 과거에 비해 훨씬 하락했다. '남존여비'를 주창하는 '일본회의' 같은 극우단체를 따라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큰 문제였다고 본다. 고위 공직자나 기업 간부 등의 남녀 비율을 5대 5로 강제하는 등 과감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도쿄·고베=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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