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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잘하던 스님 왜…" 불 탄 내장사, 목탁 대신 망치 소리가

7일 오전 전북 정읍시 내장동 내장사. 대웅전이 시커먼 잿더미로 변했다. 지난 5일 승려 A씨(53)가 휘발유로 불을 질렀다. 정읍=김준희 기자

7일 오전 전북 정읍시 내장동 내장사. 대웅전이 시커먼 잿더미로 변했다. 지난 5일 승려 A씨(53)가 휘발유로 불을 질렀다. 정읍=김준희 기자

"스님이 불 질러 마음 더 안 좋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님이 일부러 불을 냈다고 하니 마음이 더 안 좋네요."    

[르포] 잿더미로 변한 '천년 고찰' 가보니

 7일 오전 8시30분쯤 '천년 고찰' 전북 정읍시 내장동 내장사. 등산을 마친 한 남성(50·정읍시 상동)이 사찰 담장 너머로 불에 탄 대웅전을 바라봤다. 그는 "내장사는 불공을 드리러 가끔 오는 곳"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시커먼 잿더미만 쌓여 있었다. 지난 5일 내장사에서 수행하던 승려 A씨(53)가 대웅전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내장사를 둘러싼 내장산은 단풍으로 유명하지만, 겨울이라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을씨년스러웠다. 
 
 내장사 안으로 들어가니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웅전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됐다. 대들보와 서까래는 숯덩이가 돼 무너져 내렸다. 바닥 곳곳에는 신도들이 소원과 함께 가족 이름을 적은 기와 조각이 나뒹굴었다.
 

목탁 소리 대신 굴착기 굉음 울려퍼져 

 소방대원들이 소방호스로 잿더미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정읍소방서 관계자는 "화재 현장 일부에서 연기가 난다고 해서 출동했다"고 말했다. 
 
 사찰 마당에서는 목탁 두드리는 소리 대신 굴착기의 굉음과 망치 소리가 울려퍼졌다. 인부 10여 명이 장비를 동원해 화재 현장 주변에 파이프를 박고 있었다. 내장사 관계자는 "관광객도 오는데 외부에서 보기 흉해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재 소식을 듣고 불자와 등산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내장사 주변에는 경찰 통제선이 설치돼 일반인의 사찰 출입은 통제됐다.
 
 정읍 토박이로 내장사 인근에서 40년간 음식점을 했다는 주민(70·여)은 "그 유명한 내장산에 오는데 절이 없어서 쓰겠냐. 눈물이 나려고 한다"며 "다시 (대웅전을) 지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소방대원들이 지난 5일 방화로 불이 난 내장사 대웅전에서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7일 오전 전북 정읍시 내장동 내장사. 사찰 주변에 경찰 통제선이 설치돼 일반인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정읍=김준희 기자
7일 오전 전북 정읍시 내장동 내장사. 대웅전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물을 뿌리고 있다. 정읍=김준희 기자
7일 오전 내장사 대웅전 화재 현장에서 물 뿌리기 작업을 마친 한 소방대원이 소방호스를 정리하고 있다. 정읍=김준희 기자

내장사 승려들 "부처님에게 참회" 

 이날 내장사 앞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선운사) 명의로 '내장사 대웅전 화재로 국민과 불자 여러분께 심려 끼쳐드려 참회드립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내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선운사의 말사다. 
 
 내장사 승려들은 망연자실했다. 사찰 내 숙소에서 승려 네다섯 명과 마주쳤지만, 이들은 "저희도 객(客)이다. 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다", "조계종에서 나왔다. 다른 스님한테 물어 봐라", "다 끝났는데 이제 와서 뭘 물어보느냐"며 서둘러 방에 들어가거나 자리를 피했다. 한 승려는 "주지 등 나머지 스님들도 다 조계종 중앙 징계위원회에 올라갔다. 절에도 절차와 기강이 있지 않느냐. 스님들로선 (대웅전) 관리를 못해 부처님에게 참회하는 마음밖에 없다"고 했다. 
 
 내장사 측은 "오후 2시 선운사에서 대책 회의가 있다"고 했다. 내장사에 따르면 이 절에는 현재 승려 6명이 있고, 불을 지른 A씨는 이 중 한 명이다. A씨는 승가대 졸업 후 지난 1월 13일 내장사에 왔다고 한다. 
 

방화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내장사 대웅전. 정읍=김준희 기자

잿더미로 변한 내장사 대웅전. 정읍=김준희 기자
내장사 승려들이 묵는 숙소. 정읍=김준희 기자

"스님들과 사이 좋았는데 이해 안 가"  

 내장사 관계자는 "A씨는 오랫동안 수행한 스님은 아니지만, 다른 스님들과 사이가 좋았다"며 "어느 누구를 붙들고 '그분이 어떤 분이냐'고 물어봐라. 일도 잘하고, 기도도 잘해 종무원들은 물론이고 불자들도 좋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도 방화 소식을 듣고 왜 그랬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정읍경찰서 관계자는 "A씨는 스님들과의 갈등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며 "나머지 스님은 조사 계획이 없다"고 했다. 

 
 전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6시37분쯤 '내장사 내 대웅전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불은 오후 9시10분쯤 완전히 진화됐지만, 1층 목조 건물인 대웅전(165㎡)은 전소한 뒤였다. 
 
 경찰은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A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7일 오후 4시30분 전주지법 정읍지원에서 열린다. 
 
 A씨는 경찰에서 "내장사에 머무는 동안 일부 스님과 갈등을 빚으면서 서운한 감정에 술을 마시고 홧김에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A씨는 대웅전에 불을 지른 뒤 본인이 직접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화재 현장에서 머무르다 체포됐다. 
 

불에 탄 내장사 대웅전. 정읍=김준희 기자

불에 탄 내장사 대웅전. 정읍=김준희 기자

1300년 넘게 4차례 불에 탄 '천년 고찰'

 선운사는 지난 6일 주지 경우스님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출가 수행자들에겐 수행의 근본이자 지역민에겐 정신적 위안처였던 내장사 대웅전이 또다시 화마에 휩싸였다"며 "종단과 긴밀히 협조해 사건의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했다. 정읍시 관계자는 "방화자가 경찰에 잡히고 자백도 했지만, 조계종 차원의 문제여서 당장 시에서 나서는 건 어렵다"며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의견 수렴을 거쳐 복원 등을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내장사는 1300년 넘게 소실과 재건을 네 차례 반복했다. 백제 무왕 37년인 636년 영은조사가 50여 동의 전각을 세우고 영은사로 창건했고 1557년 내장사로 이름을 바꿨다. 정유재란 당시 사찰 전체가 다 탔고, 재건된 뒤 한국전쟁 초기인 1951년 또다시 화마에 휩싸였다. 1958년 다시 지어진 대웅전은 2012년 10월 전기 난로 과열로 불이 나 전소했다. 2015년 시민 성금 등 25억원의 예산을 들여 새로 지었지만, 6년 만에 방화로 또다시 잿더미가 됐다.
 
정읍=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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